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 서바이벌 프로그램 <댄싱9>
[토요판] 신소윤의 소소한 TV
몸을 움직이는 사람에 대한 동경이 있다. 실은 짝사랑으로 시작했던 첫사랑도 춤추는 소년이었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 수 있고, 듣지 못하고 읽지 못해도 보는 것만으로도 소통할 수 있다는 점에 매료됐다. 하지만 사실 나는 춤 자체에 빠져들었다기보다는 첫사랑이 그러했듯 춤을 추는 사람들에 대한 선망이 더 컸다. 멋있었다. 땀을 흘리며 본능적으로 몸을 움직이며 무언가를 구현하는 사람들은 거짓이 없어 보였다. 음악과 리듬에 맞춰 몸이 반응하는 대로 솔직하게 움직이는 이들이 어떻게 거짓을 말할 수 있을까.
옆자리 선배는 뜨개질을 하면서 티브이를 ‘듣는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그랬다. 가만 앉아 집중해서 티브이를 본 게 언제였더라. 어떤 이야기는 영상을 뛰어넘고, 어떤 음악은 굳이 화면을 오래 지켜보지 않더라도 상황을 충분히 설명해준다. 하지만 화면 속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이 다른 모든 것을 압도해서 티브이를 바라볼 수밖에 없도록 만든 프로그램도 있다. 댄스 서바이벌 프로그램 <댄싱9>(엠넷)도 그 가운데 하나다.
춤꾼에 대한 동경, 티브이라는 매체에 가장 적합한 서바이벌이라는 평을 전해 들으면서도 이 프로그램을 외면해왔다. 너무 많은 경쟁 프로그램에 질려버렸으므로. 하지만 결국, 남들과 비슷한 수순으로 <댄싱9>에 몰입하게 됐다. 7월 첫 방송이 있던 날, 무수한 탈락자가 쏟아져 나올 서바이벌이겠거니 채널을 다른 데로 돌렸다. 게다가 <슈퍼스타 케이(K)> 시즌 3까지 연출하며 서바이벌 광풍을 일으켰던 김용범 시피(CP)가 펼친 춤판이라고 하니 이거 재미있겠지만 역시 피곤하겠군. 그리고 얼핏 투병, 가난 등으로 요약되는 참가자들의 사연들. 슬픔이나 고단함을 끌어안고 목표를 향해 한걸음씩 나아가는 참가자의 모습에 마음이 뭉클해지긴 하지만 한편으로 우리는 무슨 권리로 참가자들의 개인사를 시시콜콜 듣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저런 피로감으로 프로그램을 외면하고 있다가 우연히 1회 재방송을 보게 되었다. 이런, 심드렁하게 보다 몸이 움찔거리기 시작했다. 이것은 <슈퍼스타 케이>도 <코리아 갓 탤런트>도 기존의 댄스 서바이벌이었던 <댄싱 위드 더 스타>도 아니었다. 현대무용, 스트리트댄스, 댄스스포츠, 발레, 재즈댄스, 팝댄스 등 순수예술부터 대중적인 장르까지 모두 포괄하는 이 프로그램은 춤, 몸, 에너지라는 세 단어로 압축된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1회에서 공식처럼 등장하던 좌충우돌하는 참가자들, 앞으로 진지한 경쟁을 펼칠 이들 사이에서 곁들이처럼 나오는 웃기거나 실수하는 캐릭터도 거의 없다. 참가자들의 면면이 그래서일 수밖에 없었겠지만 <댄싱9>은 첫 회부터 심사위원인 마스터들을 환호하게 만드는 힘을 가졌다.
8월31일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꽃이라는 생방송 무대가 처음으로 펼쳐졌다. 팀별로 9명씩 남은, 탈락을 예측하기 힘든 면면들, 해외 유수의 댄스 쇼 무대를 참고했다는 공들인 무대, 참가자들의 몸짓을 따르는 계산된 카메라 워크 등 방송이 끝나고 호평과 비평을 오가며 무수한 말들이 따랐다.
이 프로그램의 진짜 하이라이트는 이보다 앞서 있었다. 팀별로 36명의 선발자 중 24명이 탈락하고 12명만 살아남는 지옥의 전지 훈련 기간. 참가자들은 자신의 능력을 가장 압축해서 사용하고 매번 자신의 한계를 시험해야 했다. 결국은 절반 이상이 탈락할 수밖에 없는 경쟁의 도가니였지만 타인과의 그것보다 자신과의 싸움에 가까웠다. 사람들은 이 프로그램의 미덕이 프로에 가까운 이들이 펼쳐내는 파워풀한 경연이라고 이야기하지만, 그 뒤에 숨은 소소한 미덕은 이런 것 아닐까. 참가자들이 벌이는 무수한 전투는 춤꾼이 아닌 누구에게라도 적응 가능한 이야기라는 것. 그래서 혹독한 심사평을 받고 탈락 위기에 몰렸던 어린 참가자 제일런을 다독이는 아버지가 한 이야기는 왠지 우리에게 보내는 응원 같기도 하다는 것. “넌 마스터를 위해 춤추는 게 아니야. 너 자신을 위해서 추는 거지. 마스터들 보라고 춤춘다고 생각하는 순간 춤보다 사람이 더 중요해지는 거야. … 가서 파트너랑 힘을 모아서 훌훌 털어버리고 강한 모습으로 돌아가서 다시 한판 하는 거야. 멋지게 재심사에 통과하자고!”
<한겨레21>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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