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철원에서 재두루미 한 쌍이 여름나기를 하는 모습이 국내서 처음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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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전에 우리나라를 떠났어야 할 재두루미 한 쌍이 철원 평야에서 포착됐다. 재두루미
한 마리가 국내서 여름을 난 일은 10여년 전 한차례 있었지만, 두 마리가 함께 남아있는 모습이 관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인 재두루미는 10월 중순경 철원, 연천, 파주, 한강하구에 찾아와 월동한 뒤 다음 해 3월 말 번식지인 러시아 아무르 강 유역 등지로 북상하는 겨울철새다. 그런데 지난 1일 재두루미 2마리가 아직도 번식지로 돌아가지 않고 있다는 제보가 접수됐다.
전춘기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철원군지회장이 재두루미가 오는 논을 가리키고 있다.
재두루미 부부가 여름 나기를 하고 있는 농경지 전경.
전춘기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철원군지회장이 처음 발견하고는 재두루미들이 곧 돌아가지 않을까 주의를 기울여 왔으나, 3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계속 남아있어 연락을 해온 것이다.
2일 새벽 6시 철원에 도착하니 철원 평야는 이미 모내기가 끝난 상태였다. 전춘기 지회장과 재두루미가 자주 찾는 논으로 향했다.
처음엔 재두루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으나 한 시간쯤 지나자 토교저수지 방향에서 재두루미 두 마리가 날아오르더니 우리가 서 있는 앞 논으로 내려앉았다.
지난 2010년 6월 경기도 고양시 구산동에서 관찰된 재두루미. 여름나기를 하는 재두루미가 발견된 국내 첫 사례다.
마음이 설렜다. 재두루미는 겨울에만 볼 수 있는 조류인데 녹음이 짙은 배경에 서 있으니 색다른 느낌이었다. 재두루미를 여름에 만난 것은 2010년 6월17일 경기도 고양시 구산동 농경지에서 1마리를 관찰한 이후 13년 만이다.
한차례 반가움이 지나가자 재두루미가 왜 번식지로 떠나지 않았는지 궁금했다. 비간섭거리를 두고 재두루미 곁으로 다가갔다. 사람을 경계하지 않는 눈치다. 오랜 관찰 경험으로 판단하기에 두 마리의 재두루미는 ‘부부’로 보였다. 재두루미는 한 마리와 짝을 맺고 평생을 동반자로 살아간다.
하루 종일 재두루미 부부를 관찰하며 그들의 상태를 살폈다. 사흘간 면밀히 살핀 결과, 암컷 재두루미의 오른쪽 날개가 크게 손상된 것을 알 수 있었다. 첫째부터 둘째, 셋째 날개깃이 상해 깃대가 드러나 있었다.
이런 상태로는 단거리 비행은 가능하지만 번식지로 향하는 2000㎞의 먼 여정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다행히 날개를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 뼈에는 이상이 없는 것으로 보였다.
암컷 재두루미의 오른쪽 첫째, 둘째, 셋째 날개깃이 크게 손상되었다.
수컷 재두루미(왼쪽)의 정상적인 날개깃과 암컷 재두루미(오른쪽)의 비정상적인 날개깃이 비교된다.
6월이면 번식지로 떠난 재두루미들이 이미 번식하고 있을 시기다. 혹시 우리나라에 남아 번식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번식의 흔적은 발견하지 못했다. 새들은 완전히 치유가 될 때까지 머물기로 작정한 모양이었다.
철원을 떠나지 않은 재두루미 부부는 정해 놓은 동선을 따라 먹이를 섭취하고 쉬는 공간도 두 군데 정도 마련해둔 것으로 보인다. 현지 상황에 따라 장소를 선택하며 정해 놓은 반경을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휴식을 취하면서도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날개깃을 다치는 불상사가 있었으니 더욱 경계에 신경을 쓰는 것이다.
동물이 상처를 입으면 자연스레 무리에서 외톨이가 된다. 재두루미도 한 짝과 평생을 살지만 상대를 잃게 되면 ‘재혼’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철원 평야에 남은 수컷 재두루미는 다친 암컷의 곁을 떠나지 않고 지키고 있는 것이다.
암컷 재두루미는 유난히 날개 손질과 날갯짓을 자주했다.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행동으로 보인다. 수컷 재두루미는 암컷 재두루미에게서 잠시도 눈을 떼지 않았는데 먹이도 함께 먹고, 휴식도 함께했다. 암컷의 상황을 알고 알뜰살뜰 간호하는 수컷의 모습은 새끼를 돌보는 것과 비슷해 보였으나 그보다 더한 지극정성의 애틋한 사랑이 느껴졌다.
주변에 농민들의 차량이 다가오자 재두루미 부부가 자리를 피한다.
기러기도 한번 짝을 맺으면 평생을 함께하고 부부 중 누군가 죽더라도 재혼 없이 혼자 살아간다. 간혹 기러기가 다쳐 번식지로 돌아가지 않은 가족과 부부가 목격되긴 했지만, 재두루미 부부가 이렇게 남아있는 사례는 국내서는 처음 있는 일이다.
사방이 훤히 트여있어 천적을 감시하기 수월하다.
두루미, 재두루미, 흑두루미는 먹이터와 잠자리를 공유하면서 천적의 위협을 막고, 천적이 침범하면 동료들에게 큰 소리로 알린 뒤 무리지어 방어한다. 동료 중에 다친 개체가 있으면 곁으로 다가가 살펴주고 힘이 되어주기도 한다. 그래도 불가항력일 때는 구하지 못함을 안타까워하는 행동도 보인다.
마음껏 기지개를 켜는 암컷 재두루미. 손상된 오른쪽 날개깃이 훤히 보인다.
암컷은 유난히 자주 날갯짓을 했는데 다친 날개의 치유를 위한 행동으로 보인다.
정상적으로 날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것이다. 왼쪽과 오른쪽의 날개깃이 비교돼 보인다.
재두루미 부부를 보고 있자니 오래된 기억이 떠올랐다. 2012년 1월 재두루미 새끼가 독극물로 사망하자 같이 독극물에 중독된 어미가 죽은 새끼 곁을 떠나지 않고 지키다가 구조된 적이 있다. 해독제와 영양제 등을 급히 투여해 응급처치를 했지만 상태가 악화돼 결국은 목숨을 잃었다. 재두루미의 가족애는 이렇게 유별나지만 부부의 사랑 또한 이토록 진정한 모습일 줄은 몰랐다.
수컷 재두루미가 날개를 마음껏 펼친다. 암컷은 수컷의 정상적인 날개가 부러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수컷의 지극한 정성은 날개 치유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미국 지질조사국 두루미 전문가들에 따르면, 두루미는 60여 가지 이상의 소리, 몸짓 언어를 사용한다. 다른 새들은 20여 가지, 원숭이는 30여 가지를 구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두루미 15종을 30년 동안 관찰한 이 연구자들은 두루미를 “인간을 제외하고는 척추동물 중에서 가장 복잡한 행동을 지닌다”고 평가했다. 두루미는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도 독자적인 행동을 보이며, 사생활이나 사적인 일을 즐기고 독립적인 성향을 지닌다.
암컷 재두루미는 깃털에 신경이 쓰이는지 시간이 나는 대로 자연 치유를 위해 본능적으로 깃털을 움직인다.
암컷과 거리가 생기자 수컷이 다급히 암컷 곁으로 다가간다.
재두루미의 이런 지극한 사랑은 처음 본다.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재두루미가 다친 이유는 무엇일까. 날개 상처로 추측해보면 전깃줄에 의한 사고라기보다 천적인 삵의 공격일 가능성이 커보였다. 삵이 해마다 두루미를 노리고 접근하는 모습이 목격됐으며, 그렇게 공격당해 죽는 두루미가 종종 발생하기 때문이다.
재두루미는 늘 같은 장소를 찾는 습성이 있다. 이 재두루미 부부도 이곳 농경지에서 지난해 겨울부터 월동을 한 것으로 추측된다. 암컷의 상처는 다른 재두루미들이 다시 월동을 위해 철원을 찾는 10월 하순에나 치유가 끝날 것으로 보인다. 재두루미 부부는 아마도 완치를 기다리며 이곳에서 여름을 날 것 같다. 이곳은 그들에게 검증된 안전한 장소이며 잠자리인 토교저수지도 가깝다.
쾌적하고 안정된 농경지에서 재두루미 부부가 무사히 여름 나기를 기대해 본다.
그나마 암컷 재두루미가 단거리 비행은 가능한 것으로 보여 다행이다. 이들의 여름나기를 지속적으로 관찰해야 할 것 같다. 다친 짝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곁을 지키는 재두루미의 행동에서 진정한 사랑을 발견한다.
글·사진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한겨레 환경생태웹진 ‘물바람숲’ 필자, 촬영 디렉터 이경희, 김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