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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왜 키우냥?”에 답하지 못했지만…나는 ‘집사’가 되었다

등록 2017-02-12 09:59수정 2017-03-07 10:12

새로 온 집에서의 첫날. 2개월을 갓 넘긴 고양이 라미의 검은색 ‘젤리’.
새로 온 집에서의 첫날. 2개월을 갓 넘긴 고양이 라미의 검은색 ‘젤리’.
[토요판] 박현철의 아직 안 키우냥

① 라미와의 만남

“라미로 해라, 삼촌.”

조카한테 고양이 이름을 지어 달라고 했다. 고민 끝에 입양을 하고 가장 먼저 알린 사람이었다. 쿨한 조카는 “고양이 샀나?” 이 한마디만 한 뒤, “도라에몽으로 해라”가 전부였다. “어떻게 생겼는데?” “사진 좀 보내봐” 따위의 환호는 없었다. “두 글자로 다시 줘봐, 여자야”라고 했더니 ‘라미’로 하라고 했다. 무슨 뜻이냐고 물으니 “그냥”이란다.(애니메이션 주인공 ‘도라에몽’의 여동생이 도라미라는 사실은 한참 뒤에 알았다.)

2016년 10월의 마지막 일요일, 벵골고양이 라미는 그렇게 이름을 얻어 나와 식구가 되었다. 충북 청주에서 태어난 지 2개월이 갓 지난 애였다.

침대에 강아지가 뒹굴고, 고양이가 소파에서 잠을 자는 건 텔레비전 속 사람들의 얘긴 줄 알았다. “자고로 가축은 (집)밖에서 키우다 때 되면 잡아먹는 거지.” 더군다나, 나 하나 건사하기도 힘들어 여태 혼자 사는데, 동물이라니. 그런 생각으로 살았다. 수십년 동안.

부끄럽지만 유기동물에 대한 애정 같은 게 있는 것도 아니었다. 라미도 집에서 ‘브리딩’(breeding: 번식)한 사람에게서 입양비를 주고 데리고 왔다.

고양이 입양을 알아볼 때, 한 카페의 입양 신청서가 던진 질문이 있었다. “일생을 고양이와 함께 보내기로 결정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 질문을 만날 때까지 ‘내가 왜 고양이와 함께 살기로 했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스스로에게 물어본 적이 없었다. “10년 이상을 사는 고양이도 나이가 들면 아픕니다. 돌봐줄 능력과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라는 대목도 있었다. ‘음, 그래야지’가 나의 ‘소심한’ 다짐이었다.

내가 고양이를 데리고 온 이유라…. 귀엽고, 예쁘고, 혼자 사는 방에 나 아닌 움직이는 (사람이 아닌)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고, 강아지와 달리 고양이는 혼자 사는 사람도 키울 수가 있(다 그러)고…. 이런 이유를 찾아낼 수 있었는데, 그 이유들은 모두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성급하게 입양을 결정하시면 안 됩니다’고 ‘경고’하는 내용들이었다. 난 곧 파양하거나 유기할 가능성이 큰 문제적 반려인이었다.

강아지든 고양이든 ‘이런이런 분은 키우면 안 됩니다’라는 말은 주변에 넘쳐난다. 그런데 ‘이런 분은 키우세요’라는 말은 듣기 어렵다. 성급하게 결정했다가 후회하고 버리는 것보단 아예 키우지 않는 게 훨씬 낫기 때문일 테다.

“고양이 키우는 거 어떨까?”라고 어렵게 말을 꺼냈을 때, 다행히도 내겐 “어우, 키울 수 있겠어?”라는 걱정 대신 “오, 집사 되려고?”라며 응원해 준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고양이를 키우면서 맞닥뜨릴 ‘시련’에 대해선 하나도 얘기하지 않았다. ‘좀 해주지’ 싶을 때가 이후에 찾아오긴 했다만. 그들은 모두 지금 고양이를 키우고 있거나, 과거에 키우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지금은 키우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고양이와 함께 산 지 석달이 지났다. 낯을 많이 가리는 고양이들은 새집에 오면 일주일 넘게 은둔한다는데, 라미는 집에 온 첫날 무릎 위에 앉아 일광욕을 하면서 낮잠을 잤다. 바뀐 사료도 잘 먹었고, 알려주지 않아도 화장실을 잘 찾아간 뒤 볼일을 보고 뒤처리도 잘 했다. 물론 안 그런 때도 있었다.(이후에 자세히 쓸 일이 있겠지.) 불행히도 아직 ‘고양이를 키워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했지만, 다행히도 문제적 반려인으로 ‘전락’하진 않았다. 그래서 이 글을 시작하게 됐다. 나도 집사가 되었다(고 자평하며).

서대문 박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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