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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순례기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등록 2005-10-31 10:55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노동은 기도입니다 

80명 수도승 하루 8시간 노동 경북 칠곡군 왜관읍 왜관리 134-1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1909년 처음 세워져 1952년 이곳에 정착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가톨릭 수도원이다. 10일 새벽 6시. 이미 5시에 일어나 독서와 아침 기도를 마친 수도승들이 하나둘씩 성당에 들어와 앉는다. 묵상 시간이다. 깊은 적막과 어둠에 싸인 성당에선 수도승들의 하얀 수도복이 불빛에 은은히 빛난다. 무엇을 찾고 있는 것일까. 어둠 속에서 한 수도승이 십자가를 응시하고 있다. 

쇠 두드리며 이기심을 내치고땅을 일구며 결실의 기쁨을평생 한곳에 머물며 자급자족의 삶 일속에서 하느님을 만납니다 

“당신을 애틋이 찾나이다./영혼이 당신을 목말라 하나이다./내 영혼의 하느님, 내 하느님” 천상의 음성과 같은 선창에 따라 찬송이 이어진다. 미사다. 블라시오 신부의 집전으로 수도승과 이곳에 피정 온 수녀, 신자들이 차례로 영성체를 모신다.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대신하는 영성체를 삼킨 수도승들이 제단을 향해 깊이 허리를 숙인다. 그토록 애써 찾는 이가 몸과 마음에 깊이 임하기를 기원하듯이. 

수도원 공동체의 모든 가족이 함께 하는 첫 기도가 끝났다. 그러나 기도는 이 미사로 끝나지 않는다. 수도승들의 삶은 단순하다. 온종일 기도와 노동이 이어진다. 개인적인 기도 외에 성당에 모여 함께 기도하는 것만 하루 5번이다. 

아침 식사 후 수도승들은 8시가 되면 자기가 맡은 일을 시작한다. 80명의 가족 가운데 행정적인 일을 하는 몇 명의 신부 외에 대부분의 수도승들은 하루 8시간씩 노동을 한다. 

블라시오 신부가 긴 열쇠로 굳게 닫힌 공장 문을 연다. 공장은 수도원장의 특별 허가를 얻지 않고는 들어갈 수 없는 ‘봉쇄 구역’이어서, 안에서 일하고 있을 때에도 밖에서 들어갈 수 없도록 문은 늘 이렇게 잠겨 있다. 

유리화공예실에선 4명의 수사가 일하고 있다. 일이 힘들어 밖에선 기피 직종이 된 지 오래지만 블라치온 수사는 1963년 수도원에 들어온 이래 줄곧 이 일을 해왔다. 

“사람은 노동을 해야지요.” 

그에게 노동은 인간으로서 해야 할 당연한 일이다. 

5명의 수사가 일하는 금속공예실. 피르마트 수사가 망치로 연신 뭔가를 두드리고 있다. 무엇을 그토록 두드리는 것일까. 영성체를 담는 데 쓰는 컵을 만들기 위한 쇠다. 하지만 그가 두드리는 것은 하느님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게 하는 자신의 분심과 이기심과 젊음이 가져다주는 욕정인지 모른다. 그가 하느님과 합일되지 못할 땐 산란한 마음의 상태가 성구에 그대로 드러나고 만다. 따라서 그에게 망치질은 기도의 다른 행위일 뿐이다. 한참의 망치질 후 웃음 띤 피르마트 수사의 얼굴이 맑다. 

수도원 안의 분도가구공예소와 분도출판사에선 수사들이 직원들과 함께 일했다. 수사들도 이 공장에서 직원들처럼 월급을 받지만, 월급은 한 푼도 남김없이 다시 수도원공동체에 봉헌된다. 신학교에 다니는 이들에겐 교통비 등으로 10여만 원이 지급되고, 외출자는 회계를 맡은 당가 수사에게 최소한의 비용을 타가지만, 대부분의 수도승들은 외출하지 않고 이곳에서 무일푼으로 살아간다. 

‘베네딕도 규칙’에 따라 평생 한 곳에서 노동하며 자족의 삶을 꾸려가는 것이다. 자급자족을 위해 37년 전 독일에서 온 아돌프 수사는 순대를 만들고, 반젤리시오 수사 등 2명은 2만 평의 농토에 농사를 짓는다.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저마다 주방과 세탁실 등에서 일을 한다. 80살이 넘은 필립보 수사도 자청해 청소를 한다. 

일한 대가 봉헌 ‘무일푼’ 생활 

이들이 ‘맡은 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서나 자신이 쓰일 수 있도록 자신을 비우고 열어놓는 것이 공동체 삶이다. 수도원에 들어온 지 10년 된 블라시오 신부는 “전기가 고장났거나, 일손이 달리는 곳에 도움을 주기 위해 가보면 어느새 다른 분들이 와서 이미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을 자주 본다”고 말한다. 

수도원 안 병실에선 안드레아 수사가 이제는 휠체어에 몸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노수사들을 돌보고 있다. 1970년 수도원에 들어와 오랫동안 금속공예실에서 망치질을 했던 그는 “내게 주어진 일 속에서 하느님을 만나지 못한다면, 어디에서 하느님을 만나겠느냐”고 말한다. 

그가 병실에 들어서자 휠체어의 마인라도 수사가 “왜 이제 왔느냐”고 투정 아닌 투정을 부리며 그의 품에 안긴다. 병자를 안는 사랑과 안기는 안온함에서 이들이 찾는 임의 숨결이 느껴진다. 왜관/글·사진 조현 기자 cho@hani.co.kr (한겨레신문 2002년 8월 16일자)

[인터뷰] 이형우 수도원장 섬기는 마음에 사랑이 깃듭니다 수도원장은 권위와 위엄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에게서 권위적인 구석을 찾기는 어렵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웃는 그의 웃음에 젖다보면 하얀 수도복처럼 마음마저 하얗게 된다.

“죽을 맛이지요. 예전엔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됐는데,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니까요.”

지난해 8월 왜관수도원의 원장인 ‘아빠스’(대수도원장)로 선출된 이형우(56) 신부가 ‘앓는 소리’를 한다. 실제 아빠스는 권한만큼 막중한 의무를 지닌다. ‘베네딕도 규칙’은 ‘(형제는) 아빠스를 사랑하라. 아빠스는 형제를 섬겨라’고 명시하고 있다. 그에게 이 공동체 가족들은 지배의 대상이 아니라 섬김의 대상들이다. 평화로운 공동체는 어떻게 이뤄질 수 있을까.

“공동체의 기초는 가정이지요. 난 장가를 안 가봐서 모르긴 하지만, 가정 공동체가 붕괴하는 것은 자기가 상대를 위해 뭘 해주려고 하기보다는 뭘 해주기를 기대하기 때문 아닌가요.”

그는 “섬기는 마음 없이 기싸움이 계속되는 한 평화는 이뤄지기 어렵다”고 말한다. ‘섬기는’ 아빠스답게 그는 스스로 낮추고, 형제를 칭찬하기 바쁘다. 그는 사랑과 섬김 속에서 하느님을 온전히 찾아갈 수 있도록 왜관수도원 선단을 이끄는 조타수인 셈이다.

그는 “‘자기’가 아닌 하느님을 모시고 있을 때, 그 자리가 바로 천당”이라고 말한다. 그는 “기도를 한꺼번에 할 수도 있지만 여러 번 자주하는 것은 항상 깨어 하느님의 뜻이 매사에 스며들도록 해 하느님을 모시고 살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조현 기자 (한겨레신문 2002년 8월 1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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