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예수님 무덤
자신을 패배시킨 아픔에 수녀님 `눈물의 강'
지킴이 수사는 10년을 하루같이 부활 묵상
가이드였다. 그 순간 가이드는 그야말로 나의 구세주였다. 그의 뒤를 좇아갔다. 순례단은 예수님이 못 박힌 11지점의 교회에 있었다. 예수님의 무덤에 들어가려고 수백 명이 뒤에 줄을 서 있었다. 교무님들과 스님들과 수녀님들이 얼마나 걱정한 줄 아느냐며 나 때문에 진짜 슬픔의 길이 됐다고 했다.
큰 교회 안엔 작은 교회와 무덤, 예수님의 시신을 염한 장소 등이 있었다. 이곳에서 예수님은 손과 발에 못이 박혀 십자가에 매달렸다. 로마 시대 십자가형은 가장 고통스런 형벌이었다. 십자가에 매달린 사형수의 기력이 다하면 몸이 늘어져 못 박힌 손발에 힘이 가해지고, 그곳에서 끝없이 피가 쏟아지면서 점차 폐가 눌려 질식사하게 된다고 한다. 건장한 사람들은 무려 15일 간이나 그런 고통을 받으며 죽어가기도 했다는 것이다.
전날 올리브 동산에서 잠 못 이룬 채 기도하고, 채찍 세례를 받아 만신창이가 되고, 가시관을 쓴 채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온 예수님은 여섯 시간여 만에 운명했다고 한다.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온 땅이 어두워지고 목숨이 다해갈 때 예수님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몸부림치며 외쳤다.
운명하기 직전 예수님은 “내가 목이 마르다”고 했다. 그 타는 목마름을 어찌 말로 형언할 수 있을까. 그때 사람들이 신 포도주가 가득 담긴 그릇이 있는 것을 보고, 해면에 포도주를 적셔 갈대에 꿰어서는 예수님의 입에 댔다. 이윽고 예수님의 영혼이 육신을 떠났다.
예수님은 핍박받는 유대 민족의 구원자로 나서 압제자 로마 제국을 무너뜨리기는커녕 이렇게 비참한 모습으로 허망하게 떠나갔다. 세속에서 그가 이룬 성공이 무엇이던가. 유대 민족의 지도자가 되었던가. 추종받는 종교 지도자가 되었던가. 동포들의 존경을 받았던가. 믿을 만한 제자가 많았던가. 자신을 핍박하던 이들을 기적으로 단번에 물리쳤던가.
아니었다. 세속의 성공은 그의 것이 아니었다. 그는 처절히 패배하지 않았던가. 상대를 패배시키는 세속적 승리를 떠나 그는 철저히 자신을 패배시키지 않았던가.
예수님은 그렇게 허망하게 갔다. 그러나 예수님은 운명하기 전 “모든 것을 이루었다”고 했다. 그리고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기나이다” 하고 숨을 거뒀다. 그것이 마지막 말씀이었다.
내 편과 네 편을 떠나 결국 내 편과 네 편 모두로부터 따돌림 받아 처절히 희롱당하고 고통 당한 예수님이 어떻게 ‘모든 것을 이루었다’는 것일까.
수녀님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렸던 바로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마리아 수녀님과 마리 코오르 수녀님이 흘린 눈물만으로 물줄기가 생길 것 같았다. 교무님들과 스님들도 예수님의 시신을 염했던 바위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맞대며 예수님의 그 아픔을 온몸으로 느꼈다.
예수님의 무덤 옆에 동양인 수사님이 있었다. 그는 예수님의 무덤을 지키고 있다고 했다. 예수님이 묻히시고, 예수님이 부활하신 그 무덤을. 수사님은 10년을 하루처럼 예수님의 부활을 묵상했다. 수사님이 말했다. “사랑은 결코 죽지 않는다”고.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이 기사의 자세한 내용은 <지금 용서하고 지금 사랑하라>(비채 펴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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