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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조현이만난사람

병든 몸 벗고 빛나는 몸 받으소서

등록 2023-07-04 19:20수정 2023-07-05 15:22

정토마을자재병원장 능행 스님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정토마을 자재병원장 능행 스님. 조현 종교전문기자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정토마을 자재병원장 능행 스님. 조현 종교전문기자

‘나’보다 ‘우리’가 익숙했었던 우리. 그러나 어느새 ‘우리’보다 ‘나’를 앞세운 시대입니다. 경쟁과 적자생존 속에서 빈부격차, 정치 이념 갈등과 남녀노소로 갈리며 개인과 개인의 소통도 막혀갑니다. 그래서 함께하는 삶이 더욱 그립습니다. 외로워도 슬퍼도 함께하면 견딜 수 있습니다. 한겨레와 플라톤아카데미가 ‘함께하니 더 기쁜 삶-일상 고수에게 듣다’를 10차례에 걸쳐 진행해 더불어 사는 삶이 주는 맛을 나눕니다. 열번째는 정토마을 자재병원장 능행 스님(63) 입니다.

삶과 죽음의 거리는 얼마나 될까. 은하계의 저 먼 별만큼이나 멀까. 지난달 23일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정토마을자재병원을 찾았다. 병든 자를 치유해준다는 약사여래상 아래 그늘에서 병원장 능행스님과 마주했다. 잠시 뒤 앰뷸런스가 와서 한 주검을 싣고 갔고, 30분 뒤엔 링거를 꽂고 휠체어에 앉은 말기 암 환자가 도착했다. 아름다운 영남알프스로 둘러싸여 피안인 듯한 이곳에서 죽음은 현재형이었다.

능행스님은 1999년부터 충북 청원군 미원면 대신리 구녀산 자락에서 오갈 데 없는 말기 암 환자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그 치열한 현장을 담아 2005년 펴낸 베스트셀러 <섭섭하게, 그러나 아주 이별이지는 않게>에 이어 낸 <이순간>과 <숨>은 죽음의 관문을 잘 통과하도록 안내한 명저들이었다. 그는 구녀산 자락에 밀려드는 말기 암 환자들을 감당하기 어렵게 되자 모금을 통해 이곳 영남알프스 자락에 1만여평의 터를 마련해 2013년 자재요양병원을 열었고, 다시 지난 1월에 25병상을 허가받아, 요양병원을 호스피스 완화 의료전문기관으로 전환했다.

병원 옆엔 호스피스와 영적돌봄전문가를 양성하는 마하보디임상교육원 건물이 있다. 티베트불교의 지도자 달라이라마와 스리랑카에서 보낸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간월사도 오는 9월16일 낙성식을 봉행할 예정이다. 생의 마지막을 보내는 환자들을 돌보는 것을 수행으로 삼아 보살도를 닦는 수행자들과 의료진과 봉사자, 능행스님의 보살행에 감동받아 달라이라마가 보낸 계세(13년 이상 경전공부와 수행을 마친 스님)와 하담빠(20여년 동안 경전공부와 수행을 마친 최고 학위자) 스님들 5명이 함께 살며 마음공부를 지도하고 있다. 정토마을 대중스님 25명과 의료진과 봉사자 등 54명이 거주하며 보살도와 수행을 함께하는 대가람이 됐다. 그야말로 돈 한 푼, 돕는 사람 한 명 없이 맨몸으로 바랑 하나 메고 나선 능행스님이 이룬 불사는 기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 법정스님의 글을 보고 불교를 안 능행스님은 법정스님처럼 한적한 곳에서 살며 수행하고 싶어 30살에 출가했다. 그런데 1997년 봉사하러 간 한 병원에서 죽어가던 비구승을 만나며 호스피스란 듣도보도 못한 길로 들어섰다. 편생 선방에서 참선을 하다 말기암에 걸려 타종단의 병원에 입원한 뒤 ‘예수 믿어라’, ‘병자성사를 받아라’는 권유를 받았던 선승은 ‘불교계에서 스님들을 위한 병원을 만들어준다는 약속을 하기 전엔 죽을 수 없다’고 숨을 몰아쉬었다. 그 약속을 떨치지못해 어떻게 병원을 지어야할지 몰랐던 능행스님은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불자들이 가장 많이 오갈듯 싶은 계룡산 동학사 어귀에 모금통을 놓고 세시간동안 목탁을 두드렸다. 모금함엔 50원이 들어있었다. 50원으로 시작해 십시일반 후원금을 모아 수많은 말기암환자들을 돌보는 사이 능행 스님의 대장부같던 몸도 반쪽이 되었다. 매일 매일 생사의 전쟁을 치르듯 살아온 삶이었다. 이 많은 말기암환자들을 자신이 감당하기엔 너무 벅차다며 도망치고 싶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불교호스피병원을 혼자는 할 수 없다며 큰스님을 찾아갔다가 ‘중이 수행이나 하지 왜 허튼짓이냐’며 호통을 듣기도 했다. 잠시 그를 도와주러왔던 도반들이 안거(90일간이 집중 참선수행)에 간다며 떠나가버려 덩그러니 혼자 남을때는 마치 무인도에 혼자만 내팽겨쳐진것 같은 외로움에 울기도 했다.

20년 전 초기 구녀산에선 말기 암 환자만이 아니라 에이즈 환자들까지 찾아와 돌보고 있었다. 2003년 너무 고통스러워 몸부림치던 에이즈 환자에게 주사를 놓다가 주삿바늘에 능행스님과 간호사가 찔리는 사고를 당했다. 그런 의료사고가 나면 보건복지부 매뉴얼에 따라 50일간 집중적으로 약을 먹고 검사를 해야 했다. 간호사는 독한 약으로 신장이 나빠져 떠났다. 능행스님도 간이 많이 상했지만 말기 암 환자를 두고 떠날 수 없었다. 그때 달라이라마가 인도 델리에서 보자고 연락이 왔다. 달라이라마는 “부처님 제자로서 이런 일을 마땅히 해야 하는데, 나는 하고 싶어도 못하고 있다. 얼마나 어려움이 많겠느냐. 잘 견뎌주고 이 길을 포기하지 않고 가주길 바란다. 이런 삶이 수행이다. 이런 자비행을 위해 공부를 하고 수행을 하는 것이다. 견뎌주고, 이겨내고. 이 길에서 수행해달라”고 당부했다. 오랜 외로움을 한방에 녹이는 말씀이 아닐 수 없었다.

“존자님을 뵙고 5일간 존자님의 <입보리행론>을 들으면서 무엇이 진정한 자비심이고 연민인지 그간의 자신을 반성하고 참회하면서 너무도 많은 눈물을 쏟았다. 존자님의 말씀이 출가자로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삶의 방향을 의심치 않게 해줬다. 당시 몸이 망가져 이제 쉬어야 할 때라고 생각했는데, 델리에서 돌아와 검사해보니 죽어가던 간 세포가 다 재생되어 있었다.”

하지만 호스피스의 일은 고단하기 그지없다. 가족이 말기 암에 걸려도 벌어 먹고살기 바빠 29명의 환자 가운데 가족이 계속 환자 곁을 지키는 경우는 현재 1명뿐이다. 개인적으로 간병인을 두는 경우도 한두명 정도다. 의료진과 봉사자들의 하중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임종자들을 돌보는데도 의료수가가 일반병원과 다름이 없어 대우조차 별것 없으니 의료진들이 기피하기 십상이다. 더구나 도심이 아닌 호스피스병원들은 의료진 구하기도 쉽지 않다. 이 때문에 가톨릭의 대표 격인 동두천의 모현호스피스병원 등 많은 호스피스 병원이 연이어 문을 닫았다. 고령화시대 마지막 가는 길을 더욱 돌봐야 할 시대에 호스피스병원이 더욱 줄어들고 있는 현실이다. 그나마 이곳에선 능행스님의 상좌들을 비롯한 6명의 스님들이 임종과정의 70~80%가량을 의료진을 대신해 지켜주고 있어 젊은 의료진들의 부담을 덜어준다. 대신 밤낮을 가리지 않는 임종으로 인해 스님들의 피로도는 이만저만이 아니다. 능행스님은 퀭하면서도 형용한 상좌들의 모습을 보며 “은사를 잘못 만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타 종단에 비해 성직자 복지가 미약한 불교계이기에 능행스님은 지친 몸으로도 이 일을 접을 수 없다. 스님들이 퇴원 뒤에도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자재병원 기숙사를 리모델링해 미타원으로 꾸미려 했지만, 코로나로 많은 후원자들이 끊기고, 호스피스병원 운영마저 어려워 시작조차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 때문에 힘겨워 하는 능행스님을 주위에서 걱정하지만 정작 그가 걱정하는 것은 죽어가는 사람들이다. 그가 호스피스병원을 만든 것은 죽음을 품격있게 준비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숨이 끊어지기 직전까지 이 병원 저 병원을 돌며 고가의 주사만 맞다가 가족들과 감사와 화해의 말 한마디 남기지 못하고, 다음 생을 준비하는 과정도 갖지 못하고 황망히 떠나는 모습을 볼 때마다 그는 신음을 토한다. 2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죽어가는 말기 암 환자의 95%가량의 죽음을 준비하지 못하고 대낮에 호랑이에 잡하먹히듯 죽어가는 모습이 안타까울 뿐이다.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정토마을자재병원장 능행 스님이 약사여래상 앞에 앉았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정토마을자재병원장 능행 스님이 약사여래상 앞에 앉았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암 진단을 받는 순간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며 너무 기가 막혀 망연자실해 한다. 그러다가 암이 다른 장기에 전이되고, 시한부 선고를 받으며 또 한번 죽는다. 그때는 육체적 고통뿐 아니라 허망하고 무섭고 외롭고…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정이 소용돌이친다. ‘내가 이러려고 그렇게 열심히 살았나?’라는 회한도 든다. 감정의 쓰나미로 고통스러운 말기 암 환자가 오면 이곳에선 의료진뿐 아니라 상담가 등 여러 분야의 전공자들이 상담하고 다양한 치유법을 통해 돌본다. 그러다 보면 죽음을 받아들이고, 가족들끼리 맺힌 마음을 풀고 화해하고, 환자는 죽어서 원하는 생으로 태어나기 위해 준비한다.”

이런 남다른 돌봄 시스템을 갖춘 곳이 많지 않기에 서울의 유명 대학병원 의사들도 말기 암 환자들에게 정토마을 자재병원을 소개해주곤 한다. 이곳은 층마다 가장 좋은 방이 임종실이다. 임종 2, 3일 전부터 임종실에서 가족 및 스님들과 함께 마지막 돌봄을 받는다. 대부분의 병원에서 사망진단이 내려지면 가족들이 미처 망자와 충분히 이별을 고하거나 기도도 하기 전에 주검이 바로 냉동실로 옮겨지는데 반해 이곳에서는 주검의 체온이 다 식을 때까지 8시간 넘게 가족들과 스님들이 망자와 이별을 하고 기도를 하며 다음 생으로 가는 길을 안내해준다. 강도를 당하듯 죽음에 끌려가지 않고 스님들과 함께 준비된 임종을 맞는 이들의 마지막 모습을 전해줄 때는 능행스님의 입가에도 평화로운 미소가 떠올랐다.

“2년 전 떠난 루게릭병 환자는 결혼 2년 만에 발병해 16년을 앓던 분이었다. 부인과 형제들도 떠나고 혼자였는데, 손가락 두개 밖에 못 움직이는데도 우리 병원에 입원한 1년 동안 인터넷을 통해 아침저녁 예불을 한번도 빠트리지 않았고, 위파사나 알아차림 수행을 했다. 이번 생은 몸이 아파 타인을 별로 이롭게 하지 못했는데, 다음 생엔 건강한 몸을 받아 이타행을 하고 싶다고 했다. 마지막엔 루게릭병을 연구하도록 주검을 기증했다. 이 몸은 껍데기이니 3시간 안에 몸을 비워줄 테니 동국대 의대에 주검을 챙겨가도록 전화해달라고 부탁했다. 보통 주검은 8시간이 되어도 온기가 안 식는데, 그분은 한시간 만에 몸이 다 식었다. 통상 숨이 떨어질 때 몸이 경직돼 10시간이 지나도 잘 풀리지 않는데, 이분은 루게릭으로 뒤틀린 몸이 숨이 끊어진 뒤 한시간 만이 근육까지 모두 이완돼 편안해 보였다. 이 몸뚱이는 껍데기라는 것을 보여준 그 수행의 힘에 우리 모두 놀라도 감동했다.”

그는 깊은 절망에 빠진 말기 암 환자에게도 병든 몸을 벗고 빛나는 몸을 받아 더 아름다운 생을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을 건네준다. 그의 그윽한 눈빛에 아픔이 녹은듯 휠체어를 탄 말기 암 환자가 자재병원 옆 지장보살상 앞에서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그 위로 구름이 지나고 구름 너머 하늘이 맑고 투명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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