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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시월드’는 이해 못할 세계인가

등록 2013-02-01 19:36수정 2013-07-15 16:24

한국방송 <부부클리닉-사랑과 전쟁 2>의  ‘나는 시어머니다’
한국방송 <부부클리닉-사랑과 전쟁 2>의 ‘나는 시어머니다’
[토요판] 신소윤의 소소한 TV
나는 며느리다. 다가올 설 연휴가 얼마나 남았는지를 자꾸만 꼽아보는 며느리다. 결혼하고 네 번의 명절을 보냈지만 여전히 남편의 친척들이 어렵고 어색하다. 편하려면 차라리 스며드는 게 낫다는 사람들도 있는데, 여전히 발끝이 공중에 둥둥 떠 있는 기분이다. 명절이면 남편의 큰집에서 음식 준비를 다 해서 차례 마친 다음 설거지만 하고 돌아오긴 하는데, 명절 스트레스라는 게 일의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란 걸 알았다. 이제 결혼 30년이 넘었고 명절이면 숙모들과 깔깔 웃음을 나누느라 여념이 없는 엄마도 외할머니댁에 가서야 다리를 쭉 뻗는다는 것을 나는 결혼하고 나서야 눈치챘다.

자랑이든 불만이든 결혼한 친구들 사이에서 ‘시’자 들어간 이야기가 오가기 마련인 명절 전, 막강 시어머니가 티브이에에 떴다.

<문화방송>(MBC) 주말드라마 <백년의 유산>은 방송 첫 주 온갖 막장 코드를 끌어다 쓰며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국내 굴지의 식품업체 금룡푸드 회장이 된 전직 사채업자 방영자(박원숙)는 아들이 데려온 며느리가 마땅찮다. 결혼식장에 들어선 며느리에게 “아들의 장난감, 너도 석달 정도면 갈아치울걸?”이라고 쏘아붙인 언어 폭력은 시작에 불과하다. 결혼 후에는 며느리를 불러놓고 새 며느리 후보를 직접 골라보라고 하거나, 꼬투리 잡아 며느리의 머리를 쥐어뜯고, 결국 견디지 못한 며느리가 이혼 서류를 제출하고 위자료를 요구하자 아들이 교통사고가 났다는 거짓말로 정신병원까지 유인한 뒤 감금시키기도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막장을 향해 질주하는 시어머니의 악행이 현실이 아니라는 것.

그러나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것으로 알려진) <한국방송 2텔레비전>(KBS2)의 <부부클리닉-사랑과 전쟁 2> 제57화 ‘나는 시어머니다’ 편(1월18일 방영)은 이게 진짜일까, 그저 극악하기만 하다.

처음에는 장남만 챙기는 시어머니인가 했다. 장남과 장손이라면 가진 땅과 집을 팔아서라도 후원하지만 차남에게는 일원 한 장 쓰지 않는다. 어릴 적부터 형이 쓰던 물건만 물려받으며 찬밥 취급을 받던 둘째 아들은 인내에 익숙하다. 차별뿐만 아니다. 며느리를 하녀 부리듯이 하고 과격한 언어 폭력과 일상적인 무시, 가부장적인 권위만 내세우는 시어머니는 만나는 순간마다 견디기 힘들다.

그런 시어머니가 어느 날 집으로 들이닥쳤다. 10년 시집살이하던 큰며느리가 이혼 서류를 써놓고 집을 나갔기 때문이다. 여기서부터는 참기 힘든 장면의 연속이다. 아침잠 없는 시어머니는 새벽 5시만 되면 아들 내외 방문을 두드리며 깨우고, 맞벌이하는 부부가 집안일을 나눠 하자 눈이 뒤집혀 “부려먹을 게 없어서 서방 부려먹냐”며 며느리를 닦달한다. 견디다 못한 아들 내외가 그만 좀 하라고 맞서니 자식이 엄동설한에 내팽개치려 한다고 통곡을 하고, 젊은 시절 신세 한탄을 줄줄이 늘어놓으며 자신의 상처를 도리어 무기 삼는다. 이 와중에 큰며느리가 위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간 가족. 온몸에 암이 전이되어 쓰러져 누워 있는 큰며느리 앞에서 아들에게 새 사람을 찾아보라고 채근한다. 시어머니 등쌀에 시달리던 둘째 며느리도 결국엔 갑상샘암을 얻었다.

진즉에 채널을 돌리고 싶었지만, 한숨 푹푹 쉬면서도 이 극악무도를 끝까지 지켜볼 수 있었던 이유는 드라마가 벼랑 끝에서 다투는 가족들의 상처와 실수를 하나씩 들여다봤기 때문이다. 시어머니는 젊은 시절 고단했던 삶을 거친 방식으로 자식에게 보상받으려 했고, 착하고 순한 남편은 어릴 적부터 형에 치이면서 귀를 닫을 줄만 알았지 다른 사람을 제대로 살필 줄 몰랐다. 며느리는 고독하고 모진 시어머니에게 처음부터 마음을 닫았다. 이혼소송까지 몰고 간 일련의 소동들은 구시대적 폭력을 행사하던 시어머니에게서 비롯했지만 결국은 아무도 서로를 이해하려 들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제 곧 온 가족이 모이는 설 명절이다. 서로 다른 색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떠들고 웃고 싸우고 화해하는 뜨끈한 진창 속으로 들어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신소윤 <한겨레21>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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