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스타
[토요판] 신소윤의 소소한 TV
다음주 회의 때 이런 발제를 하면 어떨까. “장마라 날이 계속 흐려 울적한데, 맑은 날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민머리(해돋이) 특집’을 해보는 건 어떨까요?”(여성 탈모를 진지하게 고민하던 동지로서, 머리를 깔끔하게 민 이들을 디스하는 것은 아니고요. 실제로 이런 기획이 있었다니까요.) 하지만 회의에 올리기도 전에 팀 차원에서 킬 당할 것 같다. 그럼 이런 기획은 어떨까. 얼굴은 익숙해도 이름은 낯선 배우들, 최준용, 김광규, 정만식 등을 초대한 ‘언젠가는 국민배우’ 특집은? 아마도 계기성이 없으므로 킬. 낸시 랭, 유브이(UV)의 뮤지, 샘 해밍턴 등을 초청해 ‘특이한 사람’ 특집을 써보는 건? 이들이 특이하단 건 뉴스도 아니므로 킬. 1990년대에 활약한 1세대 아이돌 그룹 멤버 데니 안, 천명훈, 김재덕, 이재원을 불러 ‘전설의 조상님’ 특집을 해보는 것은요? 언제적 추억팔이냐며 한 소리 듣고 새 기획안을 짜야겠지. 아니면 얼렁뚱땅 기획안이 통과돼 인터뷰이를 불러놓고 이런 질문은 던진다면 어떨까. “자 기획사는 이분(트로트 가수 홍진영)이 빵빵합니다. 배용준씨 회사 소속이라고요? 봉태규씨, 임수정씨, 정려원씨, 최강희씨, 주지훈씨, 김수현씨… 이렇게 빵빵한데, 여기 돈 내고 들어간 것 아니에요?”
나열한 기획과 인터뷰는 문화방송(MBC) <라디오 스타>에서 방영한 내용들이다. <라디오 스타>는 지금 가장 ‘핫’한 사람보다는 변두리 어디서 서성이는 이들을 모아 이야기를 만들고, 하고 싶었던 말을 쏟아낼 장을 마련한다. 진행자들은 그런 손님을 불러놓고 조금 불순한 질문도, 함부로 말하기 꺼려지는 흥건한 소문에 대한 뒷담화도 꺼리지 않고 던진다. 출연자도 진행자도 때때로 아슬아슬한 경계를 넘나들지만 <라디오 스타>는 이 또한 사람들의 이야기라며, 정색하지 않고 이야기를 툭툭 내놓는다.
애초에 <황금어장-무릎팍도사>에 밀려 ‘5분 굴욕 방송’ 등 이른바 ‘쩌리’ 시절을 보냈던 <라디오 스타>는 태생적 특성을 버리지 못하고 여전히 “다음주에도 만나요, 제발”이라고 끝인사를 전하는, 공공연히 자기들이 언제 없어져도 이상하지 않다고 말하는 방송이다. 이런 마이너 감성은 <라디오 스타> 시청자들도 비슷한데, 출연 요청 게시판을 보면 제작진보다 한술 더 뜬다. 연예계 머리 작은 스타 특집, 성대 모사 특집, 웃긴 여자 아이돌 특집, 어린이들의 영웅 특집 등등을 만들어달라고 성화다. “물어뜯기 좋은 건수 많은 게스트를 불러서 라스의 정신을 찾읍시다!”라고 외치는 과격파가 있는가 하면, 다시 돌아온 다음에도 규현과 용호상박하며 독설을 뿜어대는 김구라를 강화하자며 ‘김구라와 친한 친구들 특집’을 제안하는 구라파도 있다.
지난 수요일 방송된 ‘라스 습격 사건’ 편에도 요즘 예능 프로그램에서 보기 힘든 네 사람이 나왔다. 진행자를 저격할 만한 인물을 섭외해 ‘습격 사건’이라 제목을 붙였는데, 프로그램은 이 기획이 촘촘하지 않음을 시작부터 밝힌다. 김구라는 자신의 ‘저격수’ 신성우에게 “오늘 신성우를 처음 봤다. 초면이고 대기실에서 처음으로 인사를 했는데 팬다니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제작진은 설득력 없는 기획도 마치 콘셉트라는 듯, 지나간 스타, 어쩔 수 없이 예능 프로그램의 ‘병풍’이 되어버린 스타 등을 불러모아 이야기를 굴려나간다. 이런 허술함이 오히려 ‘라스’답다. 하지만 시청자를 세뇌시키듯 매번 주장하는 ‘고품격 음악 방송’이라는 말이 완전한 역설은 아님을 보여줄 때도 있다. 6월 방송된 332회 방송에서 예능 프로그램에 익숙하지 않아 반말을 남발하던 홍진영에게 진행자는 마지막 질문으로 “홍진영에게 반말이란?”이라고 물었다. 보기에 따라 시청자의 비난이 쏟아질 수도 있었던 출연자의 실수를 웃음으로 보듬는 이 프로그램은, 그렇기 때문에 사랑받는 유능한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그래서 누군가 나에게 <라디오 스타>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다음주에도 만나요, 제발~.
<한겨레21>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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