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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온전히 복원된 울프의 정치적 메시지

등록 2007-12-14 21:40

〈3기니〉
〈3기니〉
최성일의 찬찬히 읽기 /

〈3기니〉
버지니아 울프 지음·태혜숙 옮김/이후·2만3000원

주제가 통하는 버지니아 울프의 길고 짧은 에세이 세 편을 한 권에 묶으면 어떨까? <자기만의 방>과 <집안의 천사 죽이기>, 그리고 <3기니>를 하나로 엮는 작업은 꽤 괜찮은 기획이라 여겼다. 이른바 ‘스토리 텔링’ 경제·경영 처세서의 경박 단소함에 반발하는 측면이 없지 않았지만, 느슨하고 어설픈 발상이었다.

울프의 주석이 담긴, 새로 번역된 <3기니>는 만만찮은 분량이다. 4백 쪽을 웃돈다. 책머리에 놓인 제인 마커스의 작품론은 쓸데없이 쪽수를 늘이는 군더더기가 아니다. 아주 요긴한 글이다. 이제 보니, 우리 독자들만 울프의 장편소설 <세월>을 오해한 게 아니었다. 영문학계에선 F. R. 리비스와 그의 아내 퀴니 리비스의 ‘중상모략’이 오랫동안 악영향을 끼쳤다. 리비스 부부는 ‘진실한’ 노동계급출신 작가 D. H. 로런스를 울프에 맞세웠다. 로런스는 울프를 빗대 막말을 서슴지 않았으나, 그의 <목사의 딸들>은 고상하기만 하다. “울프는 좌파 사람들이 대중을 조직하기 위해 나서기 전에 자신의 계층 속에서 조직해야 한다고 확고하게 믿었다.” 그리고 제인 마커스의 “글은 이 책을 대하는” 그녀 “자신의 반응”이다.

나는 내 느낌에 충실하겠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지만 울프의 여성주의는 공감한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시큰둥해 해도 울프의 평화주의는 지지한다. 국내 거주 외국인 노동자의 처우를 개선하고 지위를 향상시키는 데 굳이 울프의 국제주의를 차용할 필요성까진 못 느낀다.

첫 한국어판(여성사, 1994)은 울프의 주석뿐 아니라 사진 다섯 장도 빠뜨렸다. ‘복원된’ 사진들은 영국의 가부장제를 상징한다. 서울 지하철 2호선 서초역 6번 출구 진행방향으론 대법원·대검찰청·서초경찰서·국립중앙도서관·서울지방조달청과 기획예산처가 늘어서 있다. 이중 국립중앙도서관 앞에서만 좌회전이 안 된다는 우스개는 도서관의 낮은 역량을 반영한다기보다는 나머지 권력기관들의 힘을 대변한다. 지난 토요일, 국립중앙도서관 부속건물에서 열린 독서 감상 발표대회에 다녀오는 길에 1인 시위자를 만났다. 대검찰청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초로의 신사가 들고 있는 큰 팻말은 이런 글귀가 또렷했다. “BBK 정치검찰 근조.”



최성일의 찬찬히 읽기
최성일의 찬찬히 읽기
이 책을 구성하는 편지 세 통은 전쟁반대 성명서 서명과 반전기부금 요청에 대한 답장이다. 나는 거의 모든 서명과 어떤 기부를 꺼린다. 얼마 전, 서울 대학로에서 예외적인 서명을 하려다 여중생의 물음에 할말을 잃었다. “(동)사무소는 한자 아닌가요?” 저번 대선을 앞두고 모 정당의 창당기금으로 1만원을, 어느 후보자에게 1만원을 기부했다. 나는 그 후보자의 지지자들이 보내준 쌈짓돈은 적어도 상징적 차원을 넘어서 선거비용의 일부를 감당했을 거라 착각할 정도로 순진했다. 그 후론 정치인 후원 다신 안 한다. 열 배로 불려 돌려준대도 싫다. 이번엔 법률가와 기업인, 전직 기자와 교수가 나섰다. 우리 사회에서 꿀릴 게 전혀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대통령이 되면 누가 백성노릇을 할까?”

최성일 출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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