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공감> ‘그랑블루, 바다로 간 사나이’ 편
[토요판] 신소윤의 소소한 TV
쉬울 줄 알았다. 필리핀으로 떠난 여름휴가에서 스노클링을 하러 바다로 나갔다. 배에서 안내와 심부름을 맡았던 열살쯤 돼 보이던 필리핀 꼬마는 배가 바다 가운데서 멈추자마자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다리를 하나로 모으고 물고기 꼬리를 움직이듯 허리부터 발끝을 유연하게 저어가며 저 아래로 내려갔다. 마치 물 바깥 세상은 갑갑했다는 듯이. 걸치고 있던 티셔츠를 벗고 단출하게 들어간 그 모습이 편하고 자유로워 보였다.
보고 있자니 어깨에 걸친 구명조끼와 입에 문 스노클 장비가 거추장스럽게 느껴졌다. 장비를 벗어도 되냐고 허락을 구하고 우리도 맨몸으로 물속에 뛰어들었다. 우리보다 먼저 바다에 뛰어들었던 필리핀 꼬마가 소라 껍데기며 죽은 불가사리 따위를 건져 와서 선물이라며 줬다. 오는 정이 있으면 가는 정도 있으렷다, 누나도 바다가 남겨놓은 보석을 선물하마. 그런데 아무리 해도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다. 흡, 숨을 참고 힘차게 아래를 향해 나아가 봤지만 흉하게도 엉덩이만 자꾸 수면 밖으로 솟을 뿐. 이런저런 고전 끝에 호흡을 조절하며 서서히 물 아래로 내려가는 법을 터득했다. 숨을 모으느라 풍선처럼 부풀렸던 배를 조금씩 꺼트리니 자꾸 치솟기만 했던 몸이 조금씩 물 안으로 진입했다. 발 아래에만 있던 물고기들을 둘러볼 여유도 생겼다. 조금만 더 해보면 몸이 알 것 같은데, 곧 배가 떠날 시간이 되어 아쉽게도 우리의 ‘짝퉁 프리다이빙’은 거기서 끝났다. 곧 서울로 돌아왔고 바다에서의 그 시간은 으레 휴가가 그래 왔듯 꿈결처럼 마음 한켠에 묻어뒀다.
8월6일 방송된 <다큐공감> ‘그랑블루, 바다로 간 사나이’ 편은 꿈결 같은 바다를 잊지 못하는 남자에 대한 이야기다. 프리다이버 김동하씨는 필리핀에 산 지 7년째다. 바다에 살고 싶어 한국 생활을 정리하고 필리핀 보홀 섬에서 살고 있다. 프리다이빙은 공기통 없이 한번의 호흡으로 깊은 바다까지 내려갔다 올라오는 극한 스포츠다. 프리다이버들은 아무런 장비 없이 자신의 몸과 정신력에만 의지한 채 50m, 100m씩 바다를 잠수한다. 김씨는 현재까지 프리다이빙 한국 최고 기록(60m) 보유자다.
김씨는 보홀에서 배를 타고 30분쯤 더 가야 있는 발리카삭 섬에 출근 도장을 찍곤 한다. 발리카삭 섬은 세계 10대 다이빙 포인트로 알려져 있다. 김씨가 뛰어든 발리카삭 섬 앞바다는 바다 밖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풍경을 펼쳐 보였다. 커다란 고래 상어 여러 마리가 김씨 바로 옆에서 플랑크톤을 먹기 위해 와르르 바닷물을 삼키는가 하면, 바로 옆으로 잭피시 떼가 평화롭게 지나갔다. 한차례 물고기들이 화려한 쇼를 보여주고 난 다음에는 바다 밖에서 비치는 한줄기 빛과 안전을 위해 설치한 한 줄 로프 빼고는 아무것도 없는 적막한 바다만 배경으로 남았다. 세상에서 가장 푸른 장막을 뒤로한 채 김씨는 묵묵하고 진지하게 훈련하며 오늘의 일과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이집트 다합에서 펼쳐진 프리다이빙 세계선수권 대회. 프리다이빙 시합은 기록 게임이다. 다른 스포츠 경기와 조금 다른 점은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바다에 뛰어들어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종전에 세웠던 기록에 도전하는 자기와의 승부였다. 그래서 프리다이빙 시합은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스포츠 경기”라고 한다. 김씨는 자신이 보유한 기록을 깨고 71m까지 내려갔다. 안전요원과 함께 서서히 수면으로 떠올라 이제 15초 안에 호흡을 정리하고 괜찮다는 신호만 보내면 경기는 끝난다. 눈을 감고 천천히 숨을 고르던 그가 손으로 오케이 신호를 했다. “우와” 소리지르는 순간 심판은 레드카드를 꺼내 들었다. 16초가 되도록 호흡을 마무리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유다.
고요하고 치열한 경기는 그렇게 끝이 났지만 김씨는 다시 묵묵하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연습장으로 내일 또 출근할 것이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그 적막이 때로는 버겁겠지만 김씨가 보여준 바닷속 일상은 숨죽이고 지켜봐야 할 정도로 깊고 푸르고 아름다웠다.
<한겨레21>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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