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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순례기

해발 4205m, 숨 쉬기도 어려운데 뛰어노는 애들이라니

등록 2008-10-10 17:48

[인도오지순례] 스피티 신은 살아도 인간은 살기 어려운 인도의 티베트 산소 부족·영하20도 잠 못 이룬 밤 달빛보고 "아!"

`신들이 여기에 사는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이곳은 인간이 살 곳이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영문 가이드 책자는 스피티 지역에 대해 이렇게 썼다. 인도의 10억 인구 가운데 80%가 힌두교인이고, 11%가 회교도이지만, 히말라야의 스피티 지역은 대부분의 주민이 불교를 믿고 있다. 한때 티베트 영토였고, 티베트와 가까워 현재 중국이 지배하는 티베트보다 더 옛 티베트 불교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그런데도 역시 티베트 불교인 라닥이 <오래된 미래>란 책에 의해 서방 세계에 널리 알려져 관광객이 밀려드는 것과 달리 이곳은 외부 세계에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을 뿐 아니라 교통편이 거의 없어 외부인들이 들어가지 못하는 금단의 땅으로 남아 있다. 무지개 빛 설산 가까이 가보니 황량함만 가득

마날리에서 지프차 뒷좌석 짐칸에 끼어 로탕으로 향할 때까지 내가 그렸던 것은 히말라야의 아름다운 설경과 웅대한 바위들이었다. 히말라야에서 혹독한 수행으로 생전에 붓다를 이룬 밀라래빠는 티베트인들의 가슴이 가장 생생히 살아있는 수행자다. 난 몇 달 전 티베트를 찾았으나 중국에 의해 대부분의 고승들이 죽거나 망명해 티베트엔 티베트 불교 수행의 명맥이 거의 끊겨가고 있는 것을 보고 왔다. 그러나 스피티의 천년도 넘은 사원이나 토굴에서만은 티베트에서 보지 못했던 밀라래빠나 파드마삼바바, 쫑카파, 아티샤와 같은 전설적인 티베트 고승의 맥을 이은 수행자들을 볼 수 있으리란 기대에 차 있었다. 그곳엔 오랜 옛 고승들의 환생인 린포체들이 이끄는 티베트 곰파(사찰)들이 즐비했기 때문이다. 마날리에서 로탕을 지나 뀐줌라를 지나니 살을 에는 듯한 바람이 살 속을 파고든다. 체감온도가 영하 20도는 되는 것 같았다. 길조차 얼어버려 위험해지는 겨울이 다 된 11월 말이어서 달려도 달려도 차 한 대 볼 수가 없다. 오지여행가조차 찾지 않은 계절로 접어들었다. 원래 경찰이 지키도록 돼 있는 해발 3400m 고지 로사르의 초소조차 텅텅 비어 있었다. 풍경도 삶처럼 그런 것인가. 멀리선 무지개 빛 설산이던 것이 직접 와보니 로탕과 로사르는 살을 에는 바람만 휘감아 돌 뿐이었다. 풀 한포기 나무 하나 볼 수 없는 황량함뿐이었다. 달빛에 당나귀도 두려움 잊고 유유자적
새벽 6시30분에 마날리를 출발한 지프차는 오후 3시30분 9시간만에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끼베르마을에 도착했다. 해발 4205미터다. 벌써부터 숨이 가빠왔다. 티베트의 라사, 시가체, 갼체에서 고산증으로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낸 적이 있었다. 그래서 가급적 몸을 적게 움직이면서 조심했다. 그런데 도착해서 마을로 들어가자 이곳에서 짐꾼 역할을 하는 당나귀들과 아이들이 물찬 제비처럼 달려왔다. 열한살짜리 롭상 가순은 한 살배기 동생 롭상 데첸을 보듬고도 잘도 뛰었다. 연신 코를 훔치며 수줍은 듯 웃는 두 살배기 텐징 양전의 두 눈엔 히말라야의 보석이 박혀 있었다. 아이들에겐 산소가 충분했건만 내겐 숨 쉴 산소가 없었다. 저 아이들은 적은 산소로도 저토록 잘 사는데, 나는 산소가 없다며 허우적댔다. 그와나의 삶을 말해주는 것인가. 그러니 어찌 산소 탓만 할 수 있으랴. 게스트하우스에서 잠을 청해도 호흡이 곤란해서 잠이 들지 않았다. 방한등산복에 큰 수건을 감고 침낭 속에 들어가도 영하 20도의 추위에 몸은 꽁꽁 얼고, 찬 공기가 머리의 감각을 얼얼하게 했다. 아픔은 도망만 치려고 하면 약 올리듯 계속 따라 붙는 법. 아예 잠을 포기하고, 밖으로 나왔다. 오늘이 10월 보름이 아닌가. "아!" 절로 탄성이 나왔다. 집채만한 달이 머리 위에 와 있었다. 이렇게 큰 달은 생전 처음이었다. 밝기는 또 얼마나 밝은지 끼베르마을과 히말라야의 벗은 모습이 그대로 드러났다. 풀 한 포기 없는 허허로운 산과 언덕은 달빛에 반사돼 설산처럼 빛났다. 끼베르 마을엔 가끔씩 히말라야 표범이 나타나 당나귀를 물어죽이곤 한다. 그런데도 게스트 옆 언덕에선 암 당나귀 한 마리가 표범에 대한 두려움도 잊은 채 달빛을 즐기며 유유히 걷고 있었다. 당나귀도 나도 혼자가 아니었다.

히말라야/글·사진 조현 한겨레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이 기사의 자세한 내용은 <인도오지기행>(한겨레출판 펴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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