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명상가 존 카밧진. 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나’보다 ‘우리’가 익숙했었던 우리. 그러나 어느새 ‘우리’보다 ‘나’를 앞세운 시대입니다. 경쟁과 적자생존 속에서 빈부격차, 정치 이념 갈등과 남녀노소로 갈리며 개인과 개인의 소통도 막혀갑니다. 그래서 함께하는 삶이 더욱 그립습니다. 외로워도 슬퍼도 함께하면 견딜 수 있습니다. 한겨레와 플라톤아카데미가 ‘함께하니 더 기쁜 삶-일상 고수에게 듣다’를 진행하며 국내편에 이어 미국에서 6명의 고수들을 만났습니다. 미국편 첫번째는 세계적인 명상가인 매사추세츠주립대 의학부 명예교수 존 카밧진(79) 박사입니다.
지난달 15일 존 카밧진 박사가 살고 있는 미국 메사추세츠주의 목가적인 도시 노샘프턴을 찾았다. 그가 추천한 아담한 시골 호텔에 나타난 그는 목발을 짚고 있었다. 숭산스님(1927~2004)의 주례로 결혼식을 올렸다는 그는 숭산스님과 금강산을 여행한 적이 있다는 기자를 반색해 반기며, 전날 넘어져 다리를 다친 불편한 몸임에도 애초 예정된 시간을 넘겨 열정적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마음챙김’(Mindfulness-Based Stress Reduction·MBSR) 창시자인 존 카밧진은 1979년 메사추세츠주립대학병원에서 통증과 스트레스로 고통받는 환자들을 마음챙김 명상을 통해 치료하기 시작한 이래 불교수행을 환자 치료에 접맥시킨 심신통합의학의 선구자로 꼽힌다. MBSR은 현재 전세계 800여 병원과 클리닉에서 치료에 활용되고 있다. 마음챙김이 학교, 기업, 군대, 스포츠, 문화에 폭넓게 활용되기까지 존 카밧진이 다리 구실을 했다. 그가 ‘미스터 마인드풀니스’(마음챙김)라고 불리는 까닭이기도 하다. 그가 처음 꺼낸 화두는 외로움이었다.
“미국 공중보건 최고 책임자가 오늘날 미국인의 가장 큰 질병은 외로움이라고 했다. 나는 이 외로움이 우울증과 소외감의 근본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이 문제의 근본적 원인은 외로움이 아니라 ‘단절’이라고 했다. 결여된 것은 소속감이기 때문에 외로움 자체보다는 단절을 문제의 근본 원인으로 본다는 것이다. 불안과 우울증, 외로움 같은 감정은 단절감으로 인해 일어난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그는 1979년 ‘MBSR 클리닉’을 만든 이유도 “우울증, 불안감, 만성통증, 암, 심장병 환자들이 자신과 단절을 극복하고 연결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였다”고 고백했다.
“단절은 조절 장애를 일으키고, 이는 다시 정신이나 신체적 질병으로 이어진다. 반면 연결은 평화와 웰빙, 건강으로 이어지는 생물학적 조절을 향상시킨다.”
그는 “세상과도 연결해야 하지만, 먼저 집에서 자기 자신으로부터 연결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거기서부터 명상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그는 의학과 명상을 연결시킨 선구자답게 “영어로 의학(medicine)과 명상(meditation)이라는 단어를 주의 깊게 들어보면 두 단어는 매우 비슷하고 깊은 연관이 있다”며 “의학이란 약물, 수술, 치료법 등에 있어서 의학적 문제가 있을 때, 이런 균형의 연결을 가능한 모든 수준까지 회복하는 것이며, 명상이란 내면과 깊게 연결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다리를 겹질려 삐었기에 통증(pain)이 있다고 해서, 그로 인한 고통(suffering)까지 짊어져야 하는 것은 아님을 강조했다. 알아차림이 있다면 통증과 고통을 분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영어로 고통(suffering)은 라틴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여러분이 짊어지고 있는 것’을 뜻한다. 많은 경우 우리는 자신이 부족하고, 외롭고, 소속감이 없고, 또는 내게 어떤 문제가 있다는 느낌을 짊어지고 있다. 이는 매우 큰 스트레스이고 짐이다. 우리는 마음챙김과 훈련을 통해 이 고통이 참 나가 아니라는 것을 인식한다.”
그는 “우리가 라틴어로 호모 사피엔스라 부르는 인간 종은 인식하고 그 인식하는 것을 아는 종이란 뜻”이라며 “너무 정신없고, 폭력적인 세상을 치유할 길은 알아차림에 있다”고 했다.
“사람들의 마음은 사방으로 흩어져 있어서 이런 알아차림이 쉬운 것은 아니다. 우리 마음은 길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명상 수행은 일종의 마음 훈련이다. 마음이 흩어지면 다시 하나로 모은다. 우리 마음에 무엇이 있는지를 알아차리고, 산만해진 우리 마음을 바로 보면서 배우고 성장한다. 또한 우리가 만드는 이야기에 속지 않고, 어떤 의미에서 보면 시간 밖에서 존재하는 현재의 순수 인식 세계로 들어간다.”
세계적인 명상가 존 카밧진 박사. 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마음챙김은 수천년 이어져온 불교명상의 핵심이다. 삶의 고통으로부터 해탈하기 위한 마음챙김을 그는 어떻게 환자 치료에 활용할 생각을 했을까. 그가 1976~79년 매사추세츠주립대 해부학·세포생물학 실험실에서 일하던 때였다. 그는 마취과, 정형외과 등 만성통증을 치료하는 의사들에게 “당신이 보는 환자 중 몇 퍼센트의 환자에게 도움을 준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의사들은 “15~20%의 환자들에게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맙소사, 그렇다면 나머지 80~85%의 환자들은 어떻게 되는거냐?”고 되물었다. 의사들은 “환자 스스로 나아지기도 하고, 혹은 절대 나아지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것이 마음챙김 명상을 하던 그가 마음챙김을 기반으로 한 클리닉을 시작한 이유였다. 처음 그 클리닉에 온 환자들은 평균적으로 8년 동안 만성진단을 받고도 불만족하거나 최소한의 만족도 없는 이들이었다. 그런데 그 클리닉에서 약물없이 명상만으로 8주 만에 통증이 눈에 띄게 완화되었고, 4년간 추적 관찰한 결과 명상 수행을 계속할 경우 그 효과는 지속되었다.
“불안장애를 가진 사람이 8주간 마음챙김을 하면 적어도 불안장애의 대표적 약물인 렉사프로 효과 만큼이나 불안이 줄어든다는 것이 최근에 밝혀졌다. 제약회사에서 마음챙김을 약으로 만들 수 있다면 엄청난 돈을 받고 팔겠지만, 마음챙김은 무료다.”
그는 또 “영국과 캐나다의 제 동료들이 90년대 후반에 개발한 마음챙김 기반 인지치료는 여러 임상실험을 통해 적어도 항우울제만큼 효과가 좋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며 사례를 소개했다. 그는 마음챙김이 부유층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더욱 힘든 사람들의 삶도 개선시키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전하기 위해 홈리스들과 감옥 수감자들을 위한 마음챙김 명상을 수년간 이끌기도 했다. 그는 또 그의 장인으로, ‘미국 민중사’를 쓴 사회학자인 하워드 진과 함께 반전평화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그는 메사추세츠공대(MIT)에 재학하던 21살 때 일본 선불교 전통을 이은 선사였던 필립 카플로한테서 선(禪)을 처음 접한 이후 숭산스님에게도 배웠다. 그는 틱낫한에 대해 “스승이라기보다는 도반과도 같은 관계였으며, 인도의 크리슈나무르티를 만난 적은 없지만 그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존을 비롯한 서양 엘리트들이 1960~70년대 동양의 수행에 심취한 이래 마음챙김은 이제 미국 주류사회에 자리잡게 됐다.
“최근 하버드대학에 틱낫한 마음챙김센터가 생겼고, 전 세계 대학과 의료센터에 마음챙김센터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50년 전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는데, 이런 일들이 현대 대학 교육과 연구, 인간 발달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마치 화두처럼 흥미롭다.”
존과 만남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명상에 대한 그의 철저함이었다. 유대인이면서도 유대계율에 매이지않고, 불교 명상으로 명상을 시작하고서도 자신을 불자로 규정하지 않은 그는 불교가 아니라 ‘다르마’(법·진리)를 강조했다. 그는 마음챙김에 대해 ‘지금 이 순간 어떤 대상을 판단하지 않고, 주의를 기울일 때 일어나는 알아차림 (자각)’으로, ‘순수한 인식’이라며 단순 명쾌하게 설명했다.
“편협한 견해를 갖지 않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편협하다는 것은 기독교적 견해, 가톨릭적 견해 또는 불교적 견해 등 어떤 좁은 견해에 갇혀 있다는 뜻이고, 이 모든 것들은 단지 하나의 견해일 뿐이다. 우리는 가능한 넓은 관점, 큰 마음을 유지하며, 자신을 중심으로 한 또 다른 이야기로 만들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서 그는 “다르마가 수도원(사찰) 밖으로 나와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길을 제시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세상은 정말 믿을 수 없는 빠른 속도로 변해 이미 챗지피티와 인공지능 시대에 들어섰다. 그럼에도 우리 아이들은 왜 우울하고 불안해 할까. 우리가 만들어가는 세상에서 인간다움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야 한다.”
현재진행형인 전쟁과 인명살상이 보여주듯이 현재 우리는 극도로 파괴적이어서 인간으로서 본성을 깨우치기 위해 깨어나야 하고 이를 위해 다르마가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본성과 다르마를 모를 때 우리는 감정과 생각,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의 포로와 노예가 되어 끔찍한 행동을 할 수 있지만, 본성과 법을 알면 자비와 아름다움과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다음은 일문일답이다.
존 카밧진과 조현 기자. 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매일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사람에게 마음챙김 명상이 큰 도움이 된다. 스트레스는 끊임없이 돈과 성공만을 갈망하며 쉬지 않고 자신과 가족을 돌보지 않은 성공지향적 가치관과 과도한 욕망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현대인은 먹고살기 위해 열심히 일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신은 욕망과 휴식 사이에서 방황하는 현대인들에게 어떤 조언을 주겠는가.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 스트레스 없는 인생은 없다. 하지만 스트레스와 어떤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질 수 있다. 문제는 어떻게 현명한 관계를 맺느냐다. 명상은 근육운동과 같다.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발생하더라도 공격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상황에 맞는, 가장 편안한 방법을 찾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어린 시절 다쳐 상처난 발을 수술하던 중 의사가 실수로 수술바늘을 발 속에 넣고 실을 꿰메는 실수를 하는 바람에 평생 통증에 시달렸다. 그 경우 마음챙김 명상을 통해 ‘통증’, ‘통증’하고 알아차리는 것보다 그 통증의 원인인 바늘을 제거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닌가. 위파사나 10일 코스, 20일 코스에 참여할 때도, 어떤 수행자는 자기만의 못된 버릇, 습관을 반복하거나, 봉사자도 강한 에고를 드러내 불화를 낳기도 한다. 그런 질긴 습관은 트라우마나 핵심감정, 신념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알아차림보다 더 깊은 자신의 무의식의 탐구가 필요하지는 않은가?
“전적으로 그렇다. 누구나 외로움, 우울함, 고립감을 느낀다. 마음챙김이 인생의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우리가 마음에 대한 친밀감을 키우면 고통을 일으키는 원인과 조건을 볼 수 있다. 알아차림은 그런 원인과 조건으로부터 우리를 즉시 해방시킬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하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때로는 수년간의 수행이나 심리치료가 필요하기도, 사랑하고 돌보는 사람과 함께해야 하기도 한다. 우리 모두에게는 트라우마가 있다. 우리가 몸과 호흡, 인식, 주의력 등에 집중하면 트라우마에 갇혀있는 상태에서 점차 변화되어 트라우마에 더이상 파괴되지 않는 우리의 세계관을 형성할 수 있다. 스스로에게 친절하고 공감할수록, 고통받는 타인도 친절과 자비로 포용할 수 있다.”
명상하는 존 카밧진 박사. 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어떤 사람들은 명상이 자신의 문제와 자기 자신에만 너무 많은 관심을 기울이도록 조장한다고 주장한다. 행복해지려면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친절하게 하는 노력이 중요한데 너무 자신의 마음 속에만 집중하고, 마음 안에 머물게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숨 쉴 때는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것만 본다. 거기에 내가 들이마신다거나 네가 들이마신다는 것은 없다. 나와 상대의 분리가 없다. 마음챙김은 내면의 생각에 집중하는 것이 아닌 그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우리가 내면의 생각에 집중하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고, 그것은 두통이나 다른 문제들을 일으킬 수 있다. 생각을 개인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저 인식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로 본다면, 그것들의 본질에는 ‘나’가 없다. 나와 상대의 분별이 없는 자리를 자각하면, 우리의 인식(알아차림)이 우리가 만들어내는 이야기보다 더 크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는 누구인가? 위대한 명상가, 위대한 과학자, 위대한 기자. 이것은 우리의 이야기일 뿐이다. 당신은 누구인가, 가장 솔직한 대답은 숭산스님이 말씀하신 ‘모른다’이다. 모르는 것도 인식의 한 형태다. 인식(알아차림)은 단순히 아는 것에 대한 인식뿐 아니라 모르는 것에 대한 인식이다. 그 안엔 엄청난 해방감, 자유, 통찰력뿐만 아니라 고통받는 지구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자비도 있다.
-숭산스님이 당신의 결혼식때 주례를 섰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은데 사실인가.
“그렇다. 결혼식 주례를 해 주셨다. 그때 결혼 서약으로 나는 “만생령을 위해 이 결혼에 임하겠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 숭산스님께서는 아주 크게 한국식으로 결혼식을 하길 바라셨지만 우리는 작은 결혼식을 원해서, 저와 아내, 숭산스님 그리고 레리 로즈버그 네 명이 참석했다. 레리 로즈버그는 저와 가까운 도반이었고, 숭산스님의 제자로 화계사에서 1년 좀 넘게 살았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