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터셰프 코리아>
이재익의 명대사 열전
“앞치마를 벗고 키친을 떠나주세요”
- <마스터셰프 코리아> 중 강레오 셰프의 멘트
요즘만큼 요리사들이 티브이에 자주 나온 때가 또 있었던가? 아, 요리사라는 말은 왠지 쿨하지 않아 보이니 ‘셰프’라는 표현을 써야 하나? 다들 셰프, 셰프 하니까 일단 그러기로 하자.
최근 1~2년 사이 기다렸다는 듯이 요리 프로그램이 쏟아져 나온 이유를 분석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다. 혹자는 국민소득까지 들먹이기도 한다. 국민소득이 얼마가 되면 어떤 포맷의 프로그램이 유행하고 또 얼마까지 늘어나면 어떤 프로그램이 유행한다는 식의 이론이다. 원래 예측하기는 어려워도 분석하긴 쉬운 법이니까.
분석은 넣어두고 현상만 보자. 정말 많아도 너무 많다. 한때는 티브이만 틀면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이 나오더니 지금은 셰프들이 연예인들보다 더 많이 보인다. 시청률도 곧잘 나오고, 프로그램에 출연한 셰프들은 유명해지고 광고도 찍고 식당도 손님들로 미어터진다. 다 좋은데, 요리에 관심이 없는 시청자들은 뭘 봐야 하는가?
어제오늘 일이 아닌 포맷 베끼기는 어째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프로그램 하나가 인기를 얻는다 싶으면 너도나도 달려들어 비슷한 포맷으로 프로그램을 만들어버리니, 나중에는 어느 프로그램이 원조인지도 헛갈린다. 다른 장르의 표절에 대해서는 칼자루를 휘두르는 피디님들이 왜 이러실까.
현재 수많은 요리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셰프들 중 섭외 순위로 볼 때 최강자는 단연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다. 사실 나는 백종원씨의 아내 되는 배우 소유진씨하고 디제이와 피디로 일한 적이 있다. 결혼식에도 갔었는데 그때만 해도 요식업계의 거물 정도로만 생각했지, 내가 일하는 방송계에서 소유진씨보다 백종원씨의 얼굴을 더 많이 보게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다른 셰프들이 조금이라도 더 화려하고 독특하고 세련된 요리 솜씨를 뽐내느라 애쓸 때 백종원씨는 쉽게 해먹을 수 있는 집밥 요리로 시청자들의 시선을 단박에 사로잡았다. 그는 대충 양을 가늠하고 설탕을 들이붓고 조미료를 써가며 음식을 만들어냈다.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는 덤으로. 다이어트, 칼로리, 유기농, 저염, 저당, 소식 등등의 강박이 극에 달한 현대사회에서 통조림을 기름째 들이부어 요리하는 그의 모습은 가히 혁명적이기까지 했다.
우리는 깨달은 것이다. 아, 맞다. 원래 음식은 맛으로 먹는 거였지!
요리 프로그램을 통해 이런 식의 인식 전환이 이루어진 점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피디들께도 감사하고 무엇보다 백종원 셰프에게 감사하다. 그러나 이제는, 셰프들을 주방으로 돌려보내드리자. 요리 프로그램을 다 없애자는 얘기가 아니다. 과도한 편성 집중과 출연자들의 겹치기 출연, 포맷 베끼기 등의 관행이 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요리 프로그램이 많지 않던 때, <마스터셰프 코리아>(올리브)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일종의 요리 서바이벌, 요리 오디션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텐데, 그 프로그램에서 심사위원을 맡았던 강레오 셰프의 단골 멘트가 유행어가 된 적이 있었다.
“앞치마를 벗고 키친을 떠나주세요.”
넘쳐나는 요리 프로그램에 지겨워진 어느 시청자는 이 말을 지금도 방송국 스튜디오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녹화를 뜨고 계신 셰프들에게 고스란히 돌려드리고 싶을 지도 모르겠다.
“분장을 지우고 스튜디오를 떠나주세요.”
사실 출연 섭외에 응한 셰프들이 무슨 잘못이겠는가. 그래도 혹 방송을 하느라 주방을 너무 오래 비우는 셰프들이 있다면 이런 고민은 한번쯤 해보셨으면 한다.
내가 만드는 음식을 먹고 싶은 손님들이 기다리고 있다. 내가 칼을 잡은 이유는 방송을 하기 위해선가, 요리를 하기 위해선가?
이재익 에스비에스 피디·소설가
- <마스터셰프 코리아> 중 강레오 셰프의 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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