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롯데 회장.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이재익의 명대사 열전
-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서 주인공 현빈의 대사 드라마나 로맨스 소설의 남자주인공 재벌은 멋있다. 그냥 멋진 정도가 아니라 슈퍼히어로급의 낭만과 순정으로 똘똘 뭉쳤다. 능력이면 능력, 박력이면 박력, 게다가 정의롭기까지. 어떤 여자라도 사랑에 빠지지 않을 도리가 없다. 어찌 보면 엇비슷한 재벌남 주인공들 중에서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현빈 캐릭터는 상당히 신선했다. 그전까지 멋진 재벌남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파리의 연인> 박신양의 캐릭터를 단숨에 대체하고 지금까지 가장 성공한 재벌남 남자주인공으로 남아있다. 그가 드라마 속에서 부하 직원에게 결재를 받을 때면 항상 되묻는 말이 있었는데, 까칠하고 냉정한 재벌남의 캐릭터와 딱 맞아떨어지는 대사였다. “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 그러나 현실에서 재벌의 모습은 부끄러운 민낯으로 드러날 때가 많다. 작년에 가장 큰 이슈의 주인공은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이었다.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의 장녀인 그는 ‘땅콩회항’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고 실형까지 살 정도로 큰 파문을 일으켰다. 그가 보여준 오만함은 드라마 속 악역 캐릭터를 욕할 때처럼 사람들을 분노케 했다. 올해는 아무래도 롯데 일가가 최고의 비호감 캐릭터를 물려받을 듯하다. 경영권을 둘러싼 형제간의 혈투도 모자라 무려 아흔이 넘은 창업주까지 싸움에 가세했다. 여기에 롯데그룹을 우리 기업으로 봐야 할 것이냐 일본 기업으로 봐야 할 것이냐는 국적론이 대두되면서 불매운동으로까지 이어졌다. 악화일로의 상황에서 신동빈 롯데 회장이 며칠 전 대국민 사과를 했다. 당연히 사과해야 할 일이다. 국내 5위의 대기업이라는 롯데의 속을 들여다보니 이건 뭐 미로도 아니고 늪도 아니고…. 타임머신을 타고 수십년 전으로 돌아간 착각이 들게 할 만큼 후진적이고 폐쇄적인 경영 방식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소비자들, 주주들, 그리고 국민에게 사과하는 것이 백번 당연하다. 그런데 나는 신 회장의 사과문에서 영 찜찜한 구절이 있었다. 사과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에 있는 구절을 인용해본다. “(…) 중장기적으로는 그룹을 지주회사로 전환해 순환출자를 완전히 해소하겠습니다. 지주회사 전환에는 금융계열사 처리 같은 어려움이 있고 대략 7조원의 재원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는 롯데그룹 순수익 2~3년치에 해당하는 규모입니다. 연구개발과 신규채용 같은 그룹 투자활동 위축이 우려됩니다. 그러나 현 상황을 깊이 고민해 국가 발전에 기여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 이건 뭐지? 지금 이 와중에 연구개발과 신규채용을 인질로 삼고 정부와 소비자를 협박하는 건가? 아니면 자기네들도 이렇게 힘드니 알아달라는 ‘땡깡’인가? 사과문에는 변명이 없어야 한다. 신 회장이 직접 작성했는지 참모진이 작성한 문구를 읽기만 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작가인 내가 볼 때 점수를 좋게 줄 수 없는 사과문이다. 경영을 정상화하고 투명하게 만드느라 연구개발이나 신규채용이 위축될지도 모르겠다는 마인드로 회사를 개혁하겠다면, 과연 결과가 어떨지 걱정스럽다. 대한민국 경제가 잘 돌아가기를 바라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얼른 롯데그룹이 정상화되어 자기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에서 더더욱 드라마 속 재벌남이 했던 대사를 진짜 재벌인 롯데 일가에 돌려줄 수밖에 없다. “그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 이재익 에스비에스 피디·소설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