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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부산하고 어설픈 요리, 자꾸 빠져 빠져∼

등록 2014-03-07 19:29수정 2014-03-08 11:38

올리브티브이 <정재형의 프랑스 가정식>
올리브티브이 <정재형의 프랑스 가정식>
[토요판] 신소윤의 소소한 TV
오홍홍홍홍. 한밤중 티브이를 켜니 기이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흐응흐응, 어깨를 들썩거리며 산만하게 주방을 오가는 남자한테서 히읗과 이응이 난무하는 콧소리가 이어졌다. 괴상한 이 웃음은 요정의 것, 자칭 음악요정 가수 정재형의 목소리다.

1995년 첫 음반을 내고 활동을 시작했으니 방송 경험 20년을 채웠건만 그는 여전히 카메라 앞이 낯설다. 부끄러워하고, 몸을 배배 꼰다. 어색할 때면 시종일관 특유의 웃음소리를 내며 정적이 될 뻔한 시간을 메운다. 그나마 무대에 피아노라도 놓여 있으면 좀 안정되는 듯하다. 노래하고 연주할 때 가장 자유롭고 편안해 보이니, 사람들이 음악요정이란 그의 별명을 인정해주는지도 모른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요리요정으로 변신했다. 매주 수요일 밤 11시 올리브티브이 <정재형의 프랑스 가정식>에서 그는 노래하는 대신 요리를 한다. 프로그램은 이전에 <무한도전> 등 예능에서 보였던 그의 성격을 그대로 반영한다. 그러니까 산만하기 그지없단 얘기다. 같은 채널 <마스터셰프코리아>의 심사위원이 본다면 지적할 것투성이다. 어느 날은 머리를 단정하게 묶었지만 어느 날은 머리를 산발한 채 주방에 서고, 부엌 한편을 지키고 앉은 강아지를 쓰다듬다 요리를 하고, 뭉근하게 익혀야 해서 시간이 오래 걸리는 요리는 앞으로 하지 말자고 하고, 정신없이 수다를 떨고, 피아노를 치고….

하지만 그런 산만함이 오히려 ‘가정식’이라는 단어와 어울린다. 음식을 만들며 재료에 대해 설명해주고, 음식과 얽힌 자신의 추억 같은 것을 조근조근 얘기해주는 모습이 오래 말이 그리웠던 유학생 오빠를 보는 기분이다. 그런 사람의 부엌에 초대돼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요리를 완성해가는 시간. 우리의 요리요정은 요리를 하다 칼이 잘 안 들면 손을 멈추고 칼을 갈고, 누구나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는 비법 소스를 아무에게도 알려준 적 없다고 하는 동시에 레시피를 줄줄 흘린다. 이렇게. “이 샐러드는 되게 유명해. 비법을 알고 싶어들 하는데, 안 알려주지.” 맞은편의 스태프가 어디에서 유명하냐고 물으면 “으흐흐흐흥, 내 친구들 사이에서… 아하하하항, 내 음식을 먹어본 사람들만.” 손이 부족하면 카메라 뒤에 숨은 스태프에게 “야, 너 놀지 마, 이리 와서 이것 좀 저어봐봐”라고 말하며 덜컥 주걱을 쥐여준다. 대본에도 없는 일을 스태프에게 시키니 상대방이 당황스러울 법도 한데 스튜디오엔 내내 웃음이 흐른다. 마지막에 고맙다는 말을 꼭 잊지 않는 그의 태도는 미묘하게 불손하지 않다. 마치 이것은 요리 프로그램이 아니라는 듯, 모두를 자신의 주방에 초대했다는 듯 부산스럽고도 자연스럽다.

프랑스에서 접했던 이런저런 재료들, 요리를 소개하며 능숙하게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그에게도 이 모든 것이 낯설고 불편했던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2회에서 돼지고기가 들어간 일종의 스튜인 ‘블랑케트 드 포르’를 만들면서 정재형은 그것을 자신의 소울푸드라고 소개한다. 비교적 일찍 히트 곡도 내고, 국내 대중음악 시장에서 탄탄하게 자리를 잡을 수 있었지만 서른살의 어느 날 불쑥 가방을 싸 프랑스로 떠났다. 가장 힘들었던 것이 점심시간이 돼서 밥을 먹는 일이었다. “맨 처음에 갔을 때 너무 고생을 한 거예요. 왜 10㎏이 빠졌냐면 점심시간에 혼자 밥을 못 먹어서. 브라스리나 카페에 가서 혼자 먹을 용기가 안 났던 거예요. 주문할 생각도, 용기도 안 나고….” 그런 시간을 견디다 힘을 내 식당에 들어가 처음 먹은 음식이 송아지고기가 들어간 블랑케트 드 포르였다. 메뉴판을 보고 요리를 고를 필요가 없는, 우리로 치면 매 점심 그날 정한 반찬을 내주는 백반집처럼 자리에 앉기만 하면 말없이 음식을 내주는 집 앞 식당에서였다. “위로가 되는, 눈물까지는 아니었지만 마음속에 아… 따뜻해, 여기도 먹는 게 이렇게 다르지 않구나” 하는 것을 말이 어눌했던 초라한 유학생은 처음 느꼈다.

타인에겐 사소한 에피소드일지 몰라도 자신에게는 큰 사건이었을 그런 이야기들이 요리와 함께 익어간다. 소스를 만들 때 소금을 뿌리면 3분의 1 정도는 그릇 밖으로 줄줄 새고, 여전히 산만한 시간이지만 그 콧소리에, 그 부산스러움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이 사람, 진짜 요정인가?

신소윤 <한겨레21>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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