가톨릭 예수회 김정대 신부가 인터뷰 뒤 사진을 찍고 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나’보다 ‘우리’가 익숙했었던 우리. 그러나 어느새 ‘우리’보다 ‘나’를 앞세운 시대입니다. 경쟁과 적자생존 속에서 빈부격차, 정치 이념 갈등과 남녀노소로 갈리며 개인과 개인의 소통도 막혀갑니다. 그래서 함께하는 삶이 더욱 그립습니다. 외로워도 슬퍼도 함께하면 견딜 수 있습니다. 한겨레와 플라톤아카데미가 ‘함께하니 더 기쁜 삶-일상 고수에게 듣다’를 10차례에 걸쳐 진행해 더불어 사는 삶이 주는 맛을 나눕니다. 아홉번째는 가톨릭 예수회 김정대(61) 신부입니다.
<왜 남자들은 기를 쓰고 불행하게 살까?>(바오 펴냄). 가톨릭 예수회 김정대 신부가 다소 자극적인 제목의 책을 냈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기를 못 펴는 남자들의 염장을 지르기 위함은 아니다. ‘남성의 자리 다시 찾기’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남자들이 어려서부터 강요당한 ‘남자다운’ 삶이란 허울에서 벗어나 한 인간으로서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는 책이다. 2016년 오스트레일리아로 유학을 가 ‘실직한 남성들의 관계적 영성’을 주제로 쓴 저자의 신학 석사학위 논문을 기초로 이번에 ‘한국 남자 보고서’를 낸 것이다. 26일 서울 마포구 대흥동 예수회센터에서 김 신부를 만나 왜 한국 남자들이 경제 위기에 더 취약한지를 들었다.
“한국 남자들은 남자로서 존재 의미를 생산력 유무로 판단하도록 키워졌어요. 그래서 실직하는 순간 남성성이 거세된 것 같은 느낌과 함께 삶의 의미를 잃곤 해요.”
김 신부는 “구제금융 같은 위기 때 실직한 한국 남성들이 집에서 견디지 못하고 출근 시간이면 하나같이 집을 나서는 모습은 오스트레일리아의 지도교수도 굉장히 독특한 현상으로 기억할 만큼 실직한 한국인들이 기력 없어 하는 것은 유별나다”고 했다. 수많은 실직자가 삶의 무게를 홀로 견디다가 자신을 고립시키고 산으로 가서 둘레길을 빙빙 돌거나 가출을 하거나 심지어 목숨까지 끊을 만큼 한국 남자들은 경제력 상실을 너무 크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즉 노동은 삶의 일부인데도, 전부를 잃었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경제적 부침을 겪는 게 한국 남자들만은 아닌데, 왜 경제적 위기에 한국 남자들이 더욱 힘들어할까.
“한국 남자들이 이런 위기 상황에서 고립되는 숨겨진 진짜 이유는 가족들과 친밀감이 형성되어 있지 않아서 자신의 취약함을 가족들에게 드러내지 못하기 때문이죠. 한국 남자들은 능력 있고, 돈 있으면 만사형통인 줄 아는데, 그건 잘못된 신화입니다. 친밀함은 능력으로 형성되는 게 아니에요. 친밀한 관계는 자신의 능력을 과시할 때가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취약함을 나눌 때 깊게 형성되죠.”
‘한국남성 불행 원인’ 등 살핀 책 내
“한국남자, 경제위기에 더 취약
유교·군대문화 탓 권위주의 심해
가족에게도 약점 드러내지 못해
약해도, 약함 고백해도 괜찮아요”
‘구사대 활동’ 번민 뒤 사제의 길
실직한 남자들이 가족 사이에 끼지 못하고 겉돌다 마지막에 극단적인 선택까지 하는 이유는 자신의 취약함을 드러내지 못해서라는 것이다. 그는 “취약함을 드러내지 못한 까닭은 자기 안에서 올라오는 감정을 보지 못하고 애써 무시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왜 유독 한국 남자들의 감정이 무딜까. 김 신부는 그 원인을 두고 유교문화와 군대문화, 반공주의 교육에 의해 권위주의에 길들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위계를 나눠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낮은 지위의 사람에게 자신의 권위를 수용하도록 강요하는 폭력적 문화가 군대문화를 통해 재생산되어 가정에선 가부장적인 문화가 자리 잡고, 기업에도 고착되어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보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에겐 비굴할 정도로 굴종하고, 자기보다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에겐 비열할 정도로 위세를 부리며 비인간적으로 대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사람들을 지배하거나 자신이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더 높은 지위에 오르려고 매진할 뿐, 상대의 말을 경청하고 공감하는 것을 체득하지 못해 지위라는 끈이 떨어지면 벼랑 끝으로 추락한 것처럼 생각한다는 것이다.
“왜 한국 남자들이 자기답게 살지 못하고 직업이나 지위에 목을 맬까요. 페르소나라는 마스크를 너무 강조하는 문화 때문이에요. 그 때문에 직업이나 지위 같은 사회적 역할을 실제의 자기 자신이라고 착각하기에, 그런 껍데기에만 관심을 보이며, 높은 지위에 오르려는 욕망을 불태우고, 그 지위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었다고 또 착각하는 것이죠.”
가톨릭 예수회 김정대 신부. 조현 종교전문기자
김 신부는 “‘나는 누구인가’, ‘내가 누구인가’를 심각하게 질문할 것”을 주문했다. 그도 사회적 규범과 자신 사이에서 분열을 통해 진정한 자신을 찾아갔던 시절이 있었다. 그는 예수회 입회 전 반도체회사 엔지니어였다. 1989년 노조가 파업에 들어가자 회사는 직장폐쇄 신고를 하고, 그에게 파업을 막으라는 지시를 내렸다. 회사는 그에게 구사대 역할을 강요했지만, 그는 엄청난 양심의 가책을 느껴 이를 거부했고 결국 인사위원회로부터 1개월 출근정지 처분을 받으며, ‘강요받은 페르소나’를 벗고 예수회에 입회했다. 그는 사제가 됐지만, 사제라는 페르소나에 갇혀 있지만은 않았다. 2004년부터 2011년까지 7년 동안 인천에서 노동자술집 ‘삶이 보이는 창’을 운영하며 직접 술과 안주를 나르기도 했다. 또 최근엔 ‘남자 요리교실’을 운영하며, 수강생들이 요리를 하면서 공감력을 키워가도록 이끌기도 한다.
경직된 사회구조와 문화로 인해 자기의 감정을 제대로 들여다보지도 표현하지도 나누지도 못하면서 친밀감조차 형성하지 못하는 한국 남자들을 위해 그는 지인들의 혼인 자리에서 나눠주는 덕담을 건네며 취약함을 드러낼 용기를 북돋워 준다. “여러분은 사랑을 받을 만큼, 혹은 사랑을 할 만큼 충분히 약합니까? 그렇다면 사랑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약해도 괜찮고, 약함을 고백해도 괜찮습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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