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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누군가 꿈을 이루면 누군가는 꿈을 잃는 법이지

등록 2015-05-07 19:30수정 2015-05-26 10:48

이재익의 명대사 열전
“누군가 꿈을 이루면 누군가는 꿈을 잃는 법이지” - 드라마 <추적자>중에서

어느 회사원이든 애사심이 생기는 경우는 드물다. 무릇 애사심이란 감사와 자부심에서 나오는데 인간의 본성상 감사하는 마음은 금방 잊기 마련이다. 자부심도 그렇다. 회사라는 집단의 속성상 이기적인 영리추구가 우선인만큼 자랑스러울 일도 별로 없다.

프로그램을 만드는 직업을 가진 내 경우에는 우리 회사에서 멋진 프로그램이 나왔을 때 자부심이 생긴다. 나에게 애사심을 고취시켜주었던 프로그램 중 하나가 드라마 <추적자>였다. 허구한 날 사랑 타령에 막장놀음이던 드라마들 틈에서 치밀한 조직과 묵직한 메시지를 앞세운 <추적자>는 충분히 자랑스러운 드라마였다.

”누군가 꿈을 이루면 누군가는 꿈을 잃는 법이지.“

드라마 ‘추적자’
드라마 ‘추적자’
드라마 <추적자> 중에서 부패한 거대 악과 싸우는 손현주에게 악의 축 김상중이 내뱉는 말이다.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는 꿈을 실현할 몇 안 되는 기회를 놓고 수많은 사람들이 머리 터지게 싸우는 구조로 바뀌어왔다. 자본주의의 속성이 그러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도 정도껏이지.

정확히 말하자면 이 시대의 자본주의는 수정 자본주의다. 국가마다 수정의 폭이 다를 뿐. 어떤 국가가 발전한다는 의미는 안전과 희망의 크기가 늘어난다는 의미이고 자본주의의 수정 방향 역시 그에 초점이 맞춰진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희망의 크기는 자꾸만 줄어드는 걸까?

취업시장이 얼마나 치열해졌는지는 신문기사만 잠깐 검색해도 금방 알 수 있다. 내가 20대였을 때는 당연히 누렸던, 그래서 감사하는 마음도 들지 않았던 것들이 이제는 사치나 기적의 차원이 되어버렸다. 사랑하는 사람과 연애하고 결혼해서 내 집을 마련하고 아이를 키우는 것. 우리 세대에서는 진부하게까지 여겨졌던 삶의 궤적은 지금 20대에겐 마치 별똥별의 궤적처럼 요원해져버렸다.

몇년 전부터 대학교에 특강을 나가는 일도 많아지고 학교의 요청으로 학생들과 멘토링 프로그램도 종종 하곤 했었다. 내 나름으로는 청년 세대에게 꿈과 희망을 설파하려는 의도였다. 작가를 꿈꾸는 학생들, 방송국에서 일하고 싶은 학생들의 열정을 보며 나 자신을 다잡는 계기도 되곤 했다. 그러나 올해부터는 일체의 특강과 멘토링을 하지 않는다. 미안하고 부끄러워서다. 이제는 자신이 없다. 무슨 말을 해줘야 할 지도 모르겠다.

요즘 드는 생각은 대안을 주지 못할 거라면 잔소리나 하지 말자는 거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느니, 괜찮다 다 괜찮다느니 등등 헛소리는 집어치우자. 나는 이러이러하게 열심히 산 덕에 꿈을 이루었는데 너희 젊은이들은 패기가 없다는 식의 꼰대질은 그 중에서도 최악이다. 지금 청년들이 게으르게 사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정말 눈물 난다.

차라리 미안해하자. 이 사회가 이토록 청년들에게 각박해진 것은 나를 포함한 40대, 50대 꼰대들의 책임이라고. 크건 작건 꿈을 이뤄놓고선 나누지 않고 지키려고만 한 우리 어른들의 탐욕과 방관이 그대들의 꿈을 짓밟았다고 시인하고 사과한다.

잘못을 인정해야 대안도 찾을 수 있다. 기성세대가 이룬 꿈이 다음 세대의 꿈자리를 빼앗지 않는 구조를 고민해야 한다. 누군가가 이룬 꿈의 결실이 다른 이들에게도 씨앗으로 나눠질 때쯤이면 나도 다시 학생들 앞에 웃으며 설 수 있겠다. 초롱초롱한 학생들의 눈이 그립다.

이재익 에스비에스 피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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