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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순례기

스님조차 인간이 싫어질까 겁난다고 했던 ‘참혹’

등록 2009-10-06 10:31

거지 사기꾼 도둑들, 생존에 ‘염치’ 잊은 지 오래

그들의 삶 들여다보면 내 고통은 ‘호사스런 유희’

 

 

차장으로부터 드디어 내 좌석을 받고 앉았다. 잠시 정차한 틈을 이용해 차에서 내려 계란과 야채를 넣어 만든 부침개 두장과 10루피어치 포도, 다섯개에 10루피하는 바나나도 샀다. 외팔이 짜이장사에게 3루피짜리 짜이도 한 잔 샀다.  거금 33루피(800원 가량)를 들여 마련한 24시간만의 성찬이었다.

 

앞좌석에 앉은 사람은 기차에서 시킨 음식을 절반가량 먹고 있었다. 우리 앞으로 아이 셋 딸린 여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엄마도 아이들도 다 떨어진 옷을 입고  1년에 한 번도 옷도,  몸도 씻지 않은 것 같았다. 가까이 온 아이들 중 세 살쯤 돼 보이는 여자 아이가 앞좌석 사람이 먹던 음식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를 보던 앞 사람은 아이의 엄마에게 먹던 음식을 주었다. 그 음식을 들고 기차 칸 사이로 가서 철퍼덕 앉은 엄마와 아이들이 손으로 남이 먹다 남긴 음식을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그 사이로 다리 저는 아이가 걸레로 기차 바닥을 쓸며 다가왔다. 바닥을 쓸고는 손님들에게 손을 내민다. 열 명 중 한 명이나 1~2루피짜리 동전을 한 닢씩 줄까. 한 칸을 다 닦아도 한 명도 주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러면 이런 아이를 기다리며 다 쓰러져가는 집에서 병들고 굶어서 죽어가는 그의 동생도 함께 굶을 것이다.

 

남이 남긴 음식 ‘허겁지겁’…물 두병 값에 딸을 판 엄마

 

국민 평균 소득이 우리 돈 5만원 정도인 인도에서 극빈층만 40%다. 이들의 대부분이 천민인 수드라이거나 여기에도 끼이지 못하는 불가촉천민, 또는 무슬림들이다.

 

여행 중에 마주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이들이다. 어떻게든 사기쳐서 한 푼이라도 더 건지려는 릭샤꾼들, 가는 곳마다 달려드는 거지들…….

 

릭샤꾼과 거지, 사기꾼, 도둑들에게 시달리는 여행객들은 인도에 진절머리를 내기도 한다. 여행 중 식당에서 만났던 한국의 한 비구니 스님이 “인도에서 ‘인간이 싫어질까 봐 겁난다”고 했던 말이 기억났다. 얼마나 데었으면 그럴까.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악다구니를 쓰고, 사기를 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부대끼느라 인도에서 오래 산 외국인일수록 릭샤꾼이나 하층민을 함부로 대하는 모습을 보곤 했다.

 

품위 있는 승려와 귀족 계층에 비해 품위 없는 세상으로 내몰린 이들을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게 나 자신도 얼마나 어려웠던가.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본다면 나의 고통이 얼마나 호사스런 유희인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푸네의 빈민가에서 한 엄마는 가족이 모두 굶어죽을 수 없어서 딸아이를 미네랄워터 두병 값인 30루피를 받고 팔았다는 얘기를 들었다.

 

어디쯤 왔을까. 포도와 바나나를 청소하는 아이에게 주고 나니 여전히 속은 허했다.

 

다시 역인데 밖이 소란했다. 근엄하게 보이는 한 사내가 자기보다 덩치가 두 배는 커 보이는 검은 사람의 얼굴을 사정없이 때리고 있다. 검은 사람은 몹시 억울하다고 울상이다. 그런데도 덤빌 생각은 아예 하지 못한다.

 

때리는 데 익숙해진 사람과 맞는 데 익숙해진 사람 옆으로 ‘카스트’를 실은 기차가 달리고 있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이 기사의 자세한 내용은 <인도오지기행>(한겨레출판 펴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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