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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순례기

경기도 화성 산안마을공동체

등록 2005-10-28 22:50

“나만 열심히 살면 된다고요? 나눌줄 모르는 삶은 죽은 삶이죠” 사경 헤맨 끝에 새 인생 정창덕 ‘사랑의 울타리’ 원장

“‘남에게 피해 안주고 내 삶 내가 열심히 살면 된다’고만 생각했는데, 출세와 성공만을 위해 이기적으로 살며, 나눌 줄 모르는 삶이야말로, 죽은 삶이라는 것을 알았다.”

정창덕 사랑의 울타리 원장은 아내와 어린 두 아들과 가족, 동료, 제자들을 비롯해 이름마저 밝히지 않은 채 선뜻 피를 기증한 수많은 이들의 헌신으로 백혈병을 이겨냈다.

특히 그의 삶을 깨어나게 한 것은 그동안 성공에 급급해 어떻게 사는지조차 모르고 지냈던 동생이었다. 그는 뒤늦게야 동생이 외환위기 때 직장을 잃고 집을 나와 노숙자가 되어 있는 것을 알았다. 동생은 그런 처지에 있으면서도, 방 한칸을 얻어 병든 채 길에서 쓰러진 이름 모를 할머니를 돌보았고, 무정한 형의 병실을 1년반 동안 지켰다.

그가 여섯 차례에 걸친 항암치료를 견디지 못하고 죽고 싶다며 울 때 동생은 “비록 잠시 몸이 아프긴 하지만 형이 얼마나 축복을 받은 사람인 줄 아느냐”고 일깨워 주었다.

정 원장은 어려서 워낙 가난해 끼니도 제대로 잇지 못하고, 서울에 상경해 병따개공장에서 1년 동안 죽도록 일해 학비를 번 뒤 다시 고향인 전북 임실로 내려가 중학교에 진학했고, 대학도 진학하지 못한 채 취업해 뒤늦게 유학길에 올랐다.

정 원장은 최근 쓴 〈플라타너스의 희망〉(호미 펴냄)에서 “한을 풀기 위해 출세하려고 가족과 은인들까지 모른체하고, 아픈 사람을 위해 헌혈 한번 한 적이 없으니, 병에 걸리지 않았으면 지금도 국회의원에 출마하려고 이리저리 뛰어다닐지 모르겠다”며, “다른 사람의 헌혈이 없이는 살 수 없는 백혈병이 ‘세상은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라는 귀중한 깨달음을 주었다”고 말했다.

아직도 교수일과 쉼터 원장 등 많은 일을 함께 하느라 바쁘게 지내면서도 노숙자 할아버지와 부자와 같은 정을 나누는 그는 “새 인생을 맛보고 있다”고 행복해했다. 조현 기자 (한겨레신문 2002년 5월 23일자) [인터뷰] 거저축제 준비해 온 주민 김현주씨아직은 실험 단계지만 `나누는 삶' 늘고있어 희망 "하루만이라도 '무소유'의 삶을 공감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난다는 것만으로도 기쁩니다. 돈이 필요없는 아름다운 마음이 필요한 축제가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작지만 소중한 기억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지난 2년간 중단됐던 `거저의 축제'를 지역단체들과 함께 다시 준비해온 산안마을 주민 김현주(38)씨는 "내심 걱정도 많이 했는데 축제 참가자들이 '풀어놓음'을 즐기는 모습을 보니 힘이 절로 난다"고 말했다.

무소유를 삶의 철학으로 지키며 사는 산안마을은 86년 이래 해마다 동네 바깥 사람들이 참여하는 축제를 열어왔다. 처음엔 300명, 500명씩 찾아오던 사람들은 어느 해부터인가 1천명을 넘어서더니, 98년엔 2500명으로 불어났다.

"그때엔 풀어놓지 않고 공짜만 챙기려는 사람들 때문에 함께 거저의 풍성함을 즐기자는 애초 뜻이 퇴색해버렸죠." 이 때문에 마을 주민들은 고심 끝에 99년부터 축제를 마을 안 행사로만 열기로 하면서 지역주민이 참여하는 거저 축제는 사라져버렸다.

그러다 다시 축제를 되살리자는 얘기들이 새록새록 피어났다. 지난해 방사선 멸균업체가 화성시 향남면 제약단지에 입주하려는 것을 반대하는 지역주민의 방사선대책위원회 활동이 벌어지고 오산.화성 환경운동연합이 꾸려지면서, 지역공동체가 함께 나누는 '거저의 축제'를 부활시키는 데 지역 환경운동연합이 발벗고 나섰다.

산안마을은 무소유의 마음에 따라 자신들이 열어온 거저 축제를 선뜻 내놓고 주최자의 하나로 참가하기로 했다. 축제조차 풀어놓자는 산안마을 사람들의 뜻이다.

"아직은 실험적입니다. '풀어놓음의 즐거움'을 알고 축제를 풍성하게 하는 사람들이 아직은 그리 많다고 할 수 없어요. 하지만 세상이 각박해질수록 함께 나누는 삶에 눈을 뜨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고 있다는 건 우리 사회의 가능성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5일 초록산 축제 때엔 환경운동연합이 애쓴 덕에 쓰레기가 두 포대만 나온 것도 좋은 징조다.

이날 초록산 축제장에서 '풀어놓는 가게'(사진)를 운영한 김씨는 사람들이 가게에 풀어놓은 옷가지, 구두, 장난감, 책, 비디오테이프, 그리고 과자와 음식 등을 보며 "모두 사람들이 풀어놓은 마음들"이라며 흐뭇해했다.산안마을은 26.27일 마을 주민과 야마기시 회원들만이 참여하는 마을 안 거저 축제를 열 예정이다. 화성/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한겨레신문 2001년 05월 11일)

3년만에 다시 열린 초록산 '거저 축제' 욕심만 빼고 다 거저 가져가세요 "이건 얼마예요?" "거저 가져가는 거예요." "그냥.그냥요?" "오늘은 돈이 필요없어요. '거저 축제'니까요."

지난 5일 큰길에서 한참이나 들어선 경기도 화성시 양감면 초록산 삼림욕장 공터에서 열린 `거저의 축제'에는 어른과 어린이 1천여명이 참여해 색다른 하루 체험을 했다. 초록산 중턱에는 '돈이 필요없는 행복한 마을' '풀어놓음으로써 풍성함을 맛본다' 등 글귀들이 이곳저곳에서 나부꼈다. 가진 것을 움켜쥐지 않고 풀어놓는다면 풍요로움을 함께 누릴 수 있다는 '무소유'의 사상을 담은 것들이다. 이날 축제는 '무소유 공동체'로 알려진 산안(야마기시) 마을이 1986년부터 해마다 열어오다가 최근에 중단했던 것을 오산.화성환경운동연합이 주관해 다시 부활시킨 것이다.

축제장 들머리에 자리잡은 '풀어놓는 가게'에는 "뭐 이런 일도 다 있나"라는 표정의 사람들이 몰려 물건을 고르고 있었다. 익숙하지 않은 '거저'에 무언가 어색함을 벗지 못한 얼굴들이다.

아들 준호(11)와 혜인(8)이 손을 잡고 가족나들이를 왔다가 우연히 행사장에 들른 김경애(37)씨는 "아무런 대가 없이 주면서 기뻐하고, 받으면서 기뻐하는 사람들을 보니 너무 감동적"이라고 말했다. 오산에서 온 윤진순(38)씨는 "이 축제를 잘 몰라 풀어놓을 걸 가져오지 못했다"며 즉석에서 목에 두르고 있던 액세서리를 풀어놓기도 했다.

왁자지껄한 얕은 산 중턱 잔치마당엔 산안 마을 사람들이 연 '풀어놓는 가게' 그리고 삶은달걀.붕어빵 가게, 지역 임마누엘교회가 마련한 김밥과 주먹밥 가게, 대각사 청년회의 떡볶이 좌판, 벌안풍물굿패의 인절미 방 등 난장에다 널뛰기, 떡치기, 물로켓 쏘기 등 행사들이 어른과 어린이들의 눈길을 붙들었다. 가짐이나 막힘이 없으니 모두가 가져온 음식을 나누고 자신이 지닌 재주를 나누었다.

"펑!"

한참 달궈진 뻥튀기 기계가 오전 11시쯤 드디어 뻥튀기를 터뜨렸다. 아이들이 먼저 달려들고, 어른들이 뒤따라와 따끈하게 튀겨진 튀밥 맛을 보느라 북적였다. 뻥튀기 아저씨로 나선 산안 마을 주민 황형섭(43)씨는 "골고루 나눠 가져가시라"며 연방 싱글벙글하며 튀밥 나눠주기에 바빴다. 그는 "무소유의 흥겨움을 하루 잠깐이라도 느껴보는 것만으로 세상이 조금 편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붕어빵 기계는 산안 마을에 사는 일본인 청년 사토시(26)가 잡았다. 이날 가장 큰 인기는 바로 붕어빵이 누렸다. 그러다보니 전날 밀가루 9kg을 들여 준비한 반죽통은 오후 2시쯤 벌써 바닥을 박박 긁어대야 했다. 사토시는 일본 야마기시 마을에서 출판 일도 하고 소 키우는 일도 하다가 한국의 정감에 이끌려 3년 전부터 이곳에서 살고 있다.

무소유에는 아이들이 제일 신났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라고 배우며 크는 아이들은 공짜축제가 마냥 제 세상이다. 떡볶이 먹느라 입가가 새빨개진 권오건(12.오산 운암초등6)군은 "어린이날이라 어른들이 공짜로 먹을 걸 막 주는걸요"라며 입이 벌어졌고, 백승남(11.오산 원동초등5)군은 "세상에 이렇게 돈이라는 게 없다면 먹을 게 없어서 굶는 사람도 없어지나요?"라며 이날 체험을 신기해했다.

머쓱해진 건 축제날이라 해서 몰려들어 곳곳에 자리를 잡은 노점상들이었다. 한 아이스크림 노점상은 "돈이 필요없는 축제라는 얘기를 잘 모르고 왔는데, 돈 받고 물건 파는 내가 이상하게 느껴진다"고 털어놓았다.

이날 모임을 준비한 이들이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축제에 참가한 사람들은 '공짜'만 챙긴 건 아니었다. 처음엔 공짜물건이라고 싹쓸이하지 않을까, 공짜족들의 북새통으로 변질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지만 이날 많은 사람들은 대가 없는 '무소유'의 축제를 신선한 경험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다들 내것 챙기기 바쁜 세상에 사심없이 거저 나눠주는 것이 의아하기도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주는 것 같다."(한상업.44) "이렇게 사는 세상 사람들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고, 다음번엔 나도 참여하고 싶다."(이정의.39)

86년 이래 98년까지 해마다 `거저의 축제'를 열어온 산안 마을의 주민 윤성렬(58)씨는 "이처럼 거저 축제가 대중적으로 열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무소유'의 삶에 대한 갈망이 자리잡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화성/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한겨레신문 2001년 05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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