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 닥터>
[토요판] 신소윤의 소소한 TV
의학드라마는 왜 항상 인기가 많을까. 추석 연휴, 며칠 연속 티브이를 켤 때마다 우연히도 <굿 닥터> 연속 방송을 하는 채널이 나왔다. 리모컨을 눌러 다른 케이블 채널로 넘어가도 약속한 듯 <굿 닥터>가 전파를 타고 있다. 채널을 돌려가며 조각조각 이야기의 얼개를 맞추다 보니 어느새 티브이 앞에 같이 앉은 가족들 모두 이 드라마에 몰입하게 되었다. “~안 됩니다” 하는 주인공 박시온(주원)의 말투를 따라하면서.
<굿 닥터>는 첫회부터 시청률 10.9%(닐슨코리아 제공)를 찍으며 동시간대 월화드라마 시청률 1위를 차지했다. 9월24일 16회에서도 21.5%를 기록하며 시청률 고공 행진중이다. 이야기의 큰 줄기는 서번트 증후군을 가진 대학병원 레지던트 1년차 박시온이 ‘좋은 의사’가 되기 위해 한걸음씩 나아가는 성장담이다. 그리고 그의 성장을 알게 모르게 돕는 두 인물이 있다. 작은 실수에도 불호령을 내리는 실력파 의사 김도한(주상욱)과 따뜻하고 인간적인 차윤서(문채원)다. 이 외에도 자리보전하기에 급급한 탐욕스럽고 무능력한 소아외과 과장 고충만(조희봉), 전설적인 명의 병원장 최우석(천호진), 금융인 출신의 부원장 강현태(곽도원) 등 다양한 인물 군상이 흥미롭다.
의학드라마의 공식이 있다. <굿 닥터>를 비롯해 인기를 얻은 대부분의 의학드라마에 적용된다. 주로 외과 혹은 의사 지망생들이 가기 꺼려하는 비인기과를 배경으로 한다. 최근에는 의료 분야를 세분화하거나 화두가 되었던 현실 문제를 드라마의 배경 혹은 소재로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예컨대 일상적으로 들여다볼 기회가 적은 소아외과를 배경으로 한 <굿 닥터>나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을 무대로 한 <싸인>, 중증외상센터 문제점을 드라마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인 <골든타임> 같은 드라마들이 그렇다. 촘촘한 취재를 바탕으로 병원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긴박하게 그려낸다. 의사들의 대화 사이를 촘촘하게 채운 의학 용어들이 전문성을 더한다. 어렵고 책임이 따르고 때때로 승부수를 던져야 하는 병원 일상이 펼쳐진다. 주인공은 핸디캡을 갖고 있거나, 천재이거나, 혹은 지독한 노력으로 환자를 고치는 데만 열중하는 인물이다. 인간적인 매력은 좀 부족하지만 의사로서의 열정으로 많은 부분을 채우고도 남는 매혹적인 인물들이 불쑥불쑥 등장한다. 병원도 사람이 모인 곳인지라 펼쳐지는 권력관계의 긴장감은 기업드라마 못지않다. 그리고 이 모든 공식의 끝에는 ‘의드 흥행 불패’라는 방송가의 속설도 따른다.
하지만 현실에서 우리는 직업인으로서의 의사를 만난다. 의사들도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을 하고, 회진을 돌고, 휴일에는 병원에 나오지 않으며, 휴가도 간다. 당연한 일이다.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고, 생사의 길목에서 헤매던 사람에게 삶의 다리를 놓아주는 과정에서 보람을 찾는 직업군이지만 드라마에서처럼 언제나 병원에서 급박하게 뛰어다니고, 사생활은 없고, 늘 환자의 상태로 마음을 볶아야 한다면, 누가 이를 직업으로 삼을 수 있을까.
병원에서 태어나거나 혹은 한 생명의 탄생을 지켜봤던 우리는 그렇게 얻은 삶을 계속 이어나가기 위해 그곳을 다시 찾지만,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생처럼 많은 죽음도 병원에 깃든다. 오래 다녔던 병원에서 나의 어머니는 결국 돌아가셨다. 아버지의 친구분은 “나도 의사인데 아버지를 병원에서 못 살렸다”고 위로했다. 그랬다. 현실에서의 병원은 티브이에서처럼 드라마틱한 상황들보다는 좌절과 포기와 회의가 난무했다. 의술은 놀라울 정도로 발전해왔지만 아직도 병원에서는 원인 모를 일, 손쓸 수 없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아무리 노력해도 인간이 하지 못하는 일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빈번한 곳이 그곳이다.
그래서 더욱 우리는 의학드라마에 몰입하는지도 모른다. 드라마에서 흔하게 일어나는 기적 같은 일들, 실패율이 더 높은 수술을 성공하는 장면 같은 걸 보면서 우리는 안도한다. 한국 의료시스템의 구조적인 문제점들, 대형병원의 거대한 덩치 뒤에 숨은 결함 같은 것들을 현실을 대신해 조목조목 짚어주는 드라마를 보면서 희망을 얻는다. 이 모든 이야기들이 현실에 좀더 가까워지길 기대하는 마음으로.
<한겨레21>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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