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일/도서평론가
최성일의 찬찬히 읽기
<앤디 워홀 손안에 넣기> 리처드 폴스키 지음. 박상미 옮김. 마음산책 펴냄
표지의 화가 얼굴이 어딘지 눈에 익은 리처드 폴스키의 <앤디 워홀 손안에 넣기>는 올해 읽은 책 중 제일 재미나다. 이 책은 팝아트를 대표하는 화가 앤디 워홀의 작품을 찾는 지은이의 여정인 동시에 미술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미술작품 중개인과 미술품 수집가, 그리고 현대미술 작가들이 빚어내는 미국 미술시장의 풍경이 자못 흥미롭다. 폴스키는 자신과 같은 일을 하는 미술품 중개인을 부각시키는데 이런 접근은 미술품 거래가 놀라우리만치 주식 거래와 비슷하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있다.
미술품중개인은 주식중개인처럼 자제를 잘 하고 감정적인 행동은 삼가야 한다. 미술시장과 주식시장의 가장 큰 차이가 자산의 유동성인 것을 감안하면, 자제력은 미술중개인에게 더 필요한 덕목이다. 하지만 수집가는 그림을 산다는 게 엄청난 도박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폴스키는 그의 동료들에게 언제라도 작품에 대한 통제력을 잃지 말라고 조언한다. 또 그는 중개인이 위탁판매를 통해 성공하려면 자금이 풍부해야 하지만, 자금이 많다면 수집가가 됐을 거라고 덧붙인다. 값이 나갈 만한 그림을 판별하는 감식안이 있어도 그 그림을 구입할 여력이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 미술품 수집의 냉엄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폴스키는 미술계를 “겉모습에 관한 것”으로 본다. 또한 “미술계에서 앞일을 예측한다는 건 힘든 일”이다. 이러한 미술계의 특성 때문인지 미술품 중개인 중에는 괴짜가 많다. 폴스키는 그보다 연배가 높은 특이한 성격의 중개인 제임스 코코란에게 적어도 세 번 이상 골탕을 먹는다. 역량 있는 중개인은 개성이 강하면서도 엄밀한 표현을 한다. 폴스키가 이 바닥의 중견들만 아는 이반 카프에게 많은 미술가를 발견한 장본인이 누구냐고 묻자 카프는 이렇게 답한다. “‘발견’이란 단어는 옳지 않아요. 미술가들 스스로가 자신을 발견하는 거죠. 나는 ‘알아보다’라는 단어를 선호해요.” 뉴욕의 ‘잘 나가는’ 작가들을 거느린 메리 분은 ‘중요한’ 작가들이라는 표현을 더 좋아한다.
“자신만의 스타일을 보여주는 작품은 작가가 서른다섯에 이르기 전에는 나오지 않는 것이 보통”이라고 말하는 폴스키가 그린 미술 작가들의 피라미드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피라미드의 맨 꼭대기에는 50명 정도의 미술가들이 있다.” 이들 슈퍼스타급 상류 화가들은 거의 지천명을 넘어섰고 고희를 바라본다. 그들은 이미 미술사 서적에 등재되었고 수입은 일곱자리 숫자다. 슈퍼스타 밑에는 250~500명 정도의 스타가 있다. 여섯자리 수입을 올리는 전업 작가들로 40대와 50대가 주축을 이루며, 작품이 미술사 서적에 포함될 잠재력을 지녔다. 스타 밑에는 폴스키가 스타지망생이라 부르는 5천명 선으로 추정되는 작가군이 있다. 여기에 속한 작가들은 나이의 폭이 넓고 수입은 5만에서 10만달러 사이다. 스타지망생 밑에는 미대를 나와 학사학위를 받은 20만명이 넘는 고생하는 미술가들이 있다.
폴스키에겐 앤디 워홀이 으뜸 가운데 으뜸이다. “그는 모두가 동의하는 20세기의 마지막 위대한 작가다.” 워홀은 그의 후배 미술가들이 미술을 직업적으로 생각하는 풍토를 다져놓기도 했다. 폴스키는 마침내 자신을 위한 앤디 워홀의 그림을 손에 넣는다. 그런데 폴스키가 구입한 워홀의 뾰족 머리 자화상이 누구를 많이 닮았다. 맥가이버를 빼쐈다.
최성일/도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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