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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반려동물

상상하지 못한 삶은 계속 되겠지

등록 2019-01-04 19:39수정 2019-01-04 20:14

[토요판] 박현철의 아직 안 키우냥
30. 고양이와의 2년, 그리고...
낮잠자는 보들이(왼쪽)와 일광욕 중인 라미.
낮잠자는 보들이(왼쪽)와 일광욕 중인 라미.
지난 크리스마스 휴일에 휴가를 붙여 창원에 다녀왔다. 라미와 보들이에겐 2년만에 가는 할머니댁 나들이였다. 대형 화장실을 분리해 차 뒷좌석과 트렁크에 나눠 실었다. 스크래처, 밥그릇과 물그릇, 사료와 통조림캔 등을 마저 실으니 정작 사람이 쓸 짐을 실을 공간이 부족할 정도였다.

편도 5시간. 좁은 자동차 안에 있으면 사람도 쉽게 지치는 긴 여정이니 고양이들은 오죽 했을까. 계속되는 소음과 진동 탓인지 라미는 출발과 동시에 온몸이 부서져라 울기 시작했다. 사람으로 치면 현재 라미의 나이는 20대 중반. 2년 전 창원에 갔을 때 라미의 나이가 생후 4개월, 사람 나이로 8살이었다. 라미는 초등학교 1학년 이후 거의 20년 만에 장거리 여행을 한 셈이었다.

고양이들을 고생시킨 덕분(?)에 난 엄마가 해주신 따뜻한 밥을 먹으며 편한 휴가를 보낼 수 있었다. 집에 두고 갔더라면 심심하진 않을지, 자동급식기는 제때 잘 작동했을지, 일일 보모님이 문단속은 잘 하고 갔을지 등등을 끊임없이 걱정하고 확인했을 것이다.

라미를 처음 만난 2016년 10월30일 이후 나의 삶엔 고민과 긴장과 걱정과 또 그것들을 다 잊을 만한 만족과 재미와 깨달음이 반복되고 있다.

긴 여행은 꿈도 꾸지 못하지만 짧은 여행을 가면서도 데리고 갈지, 두고 갈지를 두고 수없이 고민한다. 고양이들이 비좁은 차 안에서 시달리는 건 안타깝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길에 두 고양이가 함께 한다는 사실은 꽤나 감동적이다.

라미와 보들이를 처음 본 조카들이 신기하고 귀엽다며 둘을 졸졸 따라다니는 모습은 재밌지만, 또 그것 때문에 고양이들이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을지 걱정스럽기도 하다. 고양이가 둘이니 걱정과 감동, 기쁨 따위도 두배다. 조카들의 관심에 지친 보들이는 화장실 입구에 숨어 한동안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할머니집에서 잘 적응하는 것 같았던 라미는 서울 집으로 온 다음날 한나절 내내 끼니도 거르고 잠만 잤다. 평소 같으면 자다가도 깨서 달려올, 말린 북어로 만든 간식을 줘도 냄새만 맡고 돌아섰다.

2년 전 라미를 데려올 때 상상하지 못했던 삶이 이어지고 있다. 예상했지만 예상 그 이상으로, 같이 산다는 건 100% 만족스럽지도 100% 불만족스럽지도 않은 일이다. 내 삶이 더 다양해지길 바라는 마음에 고양이와의 공생을 선택했지만 나를 위해 고양이들의 삶을 희생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삶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불행하기만 한 것도 아니란 사실을 두 고양이는 내게 어렴풋이 알려줬다.

‘아직 안 키우냥’이란 문패를 달고 2년 가까이 고양이와의 일상을 기록했다. 아직까진 누구에게도 “고양이 한번 키워보라”고 말하지 못했다. 아직 고양이가 어떤 존재인지, 라미와 보들이가 어떤 고양이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먼 훗날 지금보다 라미와 보들이를 더 잘 알게 됐을 때 들춰볼 수 있도록 이제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그때쯤이면 “이러이러한 분들, 고양이와 함께 살아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모를 일이다.

<끝>

박현철 서대문 박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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