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전, 소금이 일어나는 물거울〉
최성일의 찬찬히 읽기 /
〈염전, 소금이 일어나는 물거울〉
유종인 글·박현우 사진/눌와·1만4천원 지난달 하순 강화 석모도를 3년 만에 다시 찾았다. 평일인데도 강화 외포항은 나들이 차량으로 북적였고, 섬을 오가는 배는 놀 짬이 없었다. 하지만 석모도 서쪽 바닷가 염전의 소금창고는 퇴락한 기색이 완연했다. 어느 여행사진가의 사진 산문집에선 안데스산맥 기슭의 염전 두 곳이 내 눈길을 붙잡았다. 1억 년 전 바다였던 볼리비아의 우유니 소금사막은 노천염전이나 다름없다. 안데스산맥에서 흘러내려오는 물줄기가 암염지대를 통과하면서 만들어진 페루의 살리나스 염전은 다랑논을 떠올린다. 〈염전, 소금이 일어나는 물거울〉을 뭐라 부를까? 글과 사진이 어우러진 서해안 염전 답사기, 염전의 문화사 아니면 염전의 모든 것. 어째서 새삼스레 안 하던 짓을 하려는가. 이 책을 한마디로 규정하는 건 부질없는 일이다. “퇴역한 염부에게서 염전과 소금에 대한 정의를 한마디만, ‘천일염에 대한 한마디’만 듣고 싶었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는 유종인 시인의 토로처럼. 적어도 12단계, 많게는 15단계를 거쳐야 소금을 얻는 염전일은 고된 노동이다. 하지만 나는 염치 불고하고 시인이 풀어놓은 말의 잔칫상을 즐긴다. 염도를 달리하여 늘어선 각 단계의 소금밭을 ‘배미’라고 한다. ‘난치’는 염도 2도 안팎의 바닷물이 첫 증발지로 옮겨지는 여섯 배미를 이르고, ‘느티’는 네 단계 정도의 중간 증발지를 일컫는다. 소금 농꾼은 ‘소금물을 안치고, 대패질을 하며, 소금을 받는다.’ 이름난 염전에 붙은 공생, 대동, 태평의 뜻도 허투루 봐 넘기기 어렵다. 염전 배미에 날아드는 소나무의 꽃가루는 서해안 천일염 소금에 들어가는 하나뿐인 천연 첨가물이다. 소금은 천일염 외에 암염, 기계염, 재제조염 등을 통해서도 만들어진다. 옛 어른들은 왜 오줌싸개에게 소금을 얻어오라 했을까? “소금이 나쁜 기운을 물리치는 힘을 발휘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오줌 싸는 아이는 몸이 허약하다고 믿기 때문에 그런 나쁜 기운을 물리칠 수 있는 소금이야말로 아이에겐 건강회복의 상징처럼 쓰였던 것이다. 또 오줌과 관련되는 신장 기능에 소금은 유효한 성분이라는 한방적 견해가 한몫을 더했을 것이다.” ‘날림집’의 추억은 가슴 뭉클하다. 먼발치에
서 주안염전을 바라본 가냘픈 기억이 있다. 어린 눈에도 직선으로 나뉜 소금밭의 반듯함은 참 인상적이었다. “소금밭의 구도는 단순하기 그지없다.” 지금 생각하면, 마치 몬드리안 추상화의 색을 입히기 전 모습 같았다. 염전 풍경을 담은 그래픽디자이너 박현우의 사진은 정갈하다. “어찌 된 것인지 소금창고는 여느 건축물에 비해 그 늙어가는 속도가 유난히 빠르다.”
〈본초강목〉에선 소금의 효능 중 하나로 “부패를 방지하고 냄새를 없애준다”는 점을 든다. 관가와 재벌가, 그리고 대학가를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소금을 왕창 뿌리든지 해야지, 이거야 원. 〈염전〉은 ‘소금을 연출한 자연의 힘’에 대한 경의이자 그것에 바치는 찬사다. “염전에 든 햇빛과 바람과 사람의 조력으로 모아진 소금이 소금의 이름으로만 절실하게 쓰이는 사람들을 바라고 묵묵히 일어나는 일은 얼마나 종요롭고 고마운가.” 최성일 출판칼럼니스트
유종인 글·박현우 사진/눌와·1만4천원 지난달 하순 강화 석모도를 3년 만에 다시 찾았다. 평일인데도 강화 외포항은 나들이 차량으로 북적였고, 섬을 오가는 배는 놀 짬이 없었다. 하지만 석모도 서쪽 바닷가 염전의 소금창고는 퇴락한 기색이 완연했다. 어느 여행사진가의 사진 산문집에선 안데스산맥 기슭의 염전 두 곳이 내 눈길을 붙잡았다. 1억 년 전 바다였던 볼리비아의 우유니 소금사막은 노천염전이나 다름없다. 안데스산맥에서 흘러내려오는 물줄기가 암염지대를 통과하면서 만들어진 페루의 살리나스 염전은 다랑논을 떠올린다. 〈염전, 소금이 일어나는 물거울〉을 뭐라 부를까? 글과 사진이 어우러진 서해안 염전 답사기, 염전의 문화사 아니면 염전의 모든 것. 어째서 새삼스레 안 하던 짓을 하려는가. 이 책을 한마디로 규정하는 건 부질없는 일이다. “퇴역한 염부에게서 염전과 소금에 대한 정의를 한마디만, ‘천일염에 대한 한마디’만 듣고 싶었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는 유종인 시인의 토로처럼. 적어도 12단계, 많게는 15단계를 거쳐야 소금을 얻는 염전일은 고된 노동이다. 하지만 나는 염치 불고하고 시인이 풀어놓은 말의 잔칫상을 즐긴다. 염도를 달리하여 늘어선 각 단계의 소금밭을 ‘배미’라고 한다. ‘난치’는 염도 2도 안팎의 바닷물이 첫 증발지로 옮겨지는 여섯 배미를 이르고, ‘느티’는 네 단계 정도의 중간 증발지를 일컫는다. 소금 농꾼은 ‘소금물을 안치고, 대패질을 하며, 소금을 받는다.’ 이름난 염전에 붙은 공생, 대동, 태평의 뜻도 허투루 봐 넘기기 어렵다. 염전 배미에 날아드는 소나무의 꽃가루는 서해안 천일염 소금에 들어가는 하나뿐인 천연 첨가물이다. 소금은 천일염 외에 암염, 기계염, 재제조염 등을 통해서도 만들어진다. 옛 어른들은 왜 오줌싸개에게 소금을 얻어오라 했을까? “소금이 나쁜 기운을 물리치는 힘을 발휘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오줌 싸는 아이는 몸이 허약하다고 믿기 때문에 그런 나쁜 기운을 물리칠 수 있는 소금이야말로 아이에겐 건강회복의 상징처럼 쓰였던 것이다. 또 오줌과 관련되는 신장 기능에 소금은 유효한 성분이라는 한방적 견해가 한몫을 더했을 것이다.” ‘날림집’의 추억은 가슴 뭉클하다. 먼발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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