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크리스마스 휴일에 휴가를 붙여 창원에 다녀왔다. 라미와 보들이에겐 2년만에 가는 할머니댁 나들이였다. 대형 화장실을 분리해 차 뒷좌석과 트렁크에 나눠 실었다. 스크래처, 밥그릇과 물그릇, 사료와 통조림캔 등을 마저 실으니 정작 사람이 쓸 짐을 실을 공간이 부족할 정도였다.
편도 5시간. 좁은 자동차 안에 있으면 사람도 쉽게 지치는 긴 여정이니 고양이들은 오죽 했을까. 계속되는 소음과 진동 탓인지 라미는 출발과 동시에 온몸이 부서져라 울기 시작했다. 사람으로 치면 현재 라미의 나이는 20대 중반. 2년 전 창원에 갔을 때 라미의 나이가 생후 4개월, 사람 나이로 8살이었다. 라미는 초등학교 1학년 이후 거의 20년 만에 장거리 여행을 한 셈이었다.
고양이들을 고생시킨 덕분(?)에 난 엄마가 해주신 따뜻한 밥을 먹으며 편한 휴가를 보낼 수 있었다. 집에 두고 갔더라면 심심하진 않을지, 자동급식기는 제때 잘 작동했을지, 일일 보모님이 문단속은 잘 하고 갔을지 등등을 끊임없이 걱정하고 확인했을 것이다.
라미를 처음 만난 2016년 10월30일 이후 나의 삶엔 고민과 긴장과 걱정과 또 그것들을 다 잊을 만한 만족과 재미와 깨달음이 반복되고 있다.
긴 여행은 꿈도 꾸지 못하지만 짧은 여행을 가면서도 데리고 갈지, 두고 갈지를 두고 수없이 고민한다. 고양이들이 비좁은 차 안에서 시달리는 건 안타깝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길에 두 고양이가 함께 한다는 사실은 꽤나 감동적이다.
라미와 보들이를 처음 본 조카들이 신기하고 귀엽다며 둘을 졸졸 따라다니는 모습은 재밌지만, 또 그것 때문에 고양이들이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을지 걱정스럽기도 하다. 고양이가 둘이니 걱정과 감동, 기쁨 따위도 두배다. 조카들의 관심에 지친 보들이는 화장실 입구에 숨어 한동안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할머니집에서 잘 적응하는 것 같았던 라미는 서울 집으로 온 다음날 한나절 내내 끼니도 거르고 잠만 잤다. 평소 같으면 자다가도 깨서 달려올, 말린 북어로 만든 간식을 줘도 냄새만 맡고 돌아섰다.
2년 전 라미를 데려올 때 상상하지 못했던 삶이 이어지고 있다. 예상했지만 예상 그 이상으로, 같이 산다는 건 100% 만족스럽지도 100% 불만족스럽지도 않은 일이다. 내 삶이 더 다양해지길 바라는 마음에 고양이와의 공생을 선택했지만 나를 위해 고양이들의 삶을 희생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삶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불행하기만 한 것도 아니란 사실을 두 고양이는 내게 어렴풋이 알려줬다.
‘아직 안 키우냥’이란 문패를 달고 2년 가까이 고양이와의 일상을 기록했다. 아직까진 누구에게도 “고양이 한번 키워보라”고 말하지 못했다. 아직 고양이가 어떤 존재인지, 라미와 보들이가 어떤 고양이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먼 훗날 지금보다 라미와 보들이를 더 잘 알게 됐을 때 들춰볼 수 있도록 이제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그때쯤이면 “이러이러한 분들, 고양이와 함께 살아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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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철 서대문 박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