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박현철의 아직 안 키우냥
28. 다시 ‘합방’
집사만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을 하나 꼽는다면, 고양이와 함께 잠들고 일어나는 일이다. 평소엔 집사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고양이가 먼저 다가와 품 속으로 파고들면, 그래서 뜨끈한 온기가 전해오면 온몸이 사르르 녹는 기분이다. 아침에 잠에서 깼을 때도 마찬가지. 집사의 다리 사이에서 똬리를 틀고 잠든 고양이는 출근의 고통을 잠시나마 잊게 해준다.
이렇게 좋은 걸, 두 고양이들과 함께 살면서도, 1년 넘게 누리지 않았다. 2017년 1월께, 라미와 보들이가 연달아 장염을 앓고 집안 곳곳에 ‘똥테러’를 저지른 뒤부터 잠잘 땐 고양이들과 ‘각방’을 썼다. 똥테러 걱정 때문만은 아니었다. 함께 잠들면 각자가 뒤척일 때마다 서로 잠을 깬다. 생후 4~5개월을 지나면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뿜어내는 털도 한 이유였다. 지난 여름 극심한 무더위 탓에 마루에서 함께 잔 적은 있지만, 침대와 이불이 있는 안방은 오랫동안 고양이들에겐 금단의 영역이었다. 그랬는데… 새 집사가 온 뒤부터 안방을 향한 두 녀석들의 ‘집념’이 낮밤을 가리지 않았다. 방문이 열리면 라미는 잽싸게 안방으로 뛰어들어 갔다. 그런 라미를 붙잡고 못 들어오게 하면서 안방을 드나드는 것도 꽤나 번거로웠다. 보들이는 아침에 유독 안방에 집착했다. 방문을 긁다가 두드리다가 “이이이잉” 하고 울기도 했다.
“못 들어오게 하니까 더 집착하는지도 몰라.” 고양이와 ‘합방’ 경험이 없는 새 집사는 사실 고양이들보다 더 합방을 하고 싶어했다. 날씨가 점점 쌀쌀해지는 중이었고, 보들이가 털을 찌우는 시기였다.(그래서 털 뿜뿜이 덜했다) “그래, 모두가 원하는데, 같이 자자.”
예상대로 침대에 오른 고양이는 ‘사랑스러움 포스’가 엄청났다. 보들이는 ‘골골송’을 불러가며 좀처럼 하지 않던 ‘꾹꾹이’(고양이가 앞발을 오므리고 펴며 꾹꾹 누르는 행동)를 선보였다. 헌 집사 다리 사이에 누웠다가 새 집사 배 위에 올랐다가… 자기도 신났는지 침대 구석구석을 탐험하고 뒤집고 또 거기서 잠들었다.
평소엔 천방지축, 차분히 있질 못하는 라미도 침대에서는 얌전한 고양이로 변신했다. 보들이보다 추위를 더 타는 라미는 아예 이불 속에서 잠들었는데 그게 또 합방의 하이라이트였다. 라미가 겨드랑이로 파고들거나 옆구리에 바짝 붙어 잠들면 뜨거운 온기(고양이 체온은 39도다)가 전해왔다. 꼼지락거리는 라미를 만지고 있자니 아깽이 시절 생각이 났다.
두 고양이와의 합방의 기쁨은 극세사 이불에 촘촘히 박힌 보들이 털이나 화장실에서 묻혀 온 라미의 발바닥 먼지를 잊기에 충분했다. 특히 그 기쁨을 처음 맞본 새 집사는 “이 좋은 걸 왜 지금까지 하지 않았냐”며 “이제 다시는 각방 생활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물론 그 공언이 언제까지 지켜질지 장담할 순 없다. 곧 날이 더 추워질 텐데 언제까지 안방문을 열어 놓고 잘 수 있을지.(냥이들 화장실 가야 하기 때문에 합방하려면 열어두고 자야 한다) 곧 겨울 지나고 또 봄이 올 텐데, 털갈이 시즌을 맞은 보들이의 털 뿜뿜을 참아낼 수 있을지.
박현철 서대문 박집사
28. 다시 ‘합방’
집사의 출근을 방해하는 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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