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진도군 임회면 남동리 팽목항에서 17일 새벽 세월호 침몰 사고 실종자 가족이 담요를 두른 채 앉아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진도/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토요판] 신소윤의 ‘소소한 TV’
불면의 밤을 보내다 설핏 잠이 들면 늘 괴상한 꿈을 꿨다. B급 컬트 무비 같은, 깨고 나면 내용이 기억도 나지 않는 그런 꿈이 대부분이었다. 16일 아침 ‘속보-수학여행객 실은 제주행 여객선 침몰’이라고 온 문자를 보고 비몽사몽간에 또 이상한 꿈을 꿨구나 싶었다. 대부분의 승객이 구조되었다기에 ‘괜찮아, 현실이구나’ 했다. 하지만 악몽은 잠이 완전히 깬 다음부터 시작됐다. 저 검은 바닷속, 거대한 배 안에 아이들이 있다.
이번주의 티브이는 온통 세월호다. 낮에는 뉴스 특보가 이어지고, 밤에는 기존에 편성되어 있던 예능 프로그램과 드라마를 접고 세월호 관련 보도가 계속됐다. 참혹한 재난 앞에서 소소한 웃음, 애절한 연애 전선을 묘사한 이야기 같은 것은 시시껄렁한 것이 되었다. 그동안 집중해서 보던 드라마들이, 거기서 겹겹이 중첩되던 갈등과 파국적인 사고 같은 것들이 모두 사실이 아니라 허구인 것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처럼 세상의 끔찍한 일은 모두 거짓말이면 좋겠다. 국가정보원 허위 간첩 사건 같은 것들을 보도하는 뉴스를 보고 사람들은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티브이는 그동안 자주 거짓말을 해오지 않았나. 그러니 지금 연이어 보도되는 가까운 바다에서 벌어진 저 사건도 그저 악몽이길. 하지만 허술한 집계로 오락가락하던 실종자 수는 금세 구조자를 넘어섰다. 실종자 수가 줄어들면 사망자 수가 늘었다. 구조자 수는 이틀 밤을 자고 일어나도 깨지 않는 악몽처럼 단 한명도 늘지 않은 채 그대로다.
“너는 뉴스 안 보지?” 한 선배가 물었다. 출산을 앞두고 있어 몸도 마음도 안정해야 할 시기인 나를 걱정해서 한 말이다. 아이를 키우는 다른 선배도 티브이 뉴스를 보고 설명을 들은 자신의 아이가 생각보다 충격을 많이 받은 것 같아 놀랐다고, 이 슬픔의 강도가 얼마나 세고 잔혹함의 크기가 얼마나 거대한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티브이에서 사고 당시 상황 재연, 현재 현장 등 절박한 순간들이 계속해서 전해진다. 아우성치는 사람들,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가족들의 외로운 뒷모습 같은 것이 눈에 박힐 정도로 자주 화면에 나왔다. 리포트가 넘어갈 때마다 들리는 위태로운 배경음악, ‘쾅! 소리 후 선박 기울어…사고 순간 재구성’, ‘여객선 출항에서 침몰까지 긴박했던 14시간’ 같은 다급한 사정을 전하는 제목을 단 뉴스를 연이어 보고 듣고 있자니 슬픔과 자극의 강도에 점차 무감각해지는 것은 아닌가 경계심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자정이 지나도록 티브이를 끄지 못했다. 난생처음 ‘엄마’라는 낯선 호칭을 얻으면서, 나는 더 간절해졌는지도 모른다. 어떤 영화의 제목처럼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같은 시간이 찾아오지 않을까. 검은 슬픔이 새하얗게 씻겨나가는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감으로. 아마도 다른 시청자 모두 비슷한 마음으로 텔레비전을 끄지 못하고 있었으리라. 시청률 조사업체 티엔엠에스(TNmS)에 따르면 사고 당일 지상파 3사 메인뉴스 시청률이 급증했다고 한다. 한국방송 <뉴스 9>은 16.5%, 문화방송 <뉴스데스크>는 8.6%, 에스비에스 <8시 뉴스>는 10.6%로 3사 메인뉴스 시청률 합계가 35%가 넘었다. 시청 시간 자체도 늘어 세월호 구조작업 이틀째인 17일에는 전국 가구 기준 티브이 시청 시간은 8시간26분으로 집계돼, 전주 같은 요일에 비해 1시간 4분이나 증가했다.
원고를 쓰고 있는 사이, 세월호가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무게 추는 자꾸만 희망보다 절망으로 기울려 들지만 모두의 염원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지 않길. 숱한 사람이 입 밖으로 되뇐 구원의 기도와 비통한 마음으로 남긴 문장이 품은 기운이 저 바다까지 전해지길. 그래서 곧 우리가 기다리는 뉴스를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살아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신소윤 <한겨레21>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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