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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순례기

침묵이 답했다. 히말라야에서의 내 질문에

등록 2009-02-05 16:03

말없이 미소 띤 여인의 짜이 맛 ‘히말라야의 맛’

여유로운 세마리 양 보니 ‘난 뭐 그리 급했을까’

 

 

차 한대를 빌려 타고 레콩피오로 향하는 길 역시 아슬아슬한 절벽 길이었지만 그 동안 풀 한 포기 없는 스피티 지역만 봐온 때문인지 계곡 옆의 나무들과 풀, 꽃의 어울림이 무지갯빛처럼 다가왔다.

 

레콩피오에 도착하니 벌써 어두워졌다. 힌두교의 성산인 카일라쉬는 티베트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키노르 카일라쉬의 장관이 어스름 속에서 빛나고 있었다. 얻어 탄 차는 여섯 명이 타기엔 턱없이 좁았다. 난 짐과 함께 뚜껑이 없는 짐칸에 탔다. 설산 카일라쉬의 찬바람이 소매 깃을 타고 고스란히 내장까지 파고들었다.

 

밤바람을 헤치고 칼파로 향했다. 인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신인 시바 신의 겨울 집으로 불리는 곳이 칼파다. 키노르 카일라쉬가 한 눈에 들어온다.

 

 

다음날 눈을 떠보니, 카일라쉬의 장관만 눈이 부신 게 아니다. 검정 돌지붕과 나무로 이어진 집들이 고풍스런 마을과 사과밭이 어우러진 칼파 마을은 이상향인 샹그릴라를 연상케 한다.

 

히마첼 오지를 다니며 한 번도 뇌리를 떠나지 않는 생각이 있었다. 도저히 살 수 없을 곳 같은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의문이었다. 마루에서 낮잠이라도 자다 잘못 뒤척이다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질 법하게 위태위태하게 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을 보면 이 넓은 세상을 두고 이런 곳에서 살아갈까라는 의문이 끊이지 않았다. 아무리 이곳에서 태어났다고는 하지만. 사람이 살아가기엔 너무나 위험스러워 보인 때문이었다.

 

칼파 뒷산 언덕에 올라가면 티베트의 파고다라는 초르텐 뒤로부터 완전한 파노라마를 만끽할 수 있다. 가파른 뒷산으로 올랐다. 오르면 오를수록 건너편 6050m의 키노르 카일라쉬가 손에 잡힐 듯 가까워 보인다.

 

수풀을 헤치고 오솔길을 지나 언덕에 올랐다. 그런데 조그만 계단식 과수원들이 있었다. 사과나무밭에서 양 세 마리가 여유를 즐기며 흘긋 나를 쳐다보았다. 왜 그렇게 힘들게 산을 오르냐는 표정이다.

 

 

그 옆엔 조그만 외딴 흙집이 있었다. 입구쪽엔 마른 풀과 장작들이 쌓여 있었다.  오두막 안을 보니 60대 가량으로 보이는 한 여인이 나무로 불을 때고 있었다. 바닥도 천장도 벽도 흙인 이곳은 부엌이자 방인 듯 한 켠엔 흙침대가 있었다.

 

놀란 기색도 없이, 아무 말도 없이 미소만 흘렀다. 인걸은 지령이라던가. 그의 얼굴이 키노르 카일라쉬를 닮았다. 그렇게 30분을 가만히 앉아 있었다. 왜 왔느냐, 무엇하러 앉아 있느냐,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는 궁금증 같은 것도 없어 보인다.

 

땔감으로 불을 때 물을 끓이더니 짜이를 만든다. 여인이 주는 짜이맛은 히말라야 맛이었다. 여전히 말은 없었다.

 

 

여인의 침묵이 내가 히말라야 오지에서 수백번도 더 물었던 질문에 답해주고 있었다. 자신이 이미 히말라야가 된 사람은 히말라야를 정복하지도, 히말라야를 버리지도 않는다는 것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동영상 장수경 기자

[이 기사의 자세한 내용은 <인도오지기행>(한겨레출판 펴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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