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익의 명대사 열전
“데모한 사람이 천벌 받으면, 데모하게 만든 사람은 무슨 벌 받아요?” -영화 <변호인>중
보통 일요일에는 뉴스를 잘 보지 않는다. 방송국 프로듀서(PD)로 있다 보니 세상 돌아가는 이런저런 일에 보통 사람들보다 더 신경을 쓰기 마련인데, 무릇 뉴스란 자극적이기 때문이다. 매일 자극적인 음식을 먹다 보면 하루쯤은 생식을 하고 싶듯 텔레비전도 인터넷도 꺼놓고 하루 종일 가족과 뒹굴고 싶은 날이 일요일이다.
물론 다음날 생방송에 반영할 일이 있을까 싶어 저녁쯤에 포털사이트로 주요 뉴스를 훑어보긴 한다. 보통은 뉴스조차도 일요일은 대체적으로 말랑말랑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지난주 일요일은 달랐다. 실시간으로 뜨는 세월호 집회 관련 뉴스 때문이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는 집회의 자유를 보장한다. 우리 헌법 21조 1항에 떡하니 나와 있다. 모든 국민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고.
데모라는 표현으로 더 익숙한 집회·결사 행위는 민주주의의 결과이면서, 동시에 언론과 함께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하는 과정이며 수단이다. 그래서 모든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데모하는 광경이 흔히 벌어진다.
우리나라 영화 중에 데모하는 장면이 가장 인상적인 영화 두 편을 꼽으라면 <살인의 추억>과 <변호인>을 꼽겠다. <살인의 추억>에서는 시적으로 표현되었고, <변호인>에서는 선언문처럼 대놓고 주제를 담는 장치로 쓰였다.
영화 <변호인>은 데모가 마치 국가전복 행위처럼 여겨지던 80년대 군부정권 시절 이야기다. 사회정의에 별 관심이 없던 변호사가 억울하게 잡혀간 대학생을 변호하면서 민주투사로 변화하는 과정을 극적으로 그린 영화.
주인공인 송우석 변호사(송강호 분)가 단골 국밥집 아들인 대학생(임시완 분)에게 말한다.
“야, 너 데모 안 하지? 데모하면 천벌 받는다!”
그러자 돌아오는 학생의 대답.
“데모한 사람이 천벌 받으면, 데모하게 만든 사람은 무슨 벌 받아요?”
데모(집회)에는 여러 목적이 있다. 어떤 집회의 목적은 정치적일 수도 있고 문화적 퍼포먼스일 때도 있고 성적 소수자의 인권을 호소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 주말 세월호 집회의 목적은 단순했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
진상을 제대로 규명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세월호 시행령을 철폐하고, 제대로 진상을 규명해서 처벌할 사람은 처벌하고 고쳐야 할 제도는 고치고,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 지난 일요일 방패와 최루액 앞에 스러지던 사람들이 모인 이유였다.
이보다 더 공익적인 집회 동기가 어디 있을까? 심지어 정치적이지도 않다. 혹자들은 정권 퇴진과 새누리당을 비판하는 구호를 문제 삼아 정치집회로 몰아가지만, 지금 집권정당이 새정치민주연합이었다면 안 그랬을까? 사람들은 똑같이 정부에 책임을 묻고 정권을 성토하고 집권여당을 비난했을 거다.
백번 양보해서, 집회 중에 다소 과격하고 격앙된 움직임이 있었다고 치자. 사랑하는 가족이 물에 빠져 죽는 장면을 텔레비전 화면으로 지켜본 사람들이, 제대로 구조도 하지 못한 정부를 향해 그 정도 ‘지나친’ 호소를 한다고 연행까지 해야 한다?
능력과 배려가 모자란다면 아량이라도 베풀 줄 아는 국가이길 바란다. 울음을 닦아줄 수 없다면 맘껏 울게라도 해주자고.
아, 데모를 한 사람이 천벌을 받는다면 데모하게 만든 사람은 어떤 벌을 받느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간단하다. 적어도, 데모한 사람들보다는 더한 벌.
이재익 에스비에스 피디·소설가
영화 <변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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