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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순례기

망상은 망상일 뿐,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

등록 2008-08-26 21:15

[인도오지 순례] ⑨ 마리화나 파는 우탈리 <하> 그의 겉모습만으로 ‘어둠의 터널’ 자청해 불안 마약에 취한 듯한 편견 벗어나자 신이 찾아와

산길로 한 시간을 넘게 왔지만 폭포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콧물도 나지 않는데도 가끔씩 마른 코를 풀었다. 그 때마다 그게 무슨 신호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땀은 온통 속옷까지 젖어 배에 감아놓은 전대의 윤곽이 겉에까지 드러나는 것 같았다. 인도 배낭여행 유경험자들은 현금을 많이 갖고 다니기보다는 인도의 도시들에도 지점이 많은 씨티은행 카드를 갖고 다녔지만, 내 전대 속엔 1년 동안의 인도여행비가 고스란히 달러로 들어 있었다. 내 전대 속엔 1년 동안 인도여행비가 고스란히
아무리 아내 말을 안 듣고 도망쳐온 몸이지만, 아내와 부모, 형제를 두고 이국의 숲 속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불귀의 객이 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렇다고 그가 아직 무슨 짓을 한 것도 아닌데, 걸음아 날 살려라며 산 밑으로 내닫기는 우스운 일이었다. 죽을까봐 떨면서도 체통 구기는 짓은 못하는 게 양반이 아니던가. 도망치기도 쑥쓰러우니, 인질범을 달랠 때 쓰는 유화책이라도 쓸밖에. 부모, 형제 얘기야말로 사람의 마음을 고향으로 데려다주는 것. 그래서 "부모, 형제는 어디에 사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어린 시절 버려져 부모가 누군지도 모른다"고 했다. 불난 집에 기름을 얹은 격이었다. 더 할 말이 없었다. 그래도 이 상황에 침묵은 금일 수 없었다. "결혼은 했느냐"고 물었더니, 다행스럽게 "그렇다"고 답했다. 그는 "아내와 딸이 캐나다에 살고 있는데, 아내는 돈도 잘 번다"고 묻지 않는 말까지 했다. 그 역시 '믿거나 말거나' 식의 말처럼 여겨졌다. 나도 그가 묻지 않았지만 "아내는 아이들을 사랑하는 학교 선생님"이라고 재잘댔다. 말하는 순간 어둠이 그치고 갑자기 세상이 훤해졌다. 숲길을 나와 폭포가 있는 계곡으로 나와 하늘이 보인 것이다. 몇걸음을 더 걷자 우렁찬 폭포수가 하늘로부터 쏟아져 내렸다. 시원스런 폭포의 급류는 불안과 두려움까지 씻어내 버렸다. 여러차례 와 보았을 우탈리도 폭포의 장관에 시원한 듯 웃음을 지었다. 우린 함께 폭포 밑 바위 안으로 들어가 떨어지는 물 밖으로 아래 세상을 굽어보았다. 뱃속까지 시원해졌다. 폭포를 건너서 내려오는 길은 숲 속이 아니라 계곡이었다. 급경사이긴 했지만 하늘이 훤히 보였다. 달려 내려오자 가던 때 1시간30분 걸렸던 길을 30분만에 내려올 수 있었다. 날이 어두워질 무렵 아래쪽에 외딴 힌두사원이 보였다.

코펜하겐 히피들의 나체춤이 떠올랐다 지난 세 시간 동안 난 어디를 다녀온 것인가. 한숨이 나왔다. 그 때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서 보았던 히피들의 나체춤이 왜 떠올랐을까.

2001년 가을 유럽의 공동체를 탐방하던 중 코페하겐의 한국인 목사집에 머무를 때였다. 도심 공동체인 크리스차니아를 가겠다고 했더니 그 목사는 "그런 곳엔 왜 가느냐"고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들의 해방구인 크리스차니아는 내부에서 마리화나를 내놓고 피우는 마약공동체쯤으로 인식돼 고상한 성직자로선 못마땅할 터였다. 내가 크리스차니아를 찾은 밤은 공동체를 만든 지 30주년을 맞는 페스티벌이 벌어지고 있었다. 크리스차니아는 입구부터 30여만명의 젊은이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놀라운 축제였다. 상당수가 한 손엔 술을 들고 다른 손엔 마리화나를 입에 물고 있었다. 달빛이 마리화나 연기에 가려질 정도였다. 10여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공연과 춤판이 이어졌고, 한쪽에선 나체쇼가 벌어졌다. 공연자도 구경꾼도 술에 취하고 마리화나에 취한 것 같았다. 좁아터진 이곳에서 밤늦은 시간까지 머물면서 그들의 발이라도 밟아 시비라도 생기지 않을까 조심스럽기만 했다. 아침이 밝아오자 난 그 장소의 아침 풍경이 궁금해졌다. 많은 이들이 크고 작은 사고로 다치고, 현장은 술병과 쓰레기로 난장판이 돼 있을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막상 그 곳에 가보자 어이없게도 현장은 너무도 말끔했고, "어제 밤에 단 한 건의 불미스런 사고가 없었다"는 얘기를 마을 주민으로부터 들었다.

그들은 세계적인 축제의 후유증을 염려하는 사복경찰들의 가슴에 장미꽃을 꽂아주며 "우리는 하드 드럭(중독성 마약)을 하지 않고 마리화나만 하니 걱정할 일이 없다"며 돌려보냈단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때면 2천명의 불우이웃을 불러 음식을 대접하고, 마을을 생태적으로 가꾸고 있었다. 그처럼 다양한 삶의 모습을 오직 '마리화나'란 고정관념만으로 채색했으니, 예측은 그처럼 허물어졌다.

그토록 다양한 삶의 모습을 '마리화나'란 고정관념만으로 채색 '범소유상(凡所有相)이 개시허망(皆是虛妄)이니, 약견제상(若見諸相) 비상(非相)이면 즉견여래(卽見如來)라.' '모든 형상들은 다 거짓이고 헛된 것이니, 만약 모든 형상이 그 형상이 아님을 알면 바로 여래의 참모습을 볼 수 있다'는 금강경 게송이 또 구두선이 되고 말았다. 우탈리의 겉모습만으로 다시 또 어둠의 터널, 편견의 터널로 스스로 들어가 두려움에 떨었다. "땡~" 텅 빈 힌두사원에 들어서자 우탈리가 나무에 걸려 있는 종을 한 번 쳤다. 난 "그 종소리가 무슨 의미냐"고 물었다.

"내가 왔다." 우탈리다운 답이었다. 그렇다. 겉모습에 대한 망상에서 벗어나 텅 빈 순간 내 가슴에도 신이 찾아왔다. 비쉬쉿에 가면 얼굴이 검은 누군가 마리화나를 사라고 꼬드길 것이다. 그가 바로 내 친구 우탈리다. 조현 한겨레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동영상 장수경 기자 [이 기사의 자세한 내용은 <인도오지기행>(한겨레출판 펴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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