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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세월호 그날부터 3년여…현장서 겪은 ‘참사의 얼굴’ 일기로 적다

등록 2022-04-11 18:41수정 2022-04-12 02:33

세월호 구술증언록 참여 두 교수 <고잔동 일기> 출간
[짬] 4·16기억저장소 운영위원 이현정·김익한 교수

8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lt;고잔동 일기&gt;를 함께 낸 이현정(왼쪽) 김익한 교수가 책을 들고 사진을 찍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8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고잔동 일기>를 함께 낸 이현정(왼쪽) 김익한 교수가 책을 들고 사진을 찍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고잔동 일기>(가능성들 펴냄).

세월호 참사에 대한 기록을 모으고 관리하는 비영리기관인 ‘4·16기억저장소’(소장 이지성) 운영위원 이현정 서울대 인류학과 교수와 김익한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최근 함께 낸 책이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2014년 4월16일부터 약 3년 동안 두 사람이 써내려간 일기를 모았다. 두 저자는 참사 초기부터 261명의 단원고 학생과 교사를 잃은 안산으로 가서 4·16참사와 그 희생자에 대한 기록을 모으는 데 힘을 모았다. 2년 전 완간한 100권 분량의 세월호 구술증언록 <그날을 말한다>는 두 사람이 다른 활동가들과 함께 6년 협업한 결과물이다.

이 증언록 발간 책임자였던 이 교수는 지난해부터 안산온마음센터(옛 안산정신건강트라우마센터) 자문위원장도 겸하고 있다. 또 ‘의료인류학’ 전공을 살려 <세월호 사건의 인류학>(가제)이라는 책도 집필 중이다. 지금은 세월호 유가족이 주축인 4·16기억저장소를 단원고 근처 고잔동에서 처음 시작했던 김 교수는 참사 이후 오랜 기간 유가족과 밥을 나누거나 노래를 함께 부르며 그 옆을 지켜왔다.

“참사 뒤 2~3년은 일주일에 두세 번, 그 뒤에는 2018년까지 최소 일주일에 한 번은 안산에 간 것 같아요. 참사 1년 뒤 둘러보니 안산에 남은 교수는 김 교수와 저 둘이더군요. 교수와 지식인 시각에서 (안산) 현장에서 직접 보고 경험한 것을 날것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어요.”(이현정) “다른 사람들은 알기 힘든 현장의 구체적인 모습을 남기고 싶었죠. 예컨대 ‘아이를 잃어 슬프다’고만 생각하는 그 세월호 유가족의 슬픔이 구체적으로 뭔지 영화처럼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럴 때 유가족들 아픔에 다가설 수 있다고 생각했죠.”(김익한)

지난 8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두 교수에게 왜 사적인 기록, 일기를 책으로 냈느냐고 하자 나온 답이다. 둘은 어릴 때부터 꾸준히 일기를 써왔단다.

이 말대로 책에는 참사 이후 3년 동안 두 사람이 안산에서 마주한 아픔과 상처 그리고 절망이 고스란히 담겼다. 김 교수는 2015년 9월23일 일기에, 단원고 교실 존치 문제로 열린 학부모총회 자리에 아이가 세상에 없다는 이유로 입장조차 거부된 유가족의 눈물을 보면서 “인간이 할 짓이 아니다…”고 분노의 감정을 쏟았다. 이 교수는 2015년 5월27일 일기에서 세월호 유족과 찰흙 공예를 하며 왈칵 눈물이 고였던 순간을 드러냈다. “호성 엄마의 찰흙 초가집에 지붕이 없어요. 이유를 물으니 배 안에 한참 갇혀 있었던 호성이가 늘 탁 트인 하늘을 볼 수 있도록 지붕을 뚫었다고 하더군요.”

두 사람이 교수나 의료진 등 전문가 집단과 진보적인 사회단체 활동가들에게 느낀 실망감도 담겼다. 이 교수는 2014년 9월20일 일기에서 자신이 안산에서 만난 사회복지사 상당수는 청와대 쪽에 진상 조사를 요구하며 행동에 나선 유가족 태도를 지지했지만 정신과 전문의 등 의료진은 유가족의 이런 선택을 아이를 잃은 충격의 증상으로만 보려 한다고 썼다.

8주기 맞아 ‘고잔동 일기’ 함께 펴내
매주 2~3회 안산에서 유가족과 함께
“1년 뒤 교수로는 둘만 남아 지금껏”
6주기 때 구술증언록 100권도 협업

“진보 지식인·국가의 민낯 확인”
“현장에서 목소리 모으는 게 중요”

처음 안산에 갈 때 세월호와 같은 사회적 참사를 정부와 전문가들이 어떻게 다루는지 인류학자로서 관찰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는 이 교수에게 어떤 답을 얻었는지 물었다. “전문가들의 경직성이 우선 눈에 띄더군요. 자신들의 지식 체계 안에서 이해하고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라면 그 지식 체계를 넘어 다른 것을 시도하는 창발성이 필요한데 그게 안 보였어요. 의료진은 세월호 유가족을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 대상으로만 보고, 왜 이들이 치료받기보다 싸우려 하는지 그 이유는 보지 않으려고 했죠. 그걸 알아야 유가족 고통도 줄일 수 있을 텐데요. 다른 하나는 지식인들이 정치 안에만 머문다는 거죠. 일반 시민들보다도 용기 있게 소신을 말하지 못해요. 아마 그들이 가진 게 많아서겠죠. 세월호 참사로 지식인과 학자에 대한 제 생각이 와르르 무너졌어요. 그 전에는 저를 포함해 교수나 지식인 집단이 사회에 기여한다는 자부심이 있었죠.” 김 교수는 진보 지식인에 대한 불신의 감정이 더 커졌다고 했다. “많은 진보 학자나 활동가들이 ‘안전 사회’나 ‘자주 교육’과 같은 지향을 추상적으로만 말하지 현장에서 유가족과 함께하려고는 하지 않더군요. 유가족을 지도하려는 모습도 보였고요.”

김익한 교수.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김익한 교수.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둘은 “유가족들이 문재인 정부에 기대를 많이 했지만 진상 규명 등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가 “세상은 아주 장기적인 변동을 빼고는 변하지 않는다. 세월호를 겪으며 세상을 비관적으로 바라보게 됐다”고 토로한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아픔과 낙담의 시간에서도 혹 얻은 게 있다면 뭐냐고 묻자 김 교수는 “진짜 운동은 현장에서 사람들과 함께하며 생활방식을 조금씩 바꿔나가는 것임을 깨달은 점과, 용기 내어 내 이야기를 세상에 할 수 있게 된 점”이라고 답했다. “안산에서 유가족의 삶에 나타난 문제를 공유하고 함께 풀어가려고 실천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김 교수는 그 예를 하나 들었다. “세월호 희생자인 수현군 아버지 박종대씨가 2년 전 세월호 자료를 모아 1100쪽이 넘는 책 <4·16 세월호 사건 기록연구-의혹과 진실>을 냈어요. 수현 아버지가 책을 쓰겠다고 해서 이 교수와 제가 거의 1년 동안 매주 그분 집을 찾아 책쓰기에 대해 이런저런 조언을 했어요. 마치 박사 논문 지도하듯이요.“

이현정 교수.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이현정 교수.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이 교수는 참사 이후 영화 <트루먼쇼>를 떠올렸단다. “열심히 살다 우연히 세월호를 만나, 제가 그동안 살았던 곳은 꾸며진 스튜디오에 불과하고 그 바깥에 진짜 세상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할까요. 충격이었죠.” 그가 말하는 스튜디오 바깥세상이란? “세월호 참사 뒤 국가는 아이를 잃고 힘겨워하는 유가족에게 거짓 정보를 흘리고 회유와 협박까지 했어요. 국가의 민낯을 본 거죠.” 덧붙였다. “세월호 이후 국가에 대한 환상이 깨졌어요. 국가가 만약 자본주의 시장 질서에 반한다고 판단하면 국민 안전을 지키는 그 어떤 정책도 절대 취하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렀죠.”

지난 8년의 경험으로 대의제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감도 커졌다는 이 교수는 이런 말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거대 국가에 기대지 말고 작은 단위로 내려와 삼삼오오 목소리를 내는 게 중요해요. 자기 주변의 삶에서 그 영역을 만들어야죠. 또 법과 제도의 논리에만 매몰되지 말고 그 영역 밖의 다른 가능성도 찾아야죠.”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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