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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순례기

천안 디아코니아자매회

등록 2005-10-28 22:22

개신교 디아코니아자매회 김정란 원장 무의촌·빈민촌서 ‘즐거운 노동’고생후에야 꽃 피우는 난처럼… 

충남 천안에서 독립기념관을 지나 병천 골짜기 산기슭을 오르니 숲속 요정의 집처럼 개신교 수도원 한국디아코니아자매회 모원이 앉아 있다. 

여성 수도자를 가톨릭에선 수녀라고 부르지만, 이들은 ‘언님’으로 불린다. ‘어진’이라는 뜻의 순우리말 ‘언’에 ‘님’자를 붙였다. 한 언님이 마른 이불 빨래를 가슴 가득히 안고 사뿐사뿐히 걸어온다. 이곳 모원과 전남 무안 결핵요양소 한산촌 등에서 살아가는 11명의 여성 독신 수도자들의 원장인 김정란(55) 언님이다. 풀잎처럼 수줍게 미소짓는다. 방에 들어서니 난이 꽃망울을 틔우고 있다. 좀체 피지 않는 관음소심란이 어떻게 꽃을 피웠을까. 

“곱게곱게만 키우면꽃을 피우지 않아요. 고생을 시켜야 꽃을 피우지요.”

그에겐 말 못할 고생이 많았다. 1970년 독일에 간호사로 가 6년 동안 주로 병원 특실에서 환자들을 돌봤다. 그때 그는 아파도 제때 치료조차 받지 못하는 고국의 병자들을 떠올리며 가슴이 미어졌고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 76년 귀국 1년 뒤 신학자인 고 안병무 박사가 연 공동체 세미나에 참석했던 그는 10여명과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살아가는 독신여성공동체를 만들기로 의견을 모았다. 

1980년 서울 당산동의 한 아파트에서 3개월 동안 생활하다 그와 노영순, 한은숙, 이영숙 언님 등이 내려간 곳이 무안 한산촌이었다. 안 박사의 동창인 의사 어성숙씨가 65년부터 결핵환자들을 돌보던 곳이었다.

77년 독신여성 수도원 뜻모아전남 무안서 결핵환자 돌보며 농사짓고 돼지 키우며 힘든 일 “이불과 하는 대화 재밌어요” 50채나 빨고도 싱글벙글

보금자리를 찾았다는 기쁨도 잠시, 그들은 매일 발생하는 응급환자들을 돌봐야만 했다. 동시에 제손으로 집을 짓고, 유기농으로 농사를 짓고, 돼지를 키우면서 그가 공동체에 대해 가졌던 막연한 환상은 사라졌다. 어릴 때부터 머슴과 가정부가 있는 집에서 자라며 육체노동에 가치를 두지 않았던 그는 왜 이런 험한 일을 직접 하고 살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고, 일이 힘들어 견디기 어려웠다. 그러나 더욱 힘든 것은 사회에선 여성 목사와 전도사로 한가닥씩 하던 여성들이 함께 살아가는 일이었다. 부부라도 낮엔 떨어져 있는데 싫어도 하루종일 같이 살아야 하니, 사소한 일에도 관계가 틀어지기 쉽고, 그럴 때마다 고통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에너지가 넘쳤던 그는 더욱 힘들었다. 결국 동료 한 명은 떠났다. 그도 보따리를 쌌다가 다시 풀곤 했다.

그러면서 그는 83년부터 89년까지 무안군 운남면 무의촌에서 지역의료사업을 했고, 91년부터는 목포시 달성동 빈민촌에서 재가복지사업을 했다. 그 뒤 94년엔 원장에 뽑혀 지금껏 자매회를 이끌고 있다. 

98년 자매회 본회가 무안에서 천안으로 옮겨온 뒤에도 2000여평의 밭을 일구고 많은 피정자를 뒷바라지하느라 원장인 그도 다른 언님들과 마찬가지로 놀라우리만큼의 노동을 감당해야 한다. 그토록 일을 싫어했던 그는 이날도 이불 50채를 빨았다. 

“이불을 빨 때는 이불과 얘기하고, 밭을 맬 때는 채소와 얘기하면 얼마나 재미가 있는지 몰라요.” 

이제 놀면서 일하는 경지에 오른 것일까. 문득 웃는 얼굴이 난꽃을 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안/글·사진 조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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