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전국 전국일반

“폐광 땐 태백 ‘상상초월’ 영향 끼칠 듯”…인구 12만명→3만명대로

등록 2023-07-13 06:00수정 2023-07-13 10:23

막내리는 탄광시대 (하) _ ‘내년 폐광’ 태백시 대책 마련에 고심
2024년 대한석탄공사 장성광업소 폐광을 앞둔 태백 장성중앙시장 모습. 상가 창문 곳곳에 ‘가게와 물건 모두 팝니다’, ‘점포 세줍니다’ 등 매매·임대를 알리는 광고 문구가 붙어 있다. 폐광 소식이 전해진 상반기에만 15개 점포가 문을 닫았다. 박수혁 기자
2024년 대한석탄공사 장성광업소 폐광을 앞둔 태백 장성중앙시장 모습. 상가 창문 곳곳에 ‘가게와 물건 모두 팝니다’, ‘점포 세줍니다’ 등 매매·임대를 알리는 광고 문구가 붙어 있다. 폐광 소식이 전해진 상반기에만 15개 점포가 문을 닫았다. 박수혁 기자

“여기 시장 상인 모두 광업소만 바라보고 살았는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눈앞이 캄캄합니다.”

지난 6일 오전 강원도 태백시 장성동 장성중앙시장에서 만난 김양호(63)씨는 땅이 꺼져라 깊은 한숨부터 쉬었다. 김씨는 요즘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기 일쑤다. 내년이면 불과 50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장성광업소가 폐광하기 때문이다. 광업소가 사라진다는 것은 40년째 시장에서 두부와 채소 등 각종 생필품을 팔아 생계를 꾸려온 그에게 청천벽력 같은 일이다. 김씨는 “광업소 직원들은 퇴직금이라도 받아 떠나면 그만이지만 남겨진 주민들은 아무런 대책이 없다. 벌써 폐광 소식을 듣고 떠나는 상인들도 속출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시장조합에 알아보니, 장성중앙시장 점포 115곳 가운데 현재 운영 중인 곳은 45곳뿐이었다. 지난해만 해도 60개 점포가 있었는데 폐광 소식이 전해진 상반기에만 15개 점포가 문을 닫았다.

2024년 대한석탄공사 장성광업소 폐광을 앞둔 태백 장성중앙시장에서 상인 김양호씨가 자신의 가게 옆으로 텅 빈 상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상가 창문 곳곳에 ‘가게와 물건 모두 팝니다’, ‘점포 세줍니다’ 등 매매·임대를 알리는 광고 문구가 붙어 있다. 폐광 소식이 전해진 상반기에만 15개 점포가 문을 닫았다. 박수혁 기자
2024년 대한석탄공사 장성광업소 폐광을 앞둔 태백 장성중앙시장에서 상인 김양호씨가 자신의 가게 옆으로 텅 빈 상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상가 창문 곳곳에 ‘가게와 물건 모두 팝니다’, ‘점포 세줍니다’ 등 매매·임대를 알리는 광고 문구가 붙어 있다. 폐광 소식이 전해진 상반기에만 15개 점포가 문을 닫았다. 박수혁 기자

12만명 인구가 3만명대로 붕괴

대한석탄공사 장성광업소 폐광이 내년으로 현실화되면서 장성동뿐 아니라 태백시 전체에 비상이 걸렸다. 이는 그만큼 장성광업소가 태백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2021년 태백시 연구용역 결과를 보면, 장성광업소 폐광 시 지역경제 피해 규모는 2359억원에 이른다. 이는 태백시 지역내총생산(2016년 기준) 9725억원의 24.2%에 이른다. 직원 772명(협력업체 포함)을 기준으로 추산한 장성광업소 관련 인구만 1500명 규모로 추정된다.

광업소 폐광에 따른 위기는 1년 뒤 ‘닥쳐올 미래’가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다. 내년 상반기 폐광을 앞둔 광업소는 지난달 말에만 120여명이 정년·명예퇴직을 하는 등 벌써 대규모 인력 감축이 진행되고 있다. 30년째 광업소에서 근무 중인 문윤기(56)씨는 “광업소는 장성동뿐 아니라 태백 전체에서 가장 큰 기업이다. 내년 폐광되면 태백시에 미치는 영향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지역에 마땅한 일자리가 없으니 퇴직한 젊은 직원들은 일자리를 찾아 태백을 떠날 수밖에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대한석탄공사 장성광업소 철암선탄장 모습. 장성광업소에서 캔 석탄은 철암선탄장에서 선별 작업을 거쳐 연탄공장 등에 공급되는데 내년 폐광을 앞두고 한산한 모습이다. 박수혁 기자
대한석탄공사 장성광업소 철암선탄장 모습. 장성광업소에서 캔 석탄은 철암선탄장에서 선별 작업을 거쳐 연탄공장 등에 공급되는데 내년 폐광을 앞두고 한산한 모습이다. 박수혁 기자

태백시의 절박함은 인구 변화를 보면 알 수 있다. 한때 태백은 전국 석탄 생산량의 30%를 차지하는 등 급격히 인구가 늘면서 1981년 당시 삼척군 장성읍과 황지읍을 더해 태백시라는 지자체가 새롭게 생겨났을 정도였다. 당시 태백시 인구는 11만4천명에 이르렀고, 지역의 탄광이 40곳이 넘으면서 정점에 달했던 1987년에는 12만명을 넘어서기도 했다. 하지만 1987년 석탄산업 합리화 조처로 태백시는 큰 타격을 입었다. 1989년 10만5천명이던 인구는 탄광 폐쇄가 본격화되자 1994년 6만8129명까지 줄더니 지난해 8월에는 3만9940명으로 인구 4만명 선까지 붕괴했다. 태백시 현재(5월 기준) 인구는 3만8929명뿐이다. 이는 전국 시 단위 지역 가운데 가장 인구가 적을 뿐 아니라 인근 평창이나 홍천 등 군 단위 지역보다 인구가 적다.

인구 감소를 넘어 ‘붕괴’ 사태에 직면한 태백시는 광업소를 대체할 기반 산업 마련에 목을 매고 있다. 대표적으로 다른 지역에서는 기피 시설로 여기는 교도소까지 유치에 나섰다. 태백 교도소는 2025년 착공해 2028년 준공 예정인데, 교정 공무원 500명과 부양가족 등 1500명 이상의 인구 유입 효과가 있을 것으로 태백시는 기대하고 있다. 5년 전 귀금속 제련에 따른 환경오염 우려로 무산됐던 귀금속산업단지를 유치하자는 주장도 제기된다. 장석태 태백 교정시설 추진위원장은 “기피 시설을 왜 유치하느냐는 반발도 있었지만 당장 눈앞에 닥친 지역소멸이 더 큰 걱정이다.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다. 이대로 두면 3만명 붕괴도 시간문제다. 지금은 생존을 위해 무엇이든 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강원랜드가 들어선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의 구공탄시장 모습. 장날인데도 사람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한산하다. 시장 입구에는 ‘대한민국 산업전사 우리 아버지는 마지막 광부였다’라는 글자가 붙어 있다. 박수혁 기자
강원랜드가 들어선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의 구공탄시장 모습. 장날인데도 사람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한산하다. 시장 입구에는 ‘대한민국 산업전사 우리 아버지는 마지막 광부였다’라는 글자가 붙어 있다. 박수혁 기자

폐광도시에 3조3천억원 투입됐는데

태백시 인근 지자체인 정선군은 내년에 닥칠 태백의 미래를 20여년 전에 이미 겪었다. 정선 주민들은 석탄산업 합리화 조처로 지역 탄광이 차례로 문을 닫자 주민들이 들고일어나 횃불시위와 등교 거부, 삭발, 단식 등 투쟁을 벌였다. 다행히 1995년 정부가 폐광지역 개발 지원에 관한 특별법 제정 요구를 받아들이면서 2000년 정선에는 국내에서 유일한 내국인 카지노인 강원랜드가 들어섰다. 강원랜드는 고용창출(정규직·협력업체 포함) 효과만 5600여명에 이르는 폐광지역 대표 기업이다.

폐특법이 제정되고 강원랜드가 생기면서 1997년부터 2021년까지 20여년 동안 폐광지역 대체산업 육성 등에 투자된 공공자금만 3조2995억원에 이른다. 강원랜드 카지노에서 나온 폐광기금 1조4331억원과 탄광지역개발사업비 7112억원, 폐광지역진흥비 5406억원 등이다. 하지만 그나마 카지노가 있는 정선 강원랜드를 뺀 태백 오투리조트(4403억원)와 영월 동강시스타(1538억원), 삼척 하이원추추파크(753억원) 등 폐광지역 대체산업으로 추진된 사업들은 모조리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오투리조트는 적자 누적으로 법정관리에 들어간 뒤 민간기업에 매각됐고, 동강시스타도 계속된 적자로 기업회생 절차에 들어간 뒤 민간에 팔렸다. 하이원추추파크도 개장 이후 현재까지 적자 운영 중이다. 천문학적인 금액이 투입된 각종 지원사업이 펼쳐졌지만 폐광지역의 쇠락을 막기에는 역부족인 셈이었다.

황인욱 정선지역사회연구소장은 “폐특법은 카지노를 설립해 거기서 나오는 기금으로 다양한 대체산업을 해보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폐광지역 대부분이 교통·물류·인력 등 여러 측면에서 불리하다 보니 기업을 유치하거나 새로운 산업을 일으키는 데 한계가 있었다. 그렇다 보니 카지노가 대체산업 역할을 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동안 도로·관광지 등 인프라 구축 중심으로 투자했다면, 이제는 주거·의료·교육 등 지역 주민 삶의 질 향상에 집중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문경시는 지난해 9월 문경에코월드 석탄박물관 광부사택촌에서 ‘랄라페스티벌’을 열었다. 문경시 제공
문경시는 지난해 9월 문경에코월드 석탄박물관 광부사택촌에서 ‘랄라페스티벌’을 열었다. 문경시 제공

30년 전 폐광 겪은 문경의 현재는?

1926년 광업권을 얻어 남한 최초의 탄광으로 유명했던 경북 문경의 문경탄광 일대도 쇠락의 길을 걷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1974년 문경은 인구 16만명을 넘기며 전성기를 맞았다. 당시 문경에는 크고 작은 민영 탄광 60여개가 성황을 이뤘고, 문경에서 생산된 석탄은 국내 석탄 소비량의 20%를 담당할 정도였다. 문경군의 한 행정구역에 불과했던 점촌읍은 인구가 늘자 1986년 점촌시로 승격하면서 명성을 떨쳤다. 하지만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으로 1993년 문경탄광, 1994년 은성탄광이 연이어 문을 닫은 뒤, 점촌시는 문경군에 통합돼 현재의 문경시가 되면서 지도에서 사라졌다. 문경시는 점촌시까지 흡수했지만 현재 인구(6월 기준)는 6만9524명으로 지난 2월 7만명 선이 무너졌다.

지난 6일 찾은 경북 문경시 점촌동 호서로 일대는 지나는 사람 없이 한산했다. 김규현 기자
지난 6일 찾은 경북 문경시 점촌동 호서로 일대는 지나는 사람 없이 한산했다. 김규현 기자

문경시는 점촌의 옛 명성을 되찾는 데 주력하고 있다. 2019년 국토교통부 도시재생사업에 선정돼 받은 예산 280억원을 들여 ‘점촌시(C)!! 리마인드(RE:Mind) 1975’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1975년 점촌의 화려했던 시간을 이어간다는 의미다. 문경시는 점촌 원도심에 광부의 거리, 광부갤러리 등을 조성할 예정이다.

경북 문경시 점촌동 호서로 삼거리 앞 ‘고려상회’ 모습. 김규현 기자
경북 문경시 점촌동 호서로 삼거리 앞 ‘고려상회’ 모습. 김규현 기자

하지만 주민들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하다. 김용관씨는 “정작 광부들은 다 빠져나가고 없는데 ‘광부의 거리’라고 붙이고 활성화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폐광하기 전 사람들이 빠져나가기 전에 그들을 잡을 수 있는 획기적인 계획이 있었더라면 이렇게까지 도시가 쇠락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푸념했다.

주민 안광진(64)씨는 주민들을 위한 ‘지속가능한’ 도시재생을 요구했다. 안씨는 “주민들이 대부분 고령이기 때문에 이런 사업에 관심이 없는 게 사실이다. 이왕 활성화하기로 한 것이니 예산에 맞춰서 일회성으로 끝나는 사업보다 지속가능한 사업으로 동네가 활력을 되찾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수혁 김규현 기자 psh@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전국 많이 보는 기사

“천억짜리 세운상가 공중보행로 없애려고 또 세금, 헛짓거리지” 1.

“천억짜리 세운상가 공중보행로 없애려고 또 세금, 헛짓거리지”

[영상] “지하철역 식사, 세 가정 근무”…필리핀 가사관리사 호소 2.

[영상] “지하철역 식사, 세 가정 근무”…필리핀 가사관리사 호소

“화투놀이 불화 있었다”…‘봉화 경로당 농약’ 용의자는 숨진 80대 3.

“화투놀이 불화 있었다”…‘봉화 경로당 농약’ 용의자는 숨진 80대

“북으로 돌아갈래” 버스 훔쳐 월북 시도한 탈북민 구속영장 4.

“북으로 돌아갈래” 버스 훔쳐 월북 시도한 탈북민 구속영장

‘뉴욕타임스’에 보도될만큼 성공적인 제천시 고려인 이주 정책 5.

‘뉴욕타임스’에 보도될만큼 성공적인 제천시 고려인 이주 정책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