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오로라 공주>
[토요판]신소윤의 소소한 TV
어쩐 일인지 이번주에는 여러 날, 늦은 밤 채널을 돌리며 재방송으로 이슈가 되는 프로그램들을 챙겨보게 됐다. 그런데 매번 티브이를 켤 때마다 꼭 걸리던 드라마가 <오로라 공주>다. 케이블 채널 재방송 빈도는 프로그램 인기 척도 아니겠나. 8회까지 방송분을 재방송을 만나는 대로 뒤죽박죽 봤다. 퇴근길 택시에서 기사 아저씨도 라디오를 트는 대신 <오로라 공주>를 선택했다. <배철수의 음악 캠프>의 마력을 누르고 택시 기사의 귀를 사로잡은 오로라 공주는 누구란 말인가.
천왕식품 오대산 회장의 막내딸 오로라(전소민)는 위로 띠동갑이 넘는 오빠 셋을 두고 ‘딸 바보’ 오 회장 부부 사이에서 금지옥엽으로 키워졌다. 영특하고 똑부러져 어릴 적부터 부모에게 꾸지람 한 번 듣지 않고 자란 탓인지 자신보다 손위 사람들에게 입바른 소리를 하곤 해 미움을 사기도 한다. 그런 오로라의 상대 역은 누구인가. 오로라 정도 스케일을 마주하는 상대 역의 이름이라면 태양풍 정도는 돼야 하지 않을까. 어쨌거나 시청자를 실망시키지 않는 이름은 황마마(오창석)다. 황마마는 ‘황마’라는 필명을 쓰는 베스트셀러 작가다. 작품 활동 외에 대외적으로 움직이지 않아 얼굴이 알려져 있지는 않다. 그러니까 장장 120부작의 드라마는 이 둘이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다. 긴 이야기의 틈을 메워나갈 주변 인물들도 깨알 같다. 오로라의 오빠들을 소개하자면 오왕성, 오금성, 오수성, 황마마의 누나들로는 황시몽, 황미몽, 황자몽이 버티고 서 있다. 그리고 이들 행성계 이름과 몽자 돌림으로 특이한 작명을 완성하고 이들 관계를 엮은 이는 누군가. 오로라가 시누이들을 앉혀놓고 시시콜콜 가르치는 모습을 보며 혹시 씨가 많은 딸기는 칫솔로 세심하게 씻어야 한다거나, 비타민이 아니라 ‘바이타민’이라 발음해야 한다 가르쳤던 그 캐릭터들이 겹쳐 보이지 않았는지. 맞다. <하늘이시여>, <왕꽃선녀님>의 그분, 임성한 작가가 돌아온 거다.
이러쿵저러쿵해도 어쨌든 <오로라 공주>는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는 힘이 있다. 작가 특유의 방식대로 개성 강한 캐릭터들이 이야기를 빠르게 전개해나가기 때문이다. 자기 잘난 맛에 살고 말하는 데 거침이 없는 오로라는 황마마 앞에서는 유독 약해진다. 누나들의 반대에 부딪혀 결국 성사되진 않겠지만 황마마에게는 이미 연인이 있고, 일방적으로 사랑에 빠진 오로라를 만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황마마의 누나들은 11살에 부모를 여읜 황마마를 가엾게 여겨 어릴 적부터 키우다시피 했는데 이들의 지극정성이 때때로 도를 지나치는 듯하다. 황마마가 누나들에게 연인을 소개시키자 누나들은 여자 쪽이 가진 것이 너무 많아 마마를 무시할지도 모른다는 둥, 시부모가 없으니 마마를 데릴사위 삼을 수도 있다는 둥 고릿적 이야기를 쏟아내며 반대한다. 이들 누나가 다른 드라마의 가부장적 캐릭터보다 한 수 위였던 것은 장모가 요리를 잘하니 마마와 누나들이 점점 더 멀어질 수도 있다는 것. 게다가 마마의 누나들은 어찌된 일인지 우연한 상황에서 모두 오로라와 악연을 갖고 있다. 120부까지 이어질 이야기에는 아마도 오로라와 누나들의 좌충우돌과 이것을 풀어나는 과정들이 담길 것이다. 더불어 오로라의 세 오빠와 황마마의 세 누나가 연결되는 설정이라 예측되기도 하는데, <보고 또 보고>에서 겹사돈 이야기를 풀어나갔던 작가가 이번에는 4겹 사돈이 될지도 모르는 이야기를 들고 온 것이다.
임성한 작가의 드라마는 작위적인 설정과 상식을 무너뜨리는 몇몇 대사로 늘 논란을 낳았다. 한편으론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하니 작가도 세상의 어느 귀퉁이에서 왜곡되거나 상식밖의 현실을 목격하고 이를 드라마틱하게 풀어나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임성한 작가와 <보석비빔밥>에서 호흡을 맞췄던 김정호 감독은 더는 막장 드라마 논란은 없을 것이라 공언했다. 기존의 이야기 구조를 파괴하며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드라마를 풀어나가는 작가의 작품을 지켜보는 것은 흥미롭다. 다만 이야기에 대한 욕심으로 특정 인물이나 프로그램을 비난하거나 불륜 등의 소재를 적극적으로 끌어 쓰거나 자극적인 표현을 쓸까봐 불안하긴 하지만. 어쨌거나 아직 10회에 불과하다. 그분이 돌아왔다.
<한겨레21>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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