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유아영
마음을 짓밟는 감정노동
④ 소진 : 열정은 어떻게 착취되었나
④ 소진 : 열정은 어떻게 착취되었나
‘사회적 약자 상대’ 윤리적 책무에
정작 자신의 정신적 상처 못 달래 장애인 생활시설에서 일하는 김경숙(가명·36)씨는 장갑을 끼지 않고 일한다. 처음 이곳에 와서 장갑을 찾다가 타박을 들었다. “여기 들어오신 분들 한평생 장애 때문에 차별받고 산 분들이잖아. 그런데 우리까지 장갑을 끼고 그분들을 만지면 거리감도 느끼고 차별받는다고 생각하지 않겠어?” 다른 복지사들처럼 맨손으로 대소변도 치우고, 몸도 닦아준다. 일한 지 석달 만에 시설에서 옴이 옮았다. 아무것도 모른 채 한 이불 덮고 자던 식구들에게도 옮겼다. 지하층에 사는 김경숙씨 가족은 어느 햇살 좋은 날 옥상으로 올라갔다. 돌을 갓 넘긴 아들과 네살 아들을 벌거벗겨 옴 치료약을 바르고 돗자리에 앉혔다. 이불을 털던 남편과 벌거벗은 아이들은 시시덕거리며 장난을 쳤다. 김씨는 속으로 눈물을 삼키고 함께 웃었다. 어느 날 의무실에서 일하는 친구가 귀에다 속닥였다. 연고 없는 장애인들이 맡겨지는 이곳에는 적어도 6가지 전염병균이 떠돌고 있으니 조심하라는 것이다. 비형 간염, 시형 간염, 매독, 결핵… 얼마 전에는 슈퍼박테리아도 발견됐다고 했다. 시설에서 함께 생활하며 장애인들에게 수시로 꼬집히고 얻어맞기 일쑤인 복지사들이 안전할 리 없었다. “알고 보니 장갑을 끼면 안 되는 이유는 따로 있었어요. 손이 둔해져 일하는 시간이 1.5배 더 든다는 거예요.” 강제규정은 아니지만 일손이 느리다고 관리자들이 한마디씩 하다 보니 장갑을 끼고 일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곳에 머무는 사람들에게도, 일하는 복지사들에게도 이건 못할 짓 아닌가요.” 김씨는 말했다. 복지사 100명이 일하는 이곳은 낙후된 곳도, 비리나 부정이 있는 시설도 아니다. 하지만 그가 일한 3년 동안 매해 절반이 넘는 복지사들이 그만두고 새로 들어오기를 반복했다. 김씨는 한달에 200시간을 일하며 200만원을 받는다. “장애인들이 때린다고 확 피하면 때린 사람이 넘어져 다치거든요. 위에선 기술적으로 맞으라고 가르치지요. ‘봉사하겠다는 사명감을 갖고 왔으면 몸 바쳐서 일해라’ 그런 말을 쉽게 듣죠.” 중증장애인들이 모인 이곳에서 지난 1년 동안 죽은 사람만 13명이다. 돌보며 사랑했던 환자들이 죽을 때마다 복지사들의 정신적 상처도 컸다. 그러나 몸과 마음을 달랠 시간과 여력이 없다. 복지사 수련 모임에서는 심리치유는커녕 ‘발뒤꿈치 들고 걷기’ ‘소리 안 내고 문 닫기’ 같은 것만 강조한다. 김경숙씨는 건초염에 걸려 손가락을 구부리지 못한다. 함께 일하는 동료 복지사들 중 근골격계 질환을 앓지 않는 사람은 한 명도 없지만 산재를 신청하거나 인정받은 사람도 없다. 자원봉사자들의 선의와 희생으로 쌓아올린 시설에서 ‘감히’ 사회복지사들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복지사답지 못한 일로 비치기 때문이다. 감정노동과 사회적 약자를 상대한다는 윤리적 책무까지 더해져 사회복지사들의 몸과 마음이 ‘소진’되어가고 있다. 사회복지 공무원의 잇따른 자살을 계기로 국가인권위원회가 국내 사회복지사 2605명을 대상으로 진행해 14일 발표한 ‘사회복지사 인권상황 실태조사’에서 이들의 인권보장 수준은 10점 만점에 평균 5.6점으로 나타났다. 스스로의 건강을 지킬 건강권, 폭력에 맞서거나 회피할 방어권 등이 특히 취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인권위는 보고서에서 “복지 대상자들의 인권이 강조되면서 문제가 생길 경우 사회복지사에게 더 많은 책임을 물음으로써 이들을 정서적으로 소진시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명묵 세상을바꾸는사회복지사 대표는 20일 “사회복지사들의 처지는 저임금·중노동·무복지 세가지로 요약된다. 모두 국가가 복지의 짐을 열악한 민간시설에 떠넘긴 탓에 일어난 일들”이라고 말했다.
소진(번아웃 증후군) 죽도록 노력했지만 처음에 가졌던 이상만큼 일이 실현되지 않을 때 심리적으로 ‘번아웃’(소진) 상태에 이르게 된다. 마치 인생의 연료를 다 써버린 것처럼 신체적·정서적으로 극도의 피로감을 느끼고 무기력증이나 자기혐오·직무거부에 빠지는 증상을 보인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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