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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구한 역사’ 송현동 땅…서울시는 왜 공원을 만들려 할까요?

등록 2020-06-01 15:36수정 2020-06-01 23:19

[송경화의 올망졸망]
서울시 종로구 송현동 땅. 서울시 제공
서울시 종로구 송현동 땅. 서울시 제공
서울 종로구 송현동 48-9에는 3만7141㎡의 공터가 있습니다. 경복궁 인근에 서울광장의 3배 가량 되는 알짜 땅이 빈 터로 남아있는 것인데요. 소유자는 대한항공입니다. 최근 서울시와 대한항공이 이 땅을 두고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대한항공은 이 땅을 올해 안에 제3자에 매각하겠다는 입장인 반면 서울시는 “내년에 우리가 사겠다”며 이 땅을 문화공원으로 만들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는데요.

대한항공은 서울시의 ‘공원화’ 선언으로 매각 가격이 떨어질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고 서울시는 공공을 위한 공원화 계획을 포기할 수 없어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서울시는 왜 이 땅의 공원화를 고집하는 걸까요?

일단 이 땅의 위치와 역사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일단 위치를 보면요. 이 땅은 경복궁, 인사동, 광화문광장, 북촌 등 서울의 대표적 명소들로 둘러싸여있습니다. 면적은 덕수궁 터의 3분의 2 정도 되는데요. 서울 시내 한복판에 단일 부지로 이런 땅이 남아있는 경우는 드물죠.

서울시 종로구 송현동 땅 위치. 서울시 제공
서울시 종로구 송현동 땅 위치. 서울시 제공
주변 환경 탓에 규제가 많은 땅이기도 합니다. 1종일반주거지역이자 학교상대보호구역이어서 단독주택 등을 제외하곤 지을 수 있는 건물에 제약이 많고 높이론 3층(12m)까지 밖에 짓지 못합니다. 주위에 덕성여고, 덕성여중 등 학교들이 있어 대규모 호텔 등을 지을 수도 없고요.

삼성생명이 1400억원에 이 땅을 1997년 매입했고 대한항공이 2008년 2900억원에 삼성생명으로부터 땅을 매입했지만 개발하지 못하고 계속 공터로 남아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삼성생명은 미술관을 만들려 했지만 규제상 벽에 부딪혔고요. 이후 대한항공은 한옥호텔을 지으려 행정소송까지 했는데 대법원에서도 “이 곳엔 호텔을 지을 수 없다”는 판결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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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부마 궁궐서 우국지사 거주지로

역사성은 좀 더 복잡합니다. 1780년 한양전도(지도)를 보면 이 곳은 소나무숲으로 경복궁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순조땐 부마(임금의 사위) 창녕위 김병주의 궁이 여기에 지어졌습니다. 순조 둘째 딸 복온공주의 남편이죠. 조선 말에는 이들의 손자이자 영의정을 지낸 김석진이 여기에 살았습니다. 그는 1910년 한일합병에 항거해 아편을 먹고 자결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일제 강점기 때 이 곳은 친일파 윤덕영, 윤택영 형제의 집터로 사용됐습니다. 윤덕영은 조선총독부 중추원 고문으로, 1910년 한일합병때 순종의 옥새를 날인한 전권위임장을 이완용에게 건네는 것을 주도한 인물로 꼽힙니다. 1920년엔 일제 수탈에 사용된 조선식산은행의 사택이 여기에 들어섰고요.

해방 뒤엔 어찌됐을까요? 미국이 이 땅을 썼습니다. 미국 대사관 직원들 숙소 등으로 사용한 것이죠. 1997년 삼성생명이 국방부로부터 이 땅을 매입하면서 민간 소유로 넘어왔습니다. 그 뒤로 23년간 공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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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역사성 감안…시민에게 돌려줘야”

이처럼 이 땅은 조선시대 왕족의 궁에서 조선 말 우국지사의 집, 일제 강점기 친일파의 집을 거쳐 해방 뒤 미국 대사관 숙소가 들어서기까지 우리 역사의 격변기를 고스란히 겪었습니다. 서울시는 역사적인 이 곳이 공공의 공간이 돼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경복궁 옆이라는 입지 여건과 왕족, 친일파, 미국 등을 거친 역사성을 감안할 때 호텔 등 상업시설은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서울시 관계자는 “이제는 비로소 시민들에게 이 땅을 돌려줄 때가 됐고 지난 3월 시민 3000여명에게 여론조사를 해보니 공원으로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며 “이 땅의 공공성을 지켜내기 위해서라도 다시 민간에 넘기지 않고 시민들이 역사 문화를 느낄 수 있는 문화공원으로 만들겠다는 시의 의지가 강하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시는 이 땅의 용도를 문화공원으로 바꾸는 작업을 진행중입니다. 지난달 28일 도시·건축공동위원회에 공원 지정에 대한 자문을 요청했고 위원회도 찬성 입장을 밝혔습니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한진그룹 제공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한진그룹 제공
대한항공은 반발합니다. 2900억원에 매입한 땅을 수익 없이 12년간 들고만 있었는데, 시에서 공원으로 만들겠다고 나서면 향후 개발 이익이 담보되지 않는 상황에서 누가 높은 가격에 사려하겠냐는 것입니다. 특히 대한항공의 요즘 상황이 많이 안좋죠. 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지난달 28일 대한항공에 1조2000억원을 지원하면서 내년 말까지 2조원 가량 자본을 확충하라고 요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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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성 위기 대한항공 “연내 최고가 매각”

송현동 땅의 공시자가는 지난해 기준 3100억원 가량인데요. 공시지가의 1.5~2배를 시세로 보는 점을 감안하면 5000억~6000억원 대에 이를 것으로 보입니다. 대한항공은 올해 안에 하루라도 빨리 이 땅을 팔겠다는 입장인데, 서울시는 내년 하반기에야 매입이 가능하다는 계획입니다. 대한항공은 입찰을 통한 최고가 매각을 희망하는 가운데 서울시는 감정평가를 통해 적정한 가격을 책정할 계획입니다. 시점이나 가격 등에 입장 차이가 크죠.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은 지난달 28일 서울시 외에 다른 매수자가 나타나지 않을 경우 “계속 갖고 있을 것 같다”는 입장을 밝혔는데요. 이에 서울시 관계자는 “공원 결정 뒤 시는 소유주와 보상 협의를 하는데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행정소송 등을 통해 최종적으로 수용 절차를 밟을 수 있다”며 “도로와 같은 개념”이라고 했습니다. 이 땅은 결국 시의 계획대로 공공의 공원이 될 수 있을까요? 문화공원으로 만드는 것, 어떻게 보시나요?

송경화 기자 freehw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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