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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인간과동물

“병원체만 쫓아선 확산을 잡을 수 없다”

등록 2020-05-04 10:03수정 2020-05-12 18:21

[애니멀피플] 포스트 코로나19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묻다 ②
김영준 국립생태원 동물관리실장
“조류인플루엔자 이름 탓 새 적대시…비둘기에서 바이러스 나왔다면?”
“멧돼지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 몰라…잘 알아야 돼지열병도 방역한다”
김영준 국립생태원 동물관리실장은 야생동물 수의사로 바이러스를 쫓고 있다. 그는 감염병 방역을 잘하려면, 생태학 등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영준 국립생태원 동물관리실장은 야생동물 수의사로 바이러스를 쫓고 있다. 그는 감염병 방역을 잘하려면, 생태학 등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영준 수의사(47)는 대관령의 목장에서 축산동물 수의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방글라데시에서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의 단원으로 봉사활동을 하던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했고, 귀국해 충남 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 동물을 구조하고 보살폈다. 지금은 환경부 산하 국립생태원에서 동물관리실장으로 일하면서, 감염병 방역에도 나서고 있다.

박쥐의 바이러스에서 출발한 ‘코로나19 사태’는 새삼 지구의 생명체가 연결되었음을 보여주었다. 가축에서 야생동물 그리고 바이러스를 쫓아다닌 게 김영준 수의사의 삶이었다. 29일 충남 서천 국립생태원에서 그를 만났다.

―코로나19 같은 감염병 사태는 앞으로도 자주 발생할까?
“유사 이래 범람(스필오버·바이러스가 종간 장벽을 넘어 이동하는 현상)은 지속해서 있었다. 스필오버가 발생했지만, 눈에 띄지 않았던 것뿐이다. 다이너마이트와 심지를 상상해보자. 과거에는 심지가 워낙 길어서 불이 붙어도 가다가 꺼졌다. 최근 들어선 교통의 발달과 교류의 증가로 심지 길이가 짧아졌다. 그러니 여기저기서 뻥뻥 터지는 거다. 코로나19 같은 경우는 워낙 확산성이 큰 바이러스 자체의 특성도 있다.”

―우리가 모른 채 지나갔던 바이러스도 있었겠다.
“지난 1월 과학저널리스트 데이비드 콰먼이 <뉴욕타임스>에 흥미로운 칼럼을 썼다. 몇 년 전 중국 윈난성 한 동굴의 박쥐에서 사스-코로나바이러스와 비슷한 종류의 바이러스가 발견됐다. 동굴 근처 주민 400명을 검사한 결과, 3%의 사람에게서 항체가 있었다. 스필오버가 우리 모르게 지나가는 걸 보여주는 사례다.”

_______
‘포유류인플루엔자’는 없지 않나?

―지금까지 가장 위협적으로 느껴졌던 건 ‘조류인플루엔자’였다. 해외에서는 H5N1이나 H7N9과 같은 혈청형이 인간에게 감염된 적이 있다. 야생조류와 가금의 경우, 국내에서 2003년부터 빈발했다.
“조류인플루엔자라는 이름을 내가 싫어한다. ‘포유류’가 들어간 질병명을 들어본 적 있나? 이를테면, 돼지인플루엔자(신종플루)는 있어도, 포유류인플루엔자는 없잖아. 전 세계 조류가 1만1000종인데, 그걸 ‘조류인플루엔자’라고 지었다. 그간 우리나라의 기록으로만 보자면 이 바이러스는 야생 청둥오리와 흰뺨검둥오리, 원앙 등에서 발견되었다. 이들은 건강한 개체들에도 바이러스가 발견되는, 질병의 저항성을 가진 자연계 숙주다. 야생에서 이 바이러스는 물을 기반으로 해서 번져나간다. 그래서 물새류 배설물에서 주로 검출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중 고병원성 바이러스가 닭으로 넘어가면 거의 모든 닭이 죽는다. 그간 우리나라에서 조류인플루엔자에 감염되어 죽은 야생조류는 수리부엉이를 포함해 참매, 황조롱이, 새매, 왜가리 등 다양한 조류가 있다. 거의 모두 야외 감염으로 죽은 것이다. 네덜란드에서는 2016~17년 겨울, 매 11~39%가 이 병에 걸려 죽었다는 보고도 있다. 이들은 이 질병에 면역능력이 없는 것이며, 장기적으로 보균하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모든 조류종이 동일한 피해를 입는 것은 아니다.”

―이름을 잘못 지으면 방역 상의 혼선을 초래할 수 있겠다.
“수많은 조류종 중에서, 이를테면 야생의 제비 등 여름철새나 비둘기류에서 바이러스는 거의 검출되지 않고 있다. 즉, 이들은 바이러스에 대한 보균숙주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비둘기에서 바이러스가 발견됐다면? 난리가 났을 것이다. 당시 조류인플루엔자라는 이름 때문에 사람들이 모든 새를 적대시했다. 정부 정책은 국민이 가진 생각, 두려움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동물 보전 쪽에 무게를 두는 정부 부처, 환경단체의 목소리가 작아질 수밖에 없다.”

지난해 12월 동물권단체 ‘케어’ 등 동물단체가 아프리카돼지열병과 관련해 돼지 생매장 반대를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4월말까지 38만마리의 사육 돼지가 살처분됐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지난해 12월 동물권단체 ‘케어’ 등 동물단체가 아프리카돼지열병과 관련해 돼지 생매장 반대를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4월말까지 38만마리의 사육 돼지가 살처분됐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최근 들어 조류인플루엔자는 잠잠하다. 방역을 잘한 건가?
“바이러스가 많이 안 들어왔다고 보는 편이 맞다. 매년 여름 각지에서 온 철새들이 북극권에 모여서 번식한다. 따로 떨어져 번식하던 오리류는 새끼들이 어느 정도 성장하면 비행깃털을 한꺼번에 모두 떨어뜨린다. 깃갈이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날 수 없기에 잡히기 쉽다. 그래서 모두들 안전한 호수로 들어간다. 이때 1차적으로 모이게 되고 거기서 바이러스를 교환한다. 예를 들면 2005~16년까지 11년간 중국 칭하이 인근 호수에서는 번의 대형 조류인플루엔자가 발생한 바 있다. 가을이 되면 각각의 이동 경로를 통해 세계 각지로 흩어진다. 그런데 한국 같은 월동지로 오다가 잠시 들르는 정거장 지역이 있다. 과학자들이 시료를 채취해 병원성 바이러스가 있는지 본다. 북유럽과 중국 헤이룽장성 등이 그런 정거장인데, 고병원성 바이러스가 많이 검출되면 준비하라는 신호다. 최근 몇 년 동안 그쪽에서 큰 경보가 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조만간 또 고병원성 바이러스가 유입될 수 있는 것이다.”

―조류인플루엔자를 철새가 운반하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었다.
“‘그 먼 거리를 아픈 개체들이 어떻게 날아오겠냐’며 회의적인 의견이 있었다. 공장식 축산농장 등에서 토착화됐다는 주장도 나왔다. 나는 그때 성급하게 결론 내리지 말자고 했다. 그러면 또 정책에 혼선이 온다. 농축산부나 업계는 ‘우리는 방역을 잘했는데, 철새가 자꾸 가져온다’는 논리를 들이대고, 보전론자들은 ‘야생동물 탓하지 말라. 공장식 축산이 문제’라고 맞섰다. 그러나 야생철새에 대한 연구 결과가 축적되면서 2010년대 중반 (위의 설명 같은) 바이러스 확산 경로가 정설이 됐다.”

―아프리카돼지열병 방역에도 참여하고 있다고.
“지난해 9월부터 민간인통제선을 따라 경기도 파주에서 강원도 고성까지 횡으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나타나고 있다. 북한에선 이 병이 토착화됐다. 어떤 형태로든 북한에서 전파됐을 것이다. 가장 합리적인 추정은 홍수가 났을 때, 감염된 멧돼지 사체가 썩어서 북에서 남으로 하천을 따라 흘러들어왔을 가능성이다. 수인성 전염병이라는 말은 아니고, 하천이 (절단된 사체를 운반하는) 기계적 역할을 한 거로 본다. 냉장육에서도 생존하는 게 이 바이러스다.”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지도를 보여주면서) 이렇게 울타리를 쳐서 멧돼지의 남하 저지선을 구축하고 있다. 멧돼지가 사람처럼 신용카드 쓰고 핸드폰 차고 다니면 쉽게 막을 수 있겠지만 그럴 수도 없고… 멧돼지에 대해 연구한 게 없다. 멧돼지가 어디서 얼마나 사는지, 어떻게 행동하는지 모르는데, 어떻게 바이러스를 막나? 외국 연구 사례는 국내와 다른 게 너무 많다. 주로 벨기에, 체코 사례를 참고하는데, 거기는 평야 지대다. 국내에 멧돼지 연구자가 두세 명이나 될까?”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발견된 지역을 중심으로 울타리를 쳐서 바이러스의 남하를 저지한다. 지도를 보고 있는 김영준 실장.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발견된 지역을 중심으로 울타리를 쳐서 바이러스의 남하를 저지한다. 지도를 보고 있는 김영준 실장.
―국내의 생태계, 야생동물에 대한 연구가 너무 적다.
“우리가 사람의 질병을 치료할 때, 병원체만 보나? 거주지도 보고, 사회적 행동도 보고, 삶의 양식도 봐야 질병 확산을 막는 것 아닌가? 그런데 지금은 병원체만 쫓고 있다. 바이러스는 인간과 가축, 야생동물을 타고 돌아다닌다. 인간과 동물의 건강은 연결되어 있다. 야생동물 연구에 투자해야 감염병을 막을 수 있다.”

_______
위기가 오고 있다

―앞으로 이런 위기를 자주 겪을 것 같다.
“생태학 교과서에 케이(K)-선택, 아르(R)-선택 이론이 있다. 케이-선택종은 새끼를 적게 낳지만, 에너지를 쏟아 기른다. 세대가 길고 안정된 환경을 선호한다. 아르-선택종은 반대로 새끼를 많이 낳는 대신 보육은 최소로 하고 세대가 짧다. 환경 변화가 커도 잘 멸종하지 않는다. 케이-선택종이 코끼리, 영장류 같은 종이라면, 아르-선택종은 물고기, 곤충 같은 것들이다. 인간은 뭐라고 생각하나?

―케이-선택종?
“그렇다. 하지만 케이-선택종은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에 취약하다. 인구가 급증했지만, 우리는 기술혁신으로 어떻게든 피했다. 기후변화, 감염병 등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 앞으로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서천/글·사진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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