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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조현이만난사람

“지금 여기서 재밌고 행복해야 천국에도 갈 수 있어요”

등록 2021-04-25 19:05수정 2021-04-27 12:23

【짬】 수원교구 기산성당 홍창진 주임신부

홍창진 신부는 사진을 찍자 자연스럽게 활짝 웃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홍창진 신부는 사진을 찍자 자연스럽게 활짝 웃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홍창진(60) 신부는 ‘열혈사제’다. 드라마 속 열혈사제가 정의를 위해 몸을 불살랐다면, 그는 노는 데 열정을 쏟는 사제다. 티브이(TV)에도 단골 출연한다. <동치미>(MBN)와 <오 마이 갓>(tvN)에 고정 출연했고, <아주 각별한 기행: 홍창진 신부의 절집 탐방>(EBS) 진행도 맡았다. 한때는 오페라 <토스카>에서 추기경 역을, 연극 <레미제라블>에서 미카엘 주교 역을 맡아 연기했다. 연예인인지 사제인지 모를 그가 최근 <괜찮은 척 말고, 애쓰지도 말고>(허들링북스)란 책을 냈다.

지난 14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한 카페에서 홍 신부를 만났다.

홍 신부는 괴짜 신부, 날라리 신부, 심지어 조폭 신부로도 불린다고 스스로 책에 쓸 만큼 유쾌하다. 그는 신학교에 진학한 뒤 친구들에게 입학 사실을 말하지 못했다고 한다. 중·고교 재학 때 오락반장과 학교 응원단장을 도맡았던 그가 연예계에 진출했을 것으로 지레짐작하는 친구들에게 차마 신부 후보생이 됐다는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친구들은 그의 겉모습만 보고 판단했던 것이다.

사실 그는 조용필의 ‘그 겨울의 찻집’ 가사처럼 늘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는 여린 소년이었다. 괜찮은 척하며 웃고 떠들었지만, 실은 전혀 괜찮지 않았다. 그래도 혼자 숨어서 울지 않았던 그는 ‘우는 것보다 울지 않는 것이 더 슬프다’는 것을 안다.

“어려서부터 집이 가난했어요. 7남매 중 다섯째인 제가 태어나면서 집안이 폭삭 망했대요. 재수 없는 놈이란 소리를 들었어요. 부자 동네여서 잘사는 집 아이들 비위를 맞춰가면서 살고, 오락부장·응원단장을 하며 웃고 떠드니 마음 속은 더 고독하고 허전했지요.”

유일한 탈출구는 성당의 자상한 수녀들과의 교류였다. 또 조건 없이 사랑해주고 사제의 길을 권유한 길홍균 신부 덕에 나쁜 길로 빠지지 않을 수 있었단다. 그는 가난과 우울의 긴 터널을 지나오면서 ‘즐거움과 재미를 포기하는 것만큼 큰 죄는 없다’고 생각했다.

“노동 중에 제일 힘든 노동은 같은 일만 반복하는 거예요. 같은 일에서 해방시켜주는 게 놀이예요. 그래서 아주 적극적으로 놀 궁리를 해요. 명예를 잃고 사회적으로 매장된 사람은 생물학적 죽음보다 4배나 더 큰 고통을 느낀다고 해요. 체면을 중시하는 한국인들은 더하겠지요. 설사 죄를 뒤집어쓰고 귀양살이를 가도 놀이를 찾으면 인생이 부활해요. 정약전을 보세요. 흑산도로 귀양 가서도 물고기하고 놀면서 <자산어보>를 쓰잖아요. 인생 ‘폭망’해도 또 다른 재미를 찾으면 살 만해요.”

방송 단골 출연에 오페라·연극도
최근 ‘괜찮은 척 말고…’ 책 펴내
학창 시절 오락·응원 도맡았지만
가난과 우울의 터널 속 고통 겪어

“즐거움과 재미 포기가 가장 큰 죄
청춘들, 연애 맘껏 했으면”

홍창진 신부. 조현 종교전문기자
홍창진 신부. 조현 종교전문기자

그는 늘 죽음을 앞두거나 죽은 자를 대면해야 하는 사제다. 그러면서 ‘지금 여기’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닫게 됐다고 한다. 지금 여기서 행복하지 않고 지옥 같은 마음 상태인 사람이 천국에 갈 리가 없으며, 지금 여기서 재밌고 행복하게 사는 사람만이 죽어서도 천국에 간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날마다 재미만 추구하며 노는 데 전념하지는 않는다. 그는 가톨릭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을 맡은 33년차 중견신부로, 거의 매일 미사를 집전하고 강론을 해야 하는 ‘거룩한’ 몸이다. 그런데도 짬을 내 방송에 출연하고, 저녁 모임을 만들어 놀기까지 하는 것은 여간 부지런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노는 신부’로 알려진 그도 3년 전까지만 해도 사제복과 놀이 사이의 괴리에서 방황했단다. 그러다 사람들과 소통하는 데서 재미와 행복을 느끼는 자신의 본모습을 재확인했다. 그렇게 자기 ‘꼬라지’를 분명하게 자각한 뒤부터는 노는 데 더욱 떳떳해질 수 있었다고 한다.

홍 신부는 연애를 권하는 사제다. 그는 “같은 독신자 처지인 스님들과 만나면 ‘우리들은 못해도 다른 사람들에겐 많이 하라고 그렇게 권하는데도 못 한다’고 농담처럼 흉본다”며 “우리한테 욕먹지 않으려면 더 열심히 신이 내린 선물을 즐기라”고 말한다.

“성당에서도 청춘남녀가 함께 모이는 중고등부나 청년회는 분위기가 달라요. 생기가 넘치죠. 남녀가 같이 있기 때문이에요. 그건 축복이에요. 성경과 교리에선 연애를 반대한 적이 없어요. 30~40대 싱글들이 이성한테 몇 번 상처 좀 받았다고 숨어서 성직자처럼 사는 건 고매한 게 아니라 바보지요. 상처를 떨치고 다시 연애를 하는게 자연스런거잖아요.”

그는 현대인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인간관계를 두고도 상처받지 않는 방법을 간단명료하게 제시한다.

“인간관계는 세 부류로 나눌 수 있어요. 첫 번째는 혈연. 핏줄이 사고를 쳐도 어쩔 수 없이 함께 가야 해요. 두 번째는 우정을 나눌 만한 친구, 세 번째는 이권관계예요. 상대가 산 땅이 20배나 올랐을 때 배가 아프면 세 번째, 배가 안 아프면 두 번째예요. 두 번째에 해당하는 친구와는 감정을 교류해야지요. 하지만 세 번째에는 감정 소비를 하지 말아야 해요. 이권관계에는 매뉴얼대로만 대응할 뿐 기대를 하지 않으면, 설사 상대가 갑질을 해도 상처를 안 받을 수 있어요.”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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