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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순례기

겟세마네동산에서 울어 눈이 퉁퉁 분 교무님

등록 2008-08-14 00:25

[여성 수도자] ⑦ 교리의 ‘벽’ 넘어 ‘길’로 수녀님 손잡고 '예수 고통' 따라 골고다 언덕 넘어 이웃 종교를 내 종교 같이 사랑하는 마음 흘러넘쳐
순례 기간 중 삼소회원들의 마음이 가장 하나로 모아진 곳이 바로 겟세마네 동산이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 마지막 기도처에선 수녀님들뿐 아니라 스님과 교무님들도 뭔가 북받쳐 오르는 것을 감내하기 어려운 표정이었다. 그 가운데 하정 교무님은 눈물샘의 마중물이 되었다. 그는 올리브 나무 아래서 눈이 붓도록 눈물을 흘렸다. 베아타 수녀님이 다가가 손을 맞잡았고, 둘은 마주 앉아 오래도록 울었다.

삼소회원들이 인도에서 달라이 라마를 뵈었을 때, 이웃 종교의 성지를 방문할 때는 그 종교인의 마음이 되라는 주문도 있었지만, 이웃 종교에 대한 원불교인들의 진심 어린 존경은 남다른 데가 있었다. 대종사, 찾아온 장로에게 “내 제자가 된 뒤라도 하나님 신봉하라” 이웃 종교인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는 교조인 소태산 대종사님이 몸소 보여주었다. 대종사님의 생전에 조송광이란 개신교 장로가 찾아왔다. 대종사님은 그에게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고 묻자 조 장로가 답함으로써 문답이 이어졌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무소 부재하사 계시지 아니하는 곳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대가 늘 하나님을 뵈옵고 말씀도 듣고 가르침도 받았는가?”

“아직까지는 뵈온 일도 없사옵고 말하여본 적도 없습니다.”

“그러면 그대가 아직 예수의 심통(心通) 제자는 못 되지 아니하였는가?”

“어떻게 하오면 하나님을 뵈올 수 있고 가르침을 받을 수도 있겠습니까?”

“그대가 공부를 잘하여 예수의 심통 제자만 되면 그리할 수 있느니라.”

“제가 오랫동안 저를 직접 지도하여주실 큰 스승님을 기다렸삽더니, 오늘 대종사를 뵈오니마음이 흡연하여 곧 제자가 되고 싶습니다. 그러하오나, 한편으로는 변절 같사와 양심에 자극이 됩니다.” “예수교에서도 예수의 심통 제자만 되면 나의 하는 일을 알게 될 것이요, 내게서도 나의 심통 제자만 되면 예수의 한 일을 알게 되리라. 그러므로, 모르는 사람은 저 교 이 교의 간격을 두어 마음에 변절한 것같이 생각하고 교회 사이에 서로 적대시하는 일도 있지마는, 참으로 아는 사람은 때와 곳을 따라서 이름만 다를 뿐이요 다 한 집안으로 알게 되나니, 그대의 가고 오는 것은 오직 그대 자신이 알아서 하라.” 그래도 조 장로가 일어나 절하며 제자 되기를 다시 발원하자 대종사님은 이를 허락하면서 “나의 제자 된 후라도 하나님을 신봉하는 마음이 더 두터워져야 나의 참된 제자”라고 말했다. 인류 역사의 한판 기운을 바꾸는 계기가 되길 소망 대종사님의 이런 정신을 잇고 있는 좌산 종법사님은 익산 총부에 들른 삼소회원들을 배웅하면서, 인류 역사의 한판 기운을 바꾸는 계기가 되길 소망했다. 종법사님의 기원은 순례자들에게 늘 화두처럼 가슴에 담겨 있었다. 종법사님의 그토록 간절한 서원에도 불구하고 인도와 영국, 이스라엘을 순례하면서 순례단원 사이에 벽과 같은 기류가 느껴질 때가 적지 않았다. 그래서 내 가슴이 답답해오면 나는 버릇처럼 교무님들에게 다가가 원불교 어른들의 얘기를 듣곤 했다. ‘길’이라고 내세운 종교들의 교리가 ‘벽’일 때가 많은 반면, 삶의 스승들에 대한 일화는 내 막힌 가슴을 뚫어주곤 했다.
원불교가 개교된 지 이제 91년에 불과하니 교조인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나 2대 종법사인 정산 송규 종사(1900~1962), 3대 종법사인 대산 김대거 종사(1914~1998)가 그렇게 먼 시절 분들이 아니어서 그들을 뵈었던 분들의 얘기를 듣는 것이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이번 순례엔 3대 종법사 대산 종사님을 직접 시봉했던 인신 교무님과 홍인 교무님이 동행했기에 그 어른들에 대한 갈증을 모처럼 해갈할 수 있었다. 처음 출가해서 3년 간 대산 종사님을 모셨던 인신 교무님은 종교를 가리지 않고 찾아오는 사람들을 온 마음으로 품어주고, 새벽이면 먼 산을 바라보며 돌부처처럼 굳은 채 간절히 심고(마음 기도)하던 모습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홍인 교무님은 대산 종사님을 모시면서 “살아 있는 부처를 체험하는 시간이었다”며 감격해했다. 또 순례단엔 원불교 국제부장으로서 익산 중앙총부에 살면서 현 종법사님을 가까이서 모시고 있는 효철 교무님이 함께했다. 그로부터 총부 얘기와 종법사님 얘기를 듣는 것은 더할 나위 없는 즐거움이었다. 강원용 목사도 원불교와 신도들 삶에 찬사 보내 나도 언제부터인가 익산 총부에 가면 기분이 좋았다. 온화하기 그지없는 좌산 종법사님이 계시고, 누구나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도록 이끌어주신 장산 황직평 종사님 등 경륜 있는 많은 원로들이 계시기 때문이다. 또 총부엔 예순다섯 살이 넘어 현직에서 은퇴한 원로들이 사는 수도원이 있는데, 난 그곳을 ‘도인촌’이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세상과 도의 이치에 밝고 마음이 열려 있는 분들이 함께 모여 있는 곳으로서 지구상에 이보다 더한 곳이 많지 않으리란 생각을 하곤 했다. 원불교 어른들을 뵈었을 때의 느낌이 나만의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개신교 목사로서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인 지도자이고, 종교 간 대화운동에도 선구적인 역할을 했던 강원용 목사는 아마 세계에서 가장 많은 정신적 지도자를 가까이서 만난 사람 중 한 명일 것이다. 그가 원불교 3대 종법사인 대산 김대거 종사에 대해 쓴 인물평을 읽은 기억이 있다. 대산 종사는 종단의 최고 어른인 종법사임에도 비닐하우스에 살았는데, 강 목사는 그 비닐하우스에서 대산 종사를 몇 차례 만났다고 한다. 그는 대산 종사가 열반하자 한 신문에 그를 회고한 글을 썼다. “나는 기독교를 위시해 꽤 많은 종교의 높은 위치에 있는 지도자들과 만나고 협력해왔으나 내 머릿속에 아주 마음을 편하게 가지고 즐겁게 접할 수 있는 분을 말하라면 첫째로 이분이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는 원불교와는 다른 기독교 목사지만, 원불교와 그 신도들의 삶의 태도에 대해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고 있다.” 대산종법사의 뒤를 이어 교단을 이끄는 좌산 종법사님은 순례단이 해외순례에 나서기전 익산 원불교 총부에 들르자 “우주의 한 판 기운을 바꾸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원해주었다. 그의 기원은 순례단에게 화두가 되었다.

지금까지 삼소회 활동에 큰 역할을 했던 지정 교무님은 스승님들의 말씀을 실현하기 위해 많은 날 기도하며, 다른 종교 수도자들과 교분을 맺어왔다. 베아타 수녀님과 늘 한 방을 쓰면서 어떤 도반보다 다정하게 지냈던 지정 교무님은 골고다언덕으로 향하며 베아타 수녀님에게 말했다. 우리 함께 예수님의 그 고통을 그대로 느끼며 저 언덕을 넘자고.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동영상 장수경 기자 [이 기사의 자세한 내용은 <지금 용서하고 지금 사랑하라>(비채 펴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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