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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책에서 나온 수익 조건없이 나눠 ‘우리’ 잇고자 해요”

등록 2023-04-03 19:02수정 2023-04-04 02:34

[짬] 공익서점 ‘책방이음’ 조진석 대표

조진석 대표는 2010년부터 공익서점 ‘책방이음’을 맡아 2019년 폐업과 2021년 재개업의 우여곡절을 이겨내고 연구자 후원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조진석 대표는 2010년부터 공익서점 ‘책방이음’을 맡아 2019년 폐업과 2021년 재개업의 우여곡절을 이겨내고 연구자 후원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동네책방 붐’이라지만 책방 운영은 쉽지 않은 일이다. 도무지 수익이 나지 않아 끝내 문을 닫는 안타까운 사연도 많다. 이런 와중에도 연구자를 지원하는 등 ‘후원’을 꾸준히 해온 책방이 있다. “책으로 번 돈은 책을 쓰는 저자와 책을 읽는 독자에게 쓰여야 한다”는 철학으로 ‘공익서점’을 표방하고 있는 ‘책방이음’이다.

책방이음은 2014년부터 해마다 연구자를 지원하는 장학사업을 벌여왔고, 올해에도 ‘박사학위(청구) 논문 집필 연구자 도서지원 사업’의 신청을 받았다. 논문을 집필 중인 박사과정 수료 연구자에게 최대 2년 동안 매달 10만원(연간 120만원) 안팎의 책을 무상으로 지원해주는 사업이다.

지난달 24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 사옥에서 만난 조진석 책방이음 대표는 “공익서점인 책방이음의 정체성에 한때 유학을 준비했던 개인적 경험까지 겹쳐” 이런 사업을 펴게 됐다고 말했다.

2014년부터 박사 논문 집필자 지원
2019년부터 매월 10만원 도서 후원
베트남·시리아 유학생 등 15명 혜택
학위 받으면 ‘한달 휴식’·발표 기회

“고 김종철 선생 주신 도움이 씨앗”
서점 후원인제로 지속가능 ‘기대’

서울 종로구 창신동 ‘뭐든지 책방’ 안에서 온라인 판매 만으로 책방이음을 운영중인 조진석 대표.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서울 종로구 창신동 ‘뭐든지 책방’ 안에서 온라인 판매 만으로 책방이음을 운영중인 조진석 대표.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책방이음의 역사는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베트남전쟁 피해자 지원활동 등을 하는 시민단체 ‘나와우리’에서 일하던 조 대표는, 그때 서울 대학로에서 개인이 운영하던 책방 ‘이음아트’가 문을 닫게 되자 “공적 성격을 지닌 시민단체가 운영해보자” 아이디어를 냈다. 그렇게 ‘나와우리’가 책방을 인수해 책방과 동거하는 ‘공익서점’ 모델이 만들어졌다. 임대료·운영비 등을 뺀 책방의 한 달 수익은 100만원 남짓이었는데, 공익서점이므로 이를 공적으로 써야 했다. 그래서 예술가·연구자 등을 후원하는 사업들을 벌이게 됐고, 이로부터 도서지원 사업 등도 나오게 된 것이다.

‘장학사업’의 첫 공식 수혜자는 2014년 베트남 국적의 박사과정생 도 타오 미엔이다. 유학생 신분으로 생활비 때문에 여러 개의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논문 작성이 미뤄지고 있던 그의 상황을 알고, 한달에 50만원씩 4년 동안 후원했다. 이에 힘입어 2019년 이화여대 대학원에 ‘베트남전쟁기 한반도와 베트남 관계 연구’ 논문을 무사히 제출한 도 박사는 현재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방문학자로 일하고 있다.

이음은 2019년부터 해마다 2~5명에게 월 10만원어치 ‘도서 지원’을 하는 지금의 제도를 만들었다. 지금까지 15명이 지원을 받았고, 이 가운데 7명이 박사학위를 받은 상태다. 동국대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은 ‘시리아 난민 유학생’ 압둘와합(관련 기사) 등 4명은 외국 국적이었다. <붉은 혈맹, 평양, 하노이 그리고 베트남전쟁>(도 타오 미엔), <부어스, 별을 따는 사람들>(권혜린), <철학의 과정>(유대칠) 등 연구자들이 펴낸 책들 역시 지원사업의 성과로 꼽을 만하다.

이밖에도 이음은 다양한 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논문을 마친 연구자들에겐 제주도에 있는 책방 소유의 공간에서 한 달 정도 ‘휴식’ 지원을 한다. 자신의 논문 내용을 발표하는 자리(‘책방이 사랑한 연구자’)를 만들어 발표비를 지원하기도 한다.

조 대표는 “‘아무 대가 없이 지원을 받았다’는 이들의 기억은 또 다른 씨앗이 될 것”이라 말했다. 그는 자신이 대학원에서 공부하던 시절 고 김종철 <녹색평론> 편집인이 아무 조건 없이 장학금을 지원해줬던 일, 또 서경식 도쿄경제대 교수(현 명예교수)가 한국에 온 일본 유학생들과 연구조교인 자신과 끊임없이 연결해줬던 일 등을 이야기했다. 누군가를 돕는 행위가 꾸준히 유전되며 ‘우리’를 만들고 있는 셈이다. 과거 재일조선인 유학생으로 책방이음의 후원을 받았던 리행리씨는 2021년 퇴임한 서경식 교수의 뒤를 이어 최근 일본 도쿄경제대 전임교수가 되기도 했다.

공익서점의 취지를 지켜가려면 안정된 재원이 필수적이다. 책방이음도 운영이 어려워져 2020년 폐점했다가, 코로나19로 변화된 환경에 맞춰 2021년 다시 문을 열었다. 인근 창신동에 있는 ‘뭐든지’ 책방 안에 ‘서점 속의 서점’으로 자리를 잡고, 책 판매는 온라인으로만 하기 시작한 것이다. 과거에 견줘 매출 규모는 80% 정도 된다고 한다. 책 판매만으로는 어려워, ‘후원인’ 제도도 만들었다. 후원인으로 참여하면 박사학위 연구자 포럼·발표회 등의 행사에 초대하는 식이다.

조 대표는 “시민강좌를 통해 연구자들이 연구 성과를 사회적으로 나누는 동시에 정당한 대가를 받아 생활을 꾸려가게 돕는 등 지속가능한 모델을 계속 만들어나가고 싶다”고 밝혔다. 은퇴하기 전까지 “앞으로 10년 동안 연구자 100명 정도를 더 지원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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