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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아빠가 돌아왔다

등록 2013-11-22 19:35

<한국방송>(KBS) <슈퍼맨이 돌아왔다>
<한국방송>(KBS) <슈퍼맨이 돌아왔다>
[토요판] 신소윤의 소소한 TV
엄마한테는 죄송하지만 어릴 적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라고 물으면 ‘어른들은 왜 이런 의미 없는 질문을 하나’ 생각을 하면서도 아빠가 좋다고 말한 적이 많았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어릴 적 아버지와 보낸 시간은 그다지 많지 않다. 아버지는 출장이 잦았고, 멀리 외국에서 타전을 보내오기도 했지만 그 무렵 나는 글자를 읽을 줄 몰랐다. 술과 사람을 좋아해서 늘 귀가가 늦었는데, 나는 회사는 원래 밤늦게 마치고 아빠들은 다 밤이 새카매져야 들어오는 사람인 줄 알았다. 지금처럼 주5일 근무제가 아닌 시절이었으니 아버지에겐 주말이 단 하루밖에 없었는데 일요일의 반 이상을 자는 데 보냈다. 아빠와 보낸 주말에 대한 기억은 티브이 보다가 잠든 아빠, 점심 먹고 잠든 아빠, 우리가 마당에서 놀고 있으면 좀 지켜보다 거실에서 자는 아빠가 대부분이다. 엄마 성화에 외출이라도 할라치면 아빠는 무조건 차를 탔다. 엄마와 나, 동생은 걷고 아빠는 그 옆에서 차를 천천히 몰며 같이 산책했던 기억도 있다. 그럼에도 아빠가 너무 좋았다. 어린 내 눈에 너무 잘생겼고, 목소리도 좋고, 엄마처럼 나를 혼내지도 않고, 엄마가 먹지 말라고 하는 과자도 잔뜩 사줬기 때문일까. 주말 저녁에 경양식 레스토랑에 데려가 주는 것도 아빠 몫이었다. 마음속 얘기는 엄마한테 다 털어놓으면서 그렇게 아빠에게 목매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요즘 지상파 주말 예능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아빠와 아이들을 보면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하던 그때가 생각난다. 세월이 한참 바뀌었음에도 한국에서 아빠는 여전히 비슷한 존재인 것 같다. 아이를 돌보는 데 미숙하고, 근엄함과 너그러움 둘 중 하나를 택하지 못해 때때로 아이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아주 크고 대단한 존재 같으면서도 언젠가 나의 미래이기도 한. 그리고 같이 있으면 너무 좋은데, 시간이 지나다 보면 아이는 엄마 생각이 나고, 아빠도 엄마 생각이 나는 그런 관계까지도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한 것 같다. 그런 아빠를 바라보는 꼬마들의 경외에 찬, 때때로 어리둥절한, 그리고 애정 어린 시선을 보면서 어릴 적 내가 아빠를 바라보던 눈도 저랬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문화방송>(MBC) <일밤>의 긴 흑역사를 끊어냈던 것은 아빠들이었다. <아빠! 어디 가?>는 과거의 영화가 있기나 했냐는 듯 존재감이 미미해진 일밤을 수렁에서 건져 올린 구원투수였다. 아빠와 아이들의 여행에 군대로 돌아간 군대 이야기(<진짜 사나이>)까지 덧붙인 덕에 일밤은 다시 주말 예능 강자가 됐다. 그런데 일밤을 살린 남자들의 연대를 위협하는 아빠군단이 나타났다. <한국방송>(KBS)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멀리 여행을 떠나는 대신 각자 자신의 집에서 육아여행을 떠나며 ‘어디 가는’ 아빠들을 추격중이다.

17일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시청률 8.4%(닐슨코리아 제공)를 기록하고, 같은 날 <아빠! 어디 가?>는 13.3%를 기록했다. 여전히 먼저 여행을 출발한 아빠들이 우세지만 방송 3회 만에 맹렬히 따라붙는 슈퍼맨 군단을 넋 놓고 바라볼 수만 없는 형세다. 전통적으로 여성의 영역으로 여겨지던 아이 돌보기에 남성들이 고군분투 적응하는 과정을 담은 것은 두 프로그램 모두 상통한다. 미리 짜놓은 설정보다는 인위적인 모습을 최대한 덜어내고 아이와 아빠의 일상을 면밀히 관찰한다는 점에서도 두 프로그램은 닮아 있다. 지난 1월부터 시작해 권위적인 아빠와 아들의 관계였던 성동일-성준 부자가 서서히 관계를 회복해가거나, 무엇이든 가르치려 들었던 아빠 김성주와 어리광이 심했던 김민국 부자가 처음보다 서로를 보듬는 관계로 나아갔듯, 아마 <슈퍼맨이 돌아왔다> 또한 시간이 지날수록 아빠와 아이들의 성장기를 보여주게 될 것 같다. <아빠! 어디 가?>의 성공으로 비슷한 예능의 출현이 아닌가 하는 비판도 있다. 실제로 그런 것인지, 고정관념에 의한 설정 때문인지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하는 아빠 대부분이 지나치게 육아와 살림에 미숙한 부분이 걸리적거린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엄마보다는 밀착할 시간이 부족한, 살 부대낄 일 없는 아빠와 다정한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보기 싫지만은 않다.

신소윤 <한겨레21> 기자 yoon@hani.co.kr

사진 한국방송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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