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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우탄 산드라·갠지스강처럼…남방큰돌고래도 ‘인격체’ 될까

등록 2023-08-14 05:00수정 2023-08-14 09:37

제주 연안을 유영하는 제주남방큰돌고래 무리.한겨레 자료사진
제주 연안을 유영하는 제주남방큰돌고래 무리.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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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검고 거친 현무암 너럭바위가 펼쳐진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신도2리 해안을 찾았다. 키 작은 순비기나무가 현무암 돌 틈 사이에 뿌리를 박고 여름 햇살을 받아내고 있었다. 오후 5시30분, 승용차 10여대가 해안도로에 멈춰 섰다. 차에서 내린 관광객들이 잔물결을 일으키며 황금빛으로 변해가는 바다를 바라봤다.

대정읍 영락리에서 무릉리를 거쳐 신도리에 이르는 해안도로에서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나온 제주남방큰돌고래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당연히 돌고래를 구경하려는 관광객들도 많이 온다. 이날 오후 이곳을 찾은 이들 역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나온 그 돌고래를 보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이었다.

수족관 속 ‘귀여운 돌고래’로 인식되던 남방큰돌고래에 대한 관심은 2011년 환경단체 ‘핫핑크돌핀스’가 돌고래쇼 중단을 요구하는 운동을 펼친 것을 계기로 시작됐다. 2013년 제돌이와 춘삼이, 삼팔이를 시작으로 지난해 8월까지 남방큰돌고래 8마리가 방사되면서 국민적 관심을 모았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2019년 7월 남방큰돌고래를 적색목록상 ‘준위협종’(취약종의 전 단계)으로 분류했다. 남방큰돌고래는 제주도 연안의 최상위 포식자로 현재 110~120마리 정도가 서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남방큰돌고래가 직면한 현실이 밝지만은 않다. 해양 쓰레기와 관광선 운항, 해상풍력발전단지 확대 등 남방큰돌고래의 서식 환경을 위협하는 요인들이 빠르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뜻있는 이들을 중심으로 남방큰돌고래를 보호하기 위해 ‘생태법인’ 제도를 도입하자는 움직임이 꿈틀대는 이유다.

생태법인은 ‘자연의 권리’에서 나온 개념으로, 기업에 법인격을 부여하는 것처럼 생태적 가치가 있는 동물이나 강, 호수 등의 자연에 법적 권리를 주는 것이다. ‘자연의 권리’ 운동은 미국의 크리스토퍼 스톤 교수가 1972년 “나무와 강, 대양과 같은 자연은 그 자체로서 근본적인 법적 권리를 가진다”고 주장하면서 본격화했다.

제주 서귀포시 대정 앞바다에서 남방큰돌고래들이 헤엄치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제주 서귀포시 대정 앞바다에서 남방큰돌고래들이 헤엄치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실제 외국에서는 2010년대를 전후해 인간에 의한 오염과 훼손 등으로부터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 헌법, 법률, 조례, 판례 등을 통해 강이나 동물 등 자연에 법인격을 주는 추세이다. 김선희 헌법재판연구원 책임연구관이 지난해 발표한 ‘자연의 권리에 관한 비교법적 연구’를 보면, 에콰도르는 2008년 헌법에 세계 최초로 ‘자연의 권리’를 명문화해 “자연은 헌법이 자연을 위해 인정한 기본권의 주체가 된다”고 밝혔고, 볼리비아는 자연의 권리를 존중하는 ‘어머니의 대지법’(2010)을 제정했다.

2014년 12월에는 아르헨티나 법원이 동물원에 갇힌 오랑우탄 ‘산드라’를 ‘비인간 인격체’(non-human person)로 인정했다. 콜롬비아에서는 2016년 아트라토강, 2018년에는 아마존 전체에 대한 법인격이 부여됐다. 2017년 3월엔 뉴질랜드가 법 제정을 통해 왕거누이강에 법인격을 주고, 원주민과 정부가 지명하는 대표 1명씩을 후견인으로 두도록 했다. 같은 시기 인도 우타라칸드주 고등법원은 갠지스강에 법인격을 부여했다. 미국의 클래머스강(2019)과 캐나다의 매그파이강(2021)에도 원주민들이 법인격을 부여했다.

제주 서귀포시 대정 앞바다에서 남방큰돌고래들이 헤엄치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제주 서귀포시 대정 앞바다에서 남방큰돌고래들이 헤엄치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국내에서 동물 등에 생태법인 지위를 부여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수년 전부터 생태법인 제도화에 대해 관심을 가져온 진희종 제주대 강사는 “지구가 직면한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가 바뀌어야 한다. 생태법인 도입은 인간이 자연을 이용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공존의 관계로 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방자치단체의 태도도 적극적이다. 앞서 오영훈 제주지사는 지난해 10월6일 취임 100일 도민보고회에서 “생태법인 제도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제주도는 남방큰돌고래를 보호하기 위해 지난 3월 실무위원회(위원장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를 만들었다. 지난 2일 열린 실무위원회 세번째 회의에선 법인격 부여를 위해 제주특별법을 개정하거나 개별법을 제정해 법적 근거를 마련하자는 안을 논의했다. 강민철 제주도 특별자치제도추진단장은 “올해 안에 생태법인 제도화를 위한 제주특별법 개정안을 마련해 공론화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남방큰돌고래를 보호해야 한다는 데 여야 모두 반대하지 않는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제주특별법 개정안을 여야가 공동으로 발의하자는 아이디어도 그래서 나온다.

김익태 관광학 박사는 “생태법인 도입 논의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인식과 태도를 근본적으로 전환해보자는 시도이다. 하지만 인식과 태도의 전환은 쉽지 않기 때문에 우리에게 친숙한 남방큰돌고래를 통해 첫걸음을 떼는 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최재천 교수는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고, 그 가운데 하나가 돌고래를 생태법인으로 만드는 것”이라며 “10년 전 제돌이를 제주 바다에 돌려보낸 것은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남방큰돌고래한테 법인격을 부여하게 된다면 자연과 인간의 관계가 또 한 단계 상당한 도약의 계기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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