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체 수행…벌레 밟을세라 걸을 때도 조심
폭력·굶주림·사기 아수라장 한가운데 사원
인도에서 가장 신기한 사람들 중 하나가 자이나 수행자들이다. 그들은 실오라기 하나 몸에 걸치지 않고, 길을 걸을 때는 벌레들이 발에 밟히지 않도록 지팡이를 두드려 피하게 하며, 공기 중에 있는 미생물도 마셔서 죽이는 일이 없도록 마스크를 쓰고 다닌다.
인도 독립의 아버지인 간디와 그의 제자 비노바 바베의 비폭력 아힘사 정신의 정신적 토대가 된 사상이다.
내가 삶의 화두이자, 인류 문제 해결의 화두로 삼은 아힘사(불살생 비폭력)의 뿌리는 자이나교다. 그래서 자이나교는 내가 인도에서 가장 만나보고 싶은 종교였다. 델리에서 첫 목적지도 자이나사원이었다.
속이기도 도와주기도 하는 밉고 고마운 인도인
델리 찬드니 초크에 1658년 세워진 디감바르사원은 먹이를 찾아 날아오는 새들을 돌보고, 병든 새들을 보살피는 ‘새의 병원’으로 불린다. 자이나는 출가자가 흰옷을 입는 백의파(슈웨땀바라)와 교조의 가르침대로 출가자는 철저히 나체로 살아가는 공의파(디감바라)로 나뉘는데 그곳은 나체족인 디감바라니 어찌 더욱 가보고 싶지 않겠는가.
그러나 ‘비폭력’의 성소를 찾아가는 일은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쳤다.
“난장판이에요. 폭력이 난무한다고요. 지금 거기에 가면 큰 일나요. 무슬림 50만명이 몰려와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니까요.”
숙소가 있던 메인바자르에서 자인 템플이 있는 찬드니초크에 가는 오토릭샤를 타려고 델리역쪽으로 걸어가는데, 16~17살쯤으로 보이는 소년이 “어디에 가느냐”고 묻길래 “찬드니초크에 간다”고 했더니, 이렇게 펄펄 뛰며 “가선 안 된다”고 말한다. 인도 군인이 카슈미르에서 이슬람교 반군을 죽였는데, 이에 반발한 무슬림들이 그 곳 올드포토(붉은성) 앞으로 몰려와 엄청난 시위를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사원이나 박물관들도 모두 문을 닫고, 상가도 철시했으니 가봐야 소용없다고 했다.
뒤따르는 그의 말이 아니었다면, 그의 조언을 상당히 고마워할 뻔했다.
“오늘은 사정이 그러니, 그곳엔 내일 가고, 오늘은 우리가 좋은 코스로 안내할 테니 따라 오시지요.”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확인을 위해 인근 환전소에 들어가 그 소년이 들려준 얘기를 했더니 한마디로 “웃기는 소리”라며 “현혹되지 말라”고 한다. 사기를 치는 것도 인도인이고, 사기 치는 인도인으로부터 구원해주는 것도 늘 인도인이다. 미운 인도인, 고마운 인도인.
지나가는 외국인을 자기 여행사로 유인하려는 그런 사기꾼의 말에도 귀를 기울인 것은 인도에서 종교 분쟁으로 인한 테러는 강 건너 불구경 정도로 먼 얘기가 아닌 때문이다.
2002년 바로 이 도시 뉴델리의 국회의사당의 폭탄 테러로 14명이 사망했다. 내가 마날리에서 카슈미르의 스리나가르에 가겠다고 했을 때도 자상한 여행사 직원은 스리나가르에서 이슬람반군의 폭탄 테러로 피투성이가 돼 나자빠진 인도 군인의 사진을 보여주며 “불구덩이가 들어가지 말라”고 경고하곤 했다.
목구멍에 풀칠하기도 힘든 인도인들이 먹고 살기 위해 분쟁을 이런 식으로 이용해 먹는 것은 그 소년만이 아니다.
사원 앞 수십만 무리, 소년의 말은 진실이었나
오토릭샤를 잡아타고 레드포트로 가보니 정말 문이 닫혀 있고, 사람들이 웅성웅성거리고 있다. 릭샤꾼에게 물으니 “오늘 파키스탄의 테러리스트들이 올 것”이라면서 “다른 곳까지 태워주겠다”고 했다. 레드포트 앞엔 경찰까지 진을 치고 있다.
그럼, 아까 그 얘기가 사실이었다는 말인가. 50만명의 시위대가 모인다는 그 소년의 얘기와 차이는 있었지만 크게 다르지 않은 정보다. 어떻게 해서든 조금이라도 멀리 가서 요금을 더 받으려는 릭샤꾼들에게 한 두 번 당해본 게 아니어서 일단 오토릭샤를 정지시켜 놓고, 경찰에게 다가가 어떻게 된 영문인지를 물었다.
“무슨 테러요?”
경찰은 황당하다는 듯이 되물었다. 오늘은 월요일이기 때문에 레드포트가 문을 닫았을 뿐이고, 이 찬드니초크는 델리에서도 가장 복잡한 곳이어서 늘 사람도 많고, 경찰도 많다는 것이었다.
오토릭샤에 내려서 찬드니초크 거리를 바라보는 순간, 그 소년의 말대로 50만명의 시위대가 모여 있지 않은가. 아니 100만명도 넘어 보인다. 난장판이라는 소년의 말은 틀림이 없다.
다만 국경분쟁에 항의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오그라드는 창자와 목구멍의 시위에 못 이겨 먹고 살기 위해 거리로 나온 사람들이다.
캘커타와 바라나시, 가야시에서 엄청난 인파와 소와 개와 돼지가 뒤죽박죽인 거리를 보고, “이건 도저히 사람 사는 곳이 아니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이 찬드니초크는 그 보다 더했으면 더 했지 덜 하지 않다.
그 아수라장 가운데 깨끗하고 고상해 보이는 하얀 건물이 눈에 띈다. 레드포트에서 찬드니초크 거리로 들어서자마자 첫 건물이다. 바로 디감바르 자인 만디르. 내가 찾는 자이나교 사원이다.
진흙탕 속에 핀 연꽃 같다. 폭력과 전쟁 속에서 신음하는 인도에서 문제를 해결할 비폭력 정신, 즉 아힘사의 씨를 뿌린 곳이니 어찌 그렇지 않으랴.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이 기사의 자세한 내용은 <인도오지기행>(한겨레출판 펴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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