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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내 안에는 아직 음악이 남아 있어요

등록 2015-10-01 20:14

영화 <인턴>.
영화 <인턴>.
이재익의 명대사 열전
“내 안에는 아직 음악이 남아 있어요”
- 영화 <인턴>중에서

불과 10년 전만 해도 ‘위기의 중년’이 뜨거운 키워드였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20대 청년층의 고단한 삶이 이슈로 등장했다. 그들의 삶이 얼마나 팍팍한지를 보여주는 용어들도 줄을 이었다. 88만원 세대, 삼포세대, 오포세대, 그리고 헬조선까지.

20대 청년층이 궁지로 몰린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핵심은 취업난이다. 이제 40대에 접어든 필자가 대학을 졸업하던 시절과 비교하면 정말 그렇다. 이런 말을 하면 젊은 친구들이 믿지 않겠지만, 내가 졸업할 즈음만 해도 대기업에서 학생들을 모셔가려고 인사팀 직원들을 보내 스카우트를 시키는 모습은 캠퍼스의 흔한 풍경이었다.

취업전선이 이토록 치열해진 상황의 기저에는 저성장의 늪이 고여 있다. 이미 우리나라 경제가 본격적인 저성장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얘기가 여기저기서 많이 나온다. 경제에 활력이 없으니 새로 창출되는 일자리가 줄어들고 이미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기성세대는 악착같이 자기 몫을 지키려고 한다. 이렇다보니 청년들에게 돌아갈 일자리가 부족할 수밖에. 그렇다고 멀쩡히 잘 일하고 있는 이들의 일자리를 빼앗아 나눠주기도 곤란하다.

이런 상황에서 영화 <인턴>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직장에서 은퇴하고 쉬고 있던 한 노인(로버트 드니로)이 인턴으로 입사해 젊은 시이오(CEO, 앤 해서웨이)에게 업무에서도 인생에서도 큰 도움을 준다는 내용이다.

일흔살 노인 역을 맡은 로버트 드 니로는 인턴 면접에서 이렇게 말한다. “음악가들은 은퇴가 따로 없다고 합니다. 음악이 사라지면 멈출 뿐이죠. 제 안에는 아직 음악이 남아 있습니다.”

의료서비스가 좋아지고 평균수명이 빠른 속도로 늘면서 직장에서 은퇴를 하고도 수십 년의 세월을 살아야 한다. 몸은 건강하고 정신은 말짱한데 아무 일 없이 집에 앉아만 있기란 고역이다. 영화 대사처럼 내 안에 아직 음악이 남아 있는데 채 연주가 끝나기도 전에 무대 밖으로 떠밀려 나가 있는 꼴이니.

영화에서는 사회공헌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시니어 인턴을 모집한다. 재미있는 광경은 노인 인턴이 40년 이상 나이 차이가 나는 젊은 사원들과 지내는 방식이 무척이나 유쾌하다는 거다. 물론 영화니까 그렇겠지. 연애상담과 월셋집 구하는 문제, 심지어 가정불화까지 멋지게 해결해주는 70세 인턴사원의 모습은 슈퍼맨에 가까워 보인다. 그러나 이런 이상적인 조화가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말라는 법도 없다. 시도는 해봐야 한다. 급격한 고령화로 인한 사회문제가 우리를 엄습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노년층 빈곤 문제는 지금도 이미 심각하다.

문제는 한정된 일자리를 어떻게 나누느냐이다. 일자리가 없어 난리인데 일할 만큼 일하고 나온 노인들에게 또 기회를 주는 건 불공평하다는 젊은이들과 나는 너희들 못지않게 일을 잘할 수 있다는 노인들이 대립할까봐 걱정되기도 한다. 얼마 전에 한 일간지에 ‘늙는다는 건 벌이 아니다’라는 칼럼이 실리자 논란이 번진 뒤 ‘님처럼 늙는 건 죄입니다’라는 반박 칼럼이 등장한 일은 이른바 세대전쟁의 속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청년층의 취업난과 노년층의 빈곤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솔로몬의 지혜는 나에게 없다. 청년에게는 고용, 노인에게는 복지라는 원칙에만 매달려서는 해답을 찾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의견 정도만 보탤까 한다. 현명한 분들이 많이 계신 정부에서 어서 싸움을 말려주어야 한다. 승부가 나도 승자가 없는 세대전쟁을.

이재익 에스비에스 피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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