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드렛일은 불가촉민 ‘몫’…거부했다가 반발만 사
인도 어디서나 볼수있는 간디는 화석으로 굳은 신
간디는 어린시절 외엔 사가에서 산 적이 없다. 늘 공동체 삶을 살다 갔다. 그가 인도에서 가장 많은 세월을 보낸 곳은 중인도 세바그람 간디아쉬람이었다. 인도에서 간디의 흔적이 있는 곳이면 서슴없이 찾아나서곤 했던 내게 중인도 세바그람은 중요한 정거장일 수밖에 없었다. 그 세바그람의 대문 옆 빗장을 열고 마당을 가로질러 조심스럽게 바푸 쿠티룸으로 향했다.
간디 찾아 나선 새벽, 그의 아픔이 내 가슴에 그대로
간디가 심은 아름드리 나무 그늘에 가려 마당은 더욱 어두웠다. 이방인의 발자국에 잠을 깬 자갈들의 소음이 유난히 크게 울렸다.
조용히 조용히 발자국을 옮길 때마다 어둠 속에서 인도의 파노라마가 밟혔다. 개, 돼지나 다름없이 살아가는 수많은 불가촉민들, 거리의 걸인과 장애인들, 카슈미르에서 서로 겨눈 총알로 죽어가는 힌두교도와 무슬림들, 극우 힌두들의 성난 폭력에 죽어가는 무슬림과 시크교인과 불가촉민들의 신음….
간디가 너무나 아파했던 인도를 돌아보며, 난 히말라야에서 델리, 뭄바이, 푸네까지 간디의 흔적이 있는 곳이면 마다하지 않고 달려갔다. 그러나 호화로운 박물관과 동상을 방문하고, 내가 가진 인도 돈이란 돈에는 빠짐없이 간디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었지만 간디를 만나진 못했다.
3만3천개의 신들처럼 간디도 신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너무나 어려운 주문만 하는 성인과 현자들을 속히 신상 속에 가둬버리는 사람들의 전략에 간디라고 벗어날 수 있을까. 내가 찾던 것은 화석화한 간디가 아니라 “삶이 곧 메시지다”고 했던 그의 말대로 그의 삶을 만나는 것이었다.
이곳에서도 간디를 만나지 못하면 이제 어디에서 간디를 찾는단 말인가. 간디가 또 어딘가로 숨어버리기 전에 그를 만나야 한다는 절박감이 이렇게 밤고양이처럼 새벽에 간디의 방을 급습하게 했는지 모른다.
어스름 속에서 바푸 쿠티가 나타났다. 간디가 인도에 돌아온 뒤 가장 오랫동안 살았던 집이다. 단순하고 소박했다. 화려하지 않고 웅장하지 않은 바로 그것이 간디가 부재하지 않음을 알려주었다. 새벽 공기를 뚫고 그의 숨결이 내 가슴을 파고 들었다. 그가 새벽이면 이렇게 걸터앉아 아침을 기다렸을 바푸 쿠티의 마루에 앉았다. 갑자기 아픔이 밀려왔다.
이 아쉬람에서 간디는 ‘바푸’(아버지)로 불렸다. 고통 받는 민초들을 두고 떠나는 간디의 심정도 어찌 한 가정의 아버지의 마음과 달랐겠는가. 가슴에 총알을 받으면서도 “하레 람!”(신이시여!)하던 간디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렸다.
힌두교인에게 총 맞아 죽는 순간까지도 “신이시여!“
“신이시여! 그를 용서하소서, 저들을 지켜주소서!”
그가 미처 끝까지 내뱉지 못한 채 연민으로 눈물을 삼켰을 그의 말이 내 가슴에 울렸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가며 “하느님, 저들을 용서하소서” 했듯이.
그가 걱정한 이는 총을 쏜 힌두광신자 나투람 고드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의 가슴에서 쏟아지는 피가 채 식기도 전에 “범인은 이슬람교도다”라는 외침이 들렸다. 그토록 평생 비폭력을 외친 그의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도 사람들은 폭력거리를 찾고 있었으니, 죽어가는 간디의 심중이 어땠을까.
“바푸!”
난 아버지를 다시 만난 심정으로 간디를 위로하고 싶어졌다. 완벽한 존재로 포장된 구루가 아니었기에. 삶과 진리와 나라와 지구를 고뇌하는 성찰을 보여준 한 인간에 대한 연민과 감사였다.
“네티 네티”(이것은 아니다. 이것도 아니다)
유난히 생경한 발음이 신선한 아침 공기와 함께 폐부 깊숙이 파고들었다.
“이 이른 아침에, 생각과 말로도, 모든 말로 감사해도 다할 수 없는 당신께 기도드립니다. 베다 경전에서 태어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은 모든 것의 근원인 신 중의 신으로 불리는 구세주이면서 ‘네티 네티’인 당신께 경배합니다.”
간디는 매일 아침 이 기도로 아침을 열었다. 6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간디의 방 바푸쿠티 앞마당에선 새벽 4시30분에 10명이 모여 기도회를 열었다.
조금이라도 뭔가를 알았다 싶으면 ‘바로 이것이다’고 단정짓는 게 나의 습성이고, 많은 사람의 습성이 아닌가.
모든 종교를 아우르는 종교인, 삶에서 실천
그러나 늘 “네티 네티”로 아침을 열면서 독선을 부정하고, 자신을 부정해온 게 간디의 삶이었다. 힌두교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힌두교의 도그마에 갇히지 않고, 자이나교의 ‘아힘사’(비폭력)정신으로 평생 살았지만 자이나교 속에만 머물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자세 때문이었다.
그는 어떤 종교인이었던가. 평생 신을 좇았으니 독실한 힌두교인이다. 유일한 절대자에게 복종하는 삶을 살았으니 무슬림이다. 평생 비폭력을 진리에 이르기 위한 유일한 수단으로 삼았으니 자이나교도다. 죽는 순간까지 힌두교와 이슬람의 분열을 원치 않고 하나 속에서 조화를 이루고자 노력했으므로 시크교도다.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는 예수의 말대로 늘 자신의 욕망을 부인하고 고통을 짊어진 채 진리를 좇았으니 기독교도다. 증오를 넘기 위해 평생 비폭력을, 갈애를 넘기 위해 가장 끊기 어려운 욕망인 식욕과 성욕을 넘는 정진을 실천했으니 불교도다.
“생명 가진 모든 것을 평등하게 대하는 것은 자기 정화 없이는 불가능하다. 자기 정화가 없이 아힘사의 법칙을 지킨다는 것은 허망한 꿈일 뿐이다. 혼이 순결하지 못한 사람은 신을 실현할 수 없다. 그러므로 자기 정화는 생활의 모든 행동의 정화를 뜻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기 정화의 길은 좁고 험하다. 완전한 정화에 이르려면 생각으로나, 말로나, 행동으로나 절대적으로 정욕을 버려야 한다.”
이것이 간디의 생각이었다. ‘진리야말로 신’이라고 믿고 평생 진리를 위한 삶을 실험했던 간디는 ‘나의 진리실험 이야기’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교활한 정욕을 정복하기란 무력을 가지고 세계를 정복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 인도에 돌아온 후에도 언제나 내 속에 보이지 않게 정욕이 잠재해 있는 것을 경험했다. 이를 알때 낙심은 하지 않지만 부끄러움을 느낀다. 나는 나를 무에까지 내리지 않으면 안 된다. 사람이 스스로 자기를 피조물 중의 맨 끝에 세우지 않는 한 구원은 있을 수 없다. 아힘사는 겸허의 궁극점이다.”
기도회는 이런 삶을 구체적으로 실천하기 위한 맹세로 이어진다.
1.아힘사 : 생각, 말, 행동에 있어서 비폭력이 된다.
2.사트야 : 생각, 말, 행동에 있어서 진실한다.
3.아스테야 : 도둑질하지 않는다.
4.브라마챠리야 : 정욕에서 벗어나 지고의 본성을 추구한다.
5.아삼그라하 : 무소유한다.
6.샤레라-슈라마 : 노동을 존중하고 행한다.
7.아스와다 : 식사를 절제한다.
8.사르바트라 봐야 : 바르자나:모든 것에 대해 두려움을 없앤다.
9.사르바 담미 사마‘나트와 :모 든 종교들에 대해 똑같은 존경심을 갖는다.
10.스와데시 : 형제애의 법칙을 지킨다.
11.스파르샤 봐’바나‘ :모든 사람을 평등한 존재로 취급한다.
인도의 독립보다 먼저 의식과 삶 개혁 주장
간디는 무저항 비폭력으로 인도의 독립을 가져온 인도 독립의 아버지다. 그러나 그는 대부분의 인도인이 독립을 열망할 때도 독립보다 의식의 변화와 삶의 개혁이 더 시급함을 강조했다. 이것이 선행되지 않으면 설사 독립과 정치 개혁이 이뤄진다고 해도 무자비한 영국인의 지배가 무자비한 인도인의 지배로 바꿔질 뿐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기도가 끝나자 늘 웃통을 벗고 사는 후리가 바푸 쿠티 주위를 빗자루로 쓸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인도에서 많은 공동체, 아쉬람을 다녔지만 대부분 청소와 같은 허드렛일은 자기들이 하지 않고 늘 불가촉민 고용인을 썼다.
이곳에선 모든 일을 10명의 공동체 가족들이 직접 한다. 간디가 1936년 69살의 나이로 아쉬람을 만들었을 때 이곳은 길조차 없는 궁벽한 시골이었다. 마을 사람 639명의 대부분이 불가촉 천민이었다.
불가촉 천민에 대한 차별 철폐를 평생의 과제로 삼으며 이들을 ‘하리잔’(신의 자녀)으로 부르고 ‘하리잔’이란 신문을 발간했던 간디는 마을 우물도 사용하지 못했던 하리잔들에게 아쉬람 우물을 개방하고, 아쉬람의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하리잔인 여자아이를 양녀로 들였다. 그는 당시엔 하리잔만이 했던 화장실 청소를 해 다른 카스트의 분노와 반발을 샀다. 아쉬람의 크고 작은 노동을 아쉬람 가족들이 직접 하는 것은 그래서 당연한 일이 되었다. 그것은 적어도 차별이 당연시되는 인도에선 지금까지도 역시 ‘이상한 광경’이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이 기사의 자세한 내용은 <인도오지기행>(한겨레출판 펴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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