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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순례기

비폭력 사원에서 버젓이 행해지는 폭력

등록 2009-11-02 15:07

보시함 훔친 자 매질…폭력-도둑질, 두 금기 ‘충돌’

성경에 손 얹고 이라크 침공한 부시 얼굴이 불현듯

 

 

경내로 들어가니 신발과 양발을 벗어 신발장에 넣게 한다. 1층 신발장 옆엔 꽤 큰 서점이 있다. 서점엔 자이나교에 대한 책과 그림, 조각들을 판매한다.

 

그 옆 홀에 들어가니 드디어 나체 수행자들의 모습이 담긴 대형 사진들이 있다. 자인교 사원에 가면 교조 마하비르의 성기까지 그대로 드러난 불상이 진열돼 있다. 그러나 이 성자들의 사진은 대부분 앉아 있는 모습이어서 성기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았다.

 

불화처럼 후광이 비치는 옛 자인 성인의 사진 뿐 아니라 오늘날 나체 수행자들의 사진들도 있다. 또 자이나교의 사상을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게 설명해 놓았다.

 

자이나교는 붓다와 동시대, 같은 지역에서 살았던 마하비르(BC 599~527년)에 의해 태어났다. BC 6세기에 갠지스강 중류지역에선 바라문 중심적인 사고와 베다의 권위에 도전한 자유사상이 등장했다.

 

살생 거짓말 도적질 금하는 계율 때문에 대부분 상업 종사

 

당시 사상계의 주류였던 브라만(성직자) 출신이 아닌 크샤트리아(왕족) 출신으로서 새로운 해탈관을 펼친 붓다와 마하비라가 대표적인 인물로 꼽힌다.

 

구원은 신과 같은 외부에 의해서 오는 게 아니라 자신의 수행과 삶에 의해서 결정된다며 기도나 숭배보다는 개인의 노력과 수행을 강조한 자이나교는 여러면에서 불교와 비슷한 점도 많다. 그래서 인도학을 창시했다고 전해지는 막스 베버 같은 인물은 붓다와 마하비라를 동일 인물로 추정하기도 한다.

 

비하르주 바이샬리에서 태어난 마하비라는 사람이나 사물에 집착하지 않기 위해 한 장소엔 하룻밤 이상 머물지 않고, 겨울엔 가장 추운 곳으로, 여름엔 가장 더운 곳으로 찾아다니며 수행하고, 언제나 발가벗고 다니며 벌레를 밟지 않도록 길을 빗자루로 쓸고 다닌 것으로 전해진다.

 

젊은날 붓다처럼 왕족으로서 호사스런 생활을 하다 30살에 출가한 그는 12년의 고행 끝에 깨달음을 얻어 30년 간 붓다와 거의 같은 지역에서 가르침을 펼치다가 72살로 세상을 떴다. 깨달은 뒤 그는 ‘위대한 영웅’이란 뜻의 마하비라 또는 승자, 정복자란 뜻의 지나(jina)로 불렸다.

 

자이나교는 바라문 전통의 사상에 불교보다 더 개혁적인 면이 많았다. 여성 출가자를 허용한 것도 불교보다 자이나교가 빠른 것으로 전해진다.

 

자이나교에선 마하비라 이전에도 ‘윤회의 바다를 건네주는 자’라는 뜻의 티르탕까라가 23명 있었고, 마하비라는 24번째 티르탕까라로 믿는다. 이 디감바르사원은 23대 티르탕까라에게 헌신된 곳이다.

 

이들의 첫째 덕목은 불살생 즉 아힘사다. 이것은 마하트마 간디와 아프리카의 성자 슈바이처 박사 등에도 영향을 미쳤다. 또 거짓말하지 말 것,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치지 말 것, 사유재산을 소유하지 말 것, 금욕을 지킬 것 등 5계가 자이나 승려의 계다. 출가하지 않은 신도는 불살생과 거짓말하지 말 것, 물건을 훔치지 말 것 등 세가지를 지켜야 한다.

 

자이나교인들은 이런 계율 때문에 군인이나 도살업, 농부도 될 수 없었다. 그래서 대부분 상업에 종사했는데  정직과 신용으로 큰 부를 일구었다. 

 

인도 안에서 거의 멸망했지만 세계 종교가 된 불교와 달리 자이나교는 외국으론 나가지 않았지만 인도에선 400만의 신도가 남아 있는데, 이들이 엄청난 부를 쥐고 있어 인도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위치에 있다.

 

그리스도인이 사랑, 불교인이 자비, 자이나인이 비폭력을 버리면…

 

실내 전시물들을 구경하는데 50대로 보이는 키 작은 한 남자가 안내원인 듯 자신들이 어떤 사업을 하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불렀다. 한 참 전시물을 읽고 있는 중에도 자꾸 불렀는데, 기부에 대해 안내하려는 것 같다.

 

2층에도 가보지 않았기에 먼저 사원을 둘러보겠다고 했다. 법당에 해당되는 2층에 올라갈 때는 가방도 몸에 지닐 수 없게 했다. 신자들이 불상에 예배하며 공양을 올리거나 명상 중이다.

 

2층을 둘러보고 내려오는데 1층 전시홀쪽이 소란하다. 아까 나를 불렀던 안내원이 대막대기를 들고 20살쯤 보이는 청년을 내려치고 있다.

 

난 갑자기 너무 놀라서 말문이 막혀 버리고 말았다. 아힘사의 원조인 자이나사원에서 폭력이라니.

 

외국인인 내가 멍하게 지켜봐서 겸연쩍었던지 그는 나를 불렀다. 그에게 가까이 가고 싶지 않았다. 그랬더니 그는 그 청년을 몇 번 내려치고 손을 끌며 내 곁으로 다가온다.

 

“이 놈은 도둑놈이요. 보시함에 든 돈을 몰래 훔쳐가려고 했단 말이요.”

 

그는 “이 놈은 마땅히 맞을 짓을 했다”며 더욱 더 의기양양하게 때려댔다. 어떤 경우에도 폭력을 쓰지 않는다는 첫 덕목 아힘사와 남의 물건을 훔치지 말라는 세 번째 덕목이 상충된 현장에서 그는 첫 번째 덕목을 포기하고, 세 번째 덕목을 강조하고 있었다.

 

다른 곳이었다면 그러려니 했겠지만, 비폭력에 대한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다. 한 사건으로 한 종교를 재단하는 것만큼 위험한 일은 없다. 그러나 허허로운 웃음이 나왔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해 생지옥을 만든 조지 부시 대통령이 늘 성경 위에 손을 얹고 대통령 선서를 하는 역대 미국 대통령들 가운데도 단연 신심이 깊고, 백악관 안에서도 늘 성경공부 모임을 갖는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처럼.

 

기독교 근본주의자 못지않게 이 안내원도 자이나교의 세 번째 원칙을 충실히 따랐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이 사랑을 버리고, 불교인이 자비를 버리고, 자이나인이 비폭력을 버리면 과연 무엇이 남을까.

 

사원의 불상 속에 갇혀버린 마하비라를 뒤로 하니 혼돈 속의 거리 너머로 오늘도 죽고 죽이는 카슈미르 고원과 더 이상 죽고 싶지 않다는 50만 시위대의 절규어린 영상이 내 가슴을 면도칼처럼 파고든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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