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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순례기

사람 취급도 안하면서 개종은 막는 힌두교

등록 2009-11-18 15:06

불가촉천민 차별 금지했지만 법은 법일뿐

신 경배 정성 1만분의 1이나마 나눈다면…

 

 

암베드까르(1893~1956)는 근대 불가촉천민의 아버지다. 그는 인도 독립 뒤 헌법기초위원장과 초대 법무장관을 지낸 인도 헌법의 아버지다. 인도의 어디를 가나 마하트마 간디와 함께 그의 동상을 볼 수 있다. 인도에선 간디와 암베드까르의 생일을 국경일로 제정해 두고 있다.

 

암베드까르는 뭄바이와 푸네 인근 데칸고원에서 불가촉천민으로 태어났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 불가촉천민이었기에 교실 뒤쪽에 자리 한 장을 펴놓은 채 조용히 앉아 있어야 했고, 교실 안 물주전자에 손도 댈 수 없는 차별을 받았다. 그러나 불가촉천민이면서도 영국군 장교로 군사학교 교장을 했고 교육열이 강했던 아버지 덕에 대학에 들어갔고, 미국과 영국, 독일에서 공부해 박사가 돼 돌아왔다.

 

유학까지 한 암베드까르, 차별 맞선 개종 두 달만에 주검으로

 

암베드까르의 남다른 점은 많이 배우고 부자가 된 불가촉천민의 상당수가 지위와 돈을 배경삼아 상위 카스트로 탈바꿈하는 반면 그는 불가촉천민에 대한 차별 철폐를 헌법에 명문화하는 등 불가촉민의 해방을 위해 평생 몸 바쳐 온 점이었다.

 

결국 암베드까르는 힌두교 안에서 불가촉민의 문제를 해결하는 게 불가능해지자 1956년 수백만의 불가촉천민과 함께 불교로 개종했다.

 

개종식을 마친 암베드까르는 행사를 마치자마자 네팔의 카트만두에서 개최되는 세계불교도연맹의 개회식에 참석해 연설하고 나서 불교유적지를 순례한 뒤 뭄바이로 돌아왔다. 그런데 개종식 두 달 뒤 시체로 발견됐다.

 

그의 신불교운동은 그 이후 불가촉민 수백만명의 불교 개종으로 이어졌다.

 

암베드까르도 애초엔 힌두교 안에서 차별을 철폐하려는 운동을 벌였다. 그러나 힌두교 카스트들은 그런 불가촉천민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물건을 팔지도 않고 무차별 보복과 테러를 가했다.

 

그러자 암베드까르는 1935년 불가촉민에게 차별의 근원인 힌두교를 버리라고 외쳤다. 그리고 차별의 근거인 힌두교의 마누법전을 대중들이 보는 가운데 불살라 버렸다. 그런 행위는 인도에선 자살행위와 같은 것이었지만, 인간다운 삶을 회복하기 위해 살해의 보복조차 감내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인 것이다.

 

실제 불가촉민들은 카스트에도 속하지 못하고, 힌두 사원에도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힌두교인도 아니다. 마누법전에선 불가촉민은 개, 돼지, 닭과 마찬가지로 브라만이 식사하는 것을 보아서는 안 되며, 마을 밖에서만 살고, 낮에 돌아다니되 다른 사람들이 그를 쳐다보지 않도록 표시하고, 밤에 돌아다녀선 안 된다고 돼 있다. 또 불가촉민 여자와 하룻밤 통정을 하거나 음식을 받아 먹으면 3년 간 탁발을 해 음식을 먹고 성구를 읊어야 속죄할 수 있다고 기록돼 있다. 불가촉민에겐 저주의 법전인 셈이다.

 

간디의 화해 노력조차 ‘여전히 따로 구분한 동정주의’로 여겨

 

간디와 암베드까르는 인도 독립을 위한 협력자이자 최대 맞수이기도 했다. 간디가 불가촉천민에 대한 불평등을 암적인 문제로 인식하면서도 민족 독립을 위해 불가촉천민의 힌두교 개종을 비난했으나 암베드까르는 노예 해방, 인간 해방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 과감히 개종을 선택했다.

 

간디는 불가촉민을 ‘신의 자녀’란 뜻의 하리잔 이라고 부르며 불가촉민 양녀를 두고, 그들이 하는 화장실 청소를 하기도 해 극우힌두교도들로부터 난폭한 항의를 받곤 했다. 그러나 암베드까르는 간디의 행동을 동정주의로 여겼고, 스스로 ‘부수어지고, 찢기고, 으깨진 자, 핍박받는 자’라는 뜻의 달리뜨라고 불렀다. 진정한 인간 평등을 깨쳤다면 모두가 같은 신의 아들이라고 했어야 마땅한데, 불가촉민을 여전히 따로 구분한 것은 차별 의식에 내면에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 불가촉민들의 생각이었다.

 

인도 정부는 1955년 불가촉천민제 범죄법을 제정해 불가촉민이라는 이유로 차별하는 사람들을 처벌하기로 했다. 또 89년에는 지정카스트와 지정부족민법을 제정해 불가촉민 신분제도를 불법으로 규정했다. 정부는 이들에게 특별한 교육과 직업 혜택을 주었고, 의회에서도 특별한 대표권을 주고, 대학에서도 일정 비율의 신입생을 그들 가운데 선발하도록 했다.

 

그러나 법은 법일 뿐 현실에선 차별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 극우힌두들의 등장으로 박해는 더욱 심해지고 있다. 극우힌두교인들에게 신불교운동을 일으켜 불가촉민 불교도들에게 보살로 추앙받는 암베드까르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다.

 

소보다 못한 대접…개종금지법 제정 주장도

 

지난 97년 7월에는 뭄바이에서 누군가가 암베드까르 동상에 신발을 엮어서 만든 화환을 걸어두었다. 다른 사람의 집을 방문할 때 신발을 벗어야 하고, 죄수들에겐 신발을 목에 두르게 하고 행진하게 하는 관행이 있는 인도니 이것은 큰 모욕인 셈이었다.

 

이를 본 불가촉민들 수천명이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그런데 경찰은 이들을 진압하면서 총을 쏴 10명을 숨지게 하고 34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인도에서 불가촉민은 신도, 힌두교도, 경찰도 돌보지 않는 것을 보여준 단적인 사례다.

 

얼마 전엔 하리야나주에서 5명의 불가촉민이 소의 가죽을 벗겼다는 이유로 경찰에 끌려갔다. 극우힌두단체인 비슈바 단원들은 이들을 경찰서에서 끌어내 집단 구타해 살해했다. 그들은 소의 가죽제품을 만들어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이었고, 가죽을 벗긴 소도 이미 죽은 소였다. 이 사건 이후 가족들은 소 만도 못한 삶에서 벗어나겠다며 불교로 개종했다.

 

불가촉민에 대한 폭력, 살해 행위와는 달리 극우힌두인들은 소에 대한 대우는 강화하고 나섰다.  BJP는 의회에서 소도살금지법안을 통과시킬 것을 밝혔다. 힌두교인을 제외하고는 인도인이라 할지라도 무슬림이나 불교도, 기독교 등 다른 종교인이나 무신론자들은 먹고 있는 소의 도살을 금지시켜 아예 힌두교 국가임을 공고화한다는 것이다.

 

의도야 순수하지 않지만, 살생을 금지하는 법안이니 이 법엔 동의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제는 극우힌두교인들에 의해 개종조차 못하게 하는 법을 만들어지기에 이르렀다. 불가촉민들의 타종교로 개종이 잦아지자 남인도의 타밀나두주는 개종을 금지하는 법안을 상정했다. 모든 개종 행사는 경찰이 원천 봉쇄하고, 당국에 통고 없이 주민들을 개종시키면 구속하겠다는 것이다. BJP 당수 벤카이아 나이두는 타밀나두주 뿐 아니라 인도의 모든 주에서 개종금지법이 제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방 먹고 한쪽에서 찬송만 읊던 그, 내가 동참하자 씽긋

 

나는 가는 곳마다 돌과 대리석으로 장식된 3만3천의 수많은 신들 뒤안길에서 비참한 불가촉민들의 눈물을 보았다. 그 신들에게 바치는 정성의 천분의 1이나 만분의 1이나마 지금 고통받는 이들에게 나눠준다면…….

 

“재이 람, 재이 람…….”(라마에게 승리를, 라마에게 승리를)

 

아쉬람에선 매일 저녁 신전이 차려진 메인 홀에서 끼르탄(찬송)을 했다. 끼르탄은 한마디를 끝없이 반복해 불러 산책하다가도 절로 입안을 맴돌 정도였다.

 

신화 속의 영웅 라마(람)는 애초 태자로서 군왕감이었는데 불구하고 새어머니의 계략에 의해 이복동생이 왕위를 물려받게 되자 왕권다툼을 피하려고 숲 속으로 은거했던 인물이다. 왕위를 차지하기 위해 아버지를 죽이는 일조차 예사인 인도 역사에서 라마는 독특한 존재인 셈이다.

 

삿상을 못하게 된 그 남자는 마치 한풀이라도 하듯, 아니 마치 몰아지경에 이른 듯 눈을 감고 몸을 흔들며 “재이 람, 재이 람”을 읊조렸 다. 나는 살짝 그 옆으로 가 앉았다. 그리고 그처럼 열심히 “재이 람, 재이 람”을 따라했다. 그는 실눈을 뜬 채 나를 보더니, 나의 열광스런 끼르딴을 화해의 제스처로 받아들였는지 씽긋 웃었다.  나도 씽긋 웃었음은 물론이다.

 

자기가 믿는 신의 이름이나 주장만을 외치는 것은 다른 신을 외치는 이와 갈등과 폭력을 야기하는 지름길. 하지만 그 신이 준 가르침과 가치를 따르며 살아가는 것은 사랑과 화해의 길. 그러니 ‘재이 람’을 외치는 내 가슴 속 기도문은 달랐다.

 

“형제가 자신의 자리를 뺏으려 할지라도, 상대가 아무리 하찮게 보일지라도 관용하기를, 그리고 그것이 힌두인만이 아니라 내 자신의 삶이 되기를!”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이 기사의 자세한 내용은 <인도오지기행>(한겨레출판 펴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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