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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조현이만난사람

“핏줄과 생각 달라도 포용하는 게 바로 예수 가르침이죠”

등록 2021-05-20 18:21수정 2021-05-21 08:18

【짬】 예수살기 상임대표 조헌정 목사

조헌정 목사. 조현 기자
조헌정 목사. 조현 기자

조헌정(68) 목사는 흰 수염의 해사한 얼굴에 한복을 입고 다녀 산신령 혹은 들신령으로 불린다. 느긋한 성격에 매년 히말라야와 산티아고 순례를 다니기에 탈속의 신령을 연상케 하지만, 그는 한국의 대표적인 민중교회인 향린교회 담임 목사를 했고,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화해통일위원장과 전태일재단 이사장을 거쳐 지금도 전국예수살기와 6·15남측위원회 대표, 씨알사상연구원장을 맡고 있는 실천파다. <갈라진 땅에 선 예수>(동연 펴냄)라는 통일 에세이집을 낸 조 목사를 지난 14일에 만나 ‘왜 다시 통일을 말하는지’를 물었다.

“분단으로 인해 고통이 한둘이 아니지만, 증오심은 상대뿐 아니라 자신을 죽여요.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 가운데 자살률이 왜 가장 높을까요? 그리고 유럽에서 유일하게 철조망으로 분단된 키프로스가 왜 자살률 2위일까요? 가난해서, 경제 성장을 못 해서일까요? 전쟁으로 서로를 죽이고, 하늘이 두쪽 나도 용서할 수 없다며 상대를 원수로 증오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생명을 경시하게 돼요.”

조 목사는 24년간 미국에서 공부하고 목회 활동을 하며 살았다. 그때도 분단과 전쟁과 증오심으로 인해 한국 유학생들끼리 말싸움 끝에 “유 원트 투 다이?”(너 죽을래)라고 하는 말버릇이 미국 대학캠퍼스에서 여러 번 문제가 된 적이 있다고 한다. 전쟁을 거친 한국인들은 “너 죽을래?” “죽고 싶어?” “골로 갈래?”란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뱉었지만, 다른 문화권에선 이를 ‘살해 의도’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조 목사도 한국전쟁 직후 태어난 ‘반공 세대’다. 그는 반공과 박정희 신화 속에서 초·중·고를 다닌 ‘박정희 키즈’로 자칭했다. 그런 신화가 깨지기 시작한 것은 대광고 재학 때였다.

“박정희의 3선 개헌에 반대하던 선배들이 오래전 신문기사를 보여줬어요. 박정희가 정보장교로 여순항쟁에 참여했다가 동료들을 밀고하고 혼자 살아남았다는 내용이었어요. 이후 한신대에 들어가 함석헌, 김재준, 문동환, 안병무, 서남동 등을 만나며, 갈릴리 민중과 함께한 예수의 복음에 눈을 뜨게 됐어요.”

향린교회 교우들과 함께 이용하고 있는 그의 사무실 문에 걸린 글이 그의 목회 철학을 말해준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 주인과 종을 똑같이 죄인시하는 것은 가난한 자들을 외면하고, 부자의 의를 다져주기 위함이며, 부를 나누려 하지 않고 죄만 나누는 것’이라는 민중 신학의 태두 서남동의 글이다. 조 목사는 민중신학을 통해 예수의 이웃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민중교회 향린교회 담임 지내고
6·15남측위 대표 맡은 실천파
최근 ‘갈라진 땅에 선 예수’ 출간

“예수가 사랑하라고 한 이웃은
오늘로 치면 바로 북한 동포들
예수의 실천적 행위 바로 봐야”

“예수께서 사랑하라고 한 이웃은 한마을에 사는 모든 사람이 아니에요. 당시 한마을에서 같이 사는 사람들은 친족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이웃이란 유대인들이 배척했던 사마리아인들이나 국경을 마주한 적대세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로 말하면, 바로 북한동포들이지요.”

자신과 핏줄과 생각과 이데올로기가 다른 이들을 용납하고 포용하라는 것이지, 같이 사는 가족이나 친족만 사랑하라는 뜻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러 자식 중에서도 아프고 장애가 있고 따돌림당하는 아이에게 더욱 마음이 가는 어머니의 마음이 곧 예수의 긍휼과 자비와 다를 바 없으므로, 배타와 왕따를 당하는 이를 사랑하라는 뜻이라는 것이다.

그는 20대 초반 군대에서 휴전선 철책 소총수로 근무할 당시 기합과 폭행으로 고막과 연골을 다쳐 평생 고생하면서 분단의 아픔을 온몸으로 체험해왔다. 그러나 그는 단순히 북을 증오하기보단 역사 인식을 위한 공부에 집중했다. 미국을 무조건 선으로, ‘신앙의 조국’쯤으로 여기는 보수개신교 목사들의 미국관에 견줘 그의 생각이 크게 다른 것도 치열한 연구에 따른 역사 인식 덕이었다. 그는 여러 차례 찾은 미국 국무부에서 직접 들은 증언과 옛 문서 등에 바탕을 둬 한국전쟁은 미국의 전략적 유도로 발발해 2차 세계대전 때 소비하지 못한 폭탄 폐기물 처리장으로 한반도가 활용됐다는 내용을 책에 썼다.

그는 또 외세 지배세력의 틈새에서 핍박받으며, 저항하면 정치범으로 몰려 십자가형을 당했던 갈릴리의 역사가 바로 우리의 역사와 다름없다고 본다. 그래서 ‘예수 믿으면 죄 사함 받고, 천국 간다’는 주장이 역사의 무지에 기인한 것임을 지적한다.

“예수는 식민 지배를 한 로마제국에 의해 사형수가 됐다. 우리나라로 치면 ‘빨갱이’다. 만약 누군가 빨갱이로 몰려 사형당했는데, 그를 믿는다고 하며 어떻게 될까? 당대엔 ‘예수를 믿는다’고 고백하는 게 복 받기 위함이 아니라 죽음을 각오한 행동이었다. 바울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은 말이 아닌 그런 행동을 의롭다고 한 것이다.”

원수사랑, 이웃사랑을 죽음으로 외친 예수께서 ‘지금 갈라진 한반도 땅에 서 있다면’ 어떤 행동을 할까? 그는 “예수의 실천적 행위를 외면하지 않는 것이 예수살기”라고 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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