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 프랭크 뉴포트 지음. 정기남 옮김. 휴먼비즈니스 펴냄. 2만5천원
잠깐독서/
“1999년 드라마 <청춘의 덫>이 ‘김수현표’라는 명성과 달리 초반 시청률이 기대만큼 나오지 않았다. 그 때 주시청층이 30~40대 아줌마란 조사 결과가 나오자, 제작진은 주인공 심은하의 머리모양을 그 세대 취향으로 단정하게 바꿨다.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시청자 호응이 높아졌다.” 당시 국내 유일한 시청률조사기관의 책임자가 우리 일상에 깊숙이 침투해 있는 여론조사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들려준 얘기다. 지난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후보가 보톡스 주사까자 맞아가며 이마의 굵은 주름을 편 것도, 그 선배인 김영삼 후보가 백발로 변해가던 머리를 새까맣게 염색했던 것도 모두 ‘여론조사’라는, 보이지도 않고 실체도 없는 그러나 그 막강하고 명백한 힘의 지시에 따른 결과였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바햐흐로 대선의 계절을 맞은 요즘 우리는 시시각각 쏟아지는 정치 여론조사 속에 살고 있다. 온라인 라이브폴이라는 편리한 ‘조사망’까지 등장해 좀처럼 벗어날 수 없을 지경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일단 시의적절하게 나온 셈이다.
2004년 이 시대 가장 권위있는 여론조사기관으로 꼽히는 갤럽의 현직 편집장이 써낸 책은, 그 설립자인 조지 갤럽이 1936년 기존의 모의조사 방법과 다른 예측조사 기법을 고안해 예측한대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면서 여론조사의 영웅으로 탄생한 일화에서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그가 책을 펴낸 진짜 의도는 “1935년 갤럽을 설립한 조지 갤럽 박사는 대중 여론조사를 발표한 첫날부터 조사 과정에 대한 문제제기에 시달렸다”거나 “여론조사의 역사는 ‘여론조사 반대의 역사’였다”는 대목에서 더 명확하게 읽힌다.
그는 “일반인들이 공유하는 지식에서 위대한 식견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전제 아래 “여론조사는 통합적 경험에서 지혜를 모으는 가장 효율적 방법”이고, “과학적 조사의 생명인 무작위(랜덤) 표본추출이 무질서하고 비체계적으로 아무렇게나 하는 게 아니라 엄격한 과정을 통한 선택”이라고 설득한다. 정치인 출신으로 한국사회여론연구소 부소장을 맡고 있는 옮긴이는 이를 ‘민심은 천심이다’는 말로 친절하게 요약해준다.
그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다 해도, “여론조사 결과도 중요하지만 언론매체는 여론조사를 면밀하고 신중하게 평가할 책무가 있다”는 지은이의 지적엔 공감이 간다. 국내 여론조사 1세대인 감수사 안부근(디오피니언 소장)씨의 표현이 더 끌린다. “여론조사를 읽는 눈이 더 중요하다.”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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