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대리들>김성재·구본준 지음. 해바라기 펴냄. 값 1만원
잠깐독서 /
그리운 <무대리>를 대리해 줄 딴 대리는 없을까? <무대리>가 자학적 시트콤을 통한 대리 배설이었다면 <한국의 대리들>은 당당하게 현실의 링에 올라 대리전을 펼친다. 대리의 정체를 한꺼풀 벗겨낸 뒤 “만년 대리로 남을래?” 라며 말년 대리를 위협하는 데 성공한다. 물론 미래의 리더로 도약할 수 있는 생생한 해법이 이어지면서 긴장은 안도로 바뀐다. 끝부분 재테크 관리법은 예상치 못한 보너스다.
회사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때 그는 회사에게로 와서 대리가 되었다. 하지만 김대리는 “운전해~어서~” 한마디에 주눅드는 김기사가 아니다. 책임만 있고 권한은 없는 대리는 과장대리의 줄임말로 알려졌지만 원래는 은행의 지점장 대리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일본식 조직문화를 차용한 서열구조가 90년대 중반부터 ‘한국형 팀제’로 바뀌면서 대리는 이제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의 핵심 동력이 된다. 어학보다는 업무 전문성으로 승부하고 기회비용이 큰 MBA(경영학 석사)에 집착하지말라고 조언한다. 초조한 대리급들이 빠지기 쉬운 ‘경력 함정’을 경고한 것이다. 상사를 궁금하게 만들지말라는 것은 보고를 잘하라는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고 중간에 수시로 보고하라는 충고는 새겨들을만 하다. 진짜 인재는 급할때 찾는 직원이니 투덜대지말라. 다만 믿기 때문에 시키는 것인지 만만해서 시키는 것인지는 구별해야한다. 일의 수준이 낮으면 만만한 탓이다. 입사 동기들이 하나둘 파랑새가 되어 떠날때 남아있는 대리는 심란하다. 먼저 현 직장을 객관적으로 평가해보고 그래도 옮겨야겠다면 현직 프리미엄을 최대한 활용한 뒤에 리스크를 감수하라는 3대 철칙은 참 영악하다.
30대 초반의 대리 이야기가 가슴에 와닿는 것은 글쓴이 둘다 전직을 경험했던 대리 시절의 애환이 펜 끝을 휘감았던 탓일 게다. 기자로 옮겨오고 기자를 떠나간 두 사람. 대리 155명에 대한 설문 통계와 풍부한 취재 사례는 대리에 관한 보고서라 부를만 하다. 대리(代理)의 본딧말은 혹시 대표이사(代表理事)가 아닐까? 힘내라 김대리, 물론 김기사도.
한광덕 기자 k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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