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에어로스페이스 창원사업장에 있는 ‘KSLV 조립장’에서 기술자들이 ‘누리호’ 엔진을 조립하고 있다.
누리호 엔진에 붙은 별칭 ‘심장’은 시적 은유를 넘어 그 기능을 실용적으로 설명하기에도 제격인 듯했다. 1.5t급 위성을 지구 상공 600~800㎞ 높이로 밀어 올릴 에너지를 발생시키는 엔진은, 온몸으로 혈액을 공급해 걷고 뛰고 달릴 힘을 내도록 해주는 심장의 구실 딱 그것이다.
누리호 엔진 조립장을 방문한 16일 경남 창원에는 비가 내렸다. 수도권은 아침부터 짙은 안개와 미세먼지로 온통 뿌옇게 흐린 날이었다.
첫 국산 우주발사체(로켓) ‘누리호’의 엔진 조립이 이뤄졌고, 후속 발사체의 엔진 조립 과정이 진행 중인 작업 공간 ‘KSLV조립장’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창원사업장 안에 있다. ‘KSLV’는 ‘한국형 발사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창원사업장은 ‘케이티엑스(KTX) 창원중앙역’에서 자동차로 10~15분 정도 달리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
조립장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사업장 입구 오른쪽에 있는 안내동에서 보안 절차를 거쳐야 한다. 간이영수증 크기의 노란색 출입신청서에 이름·연락처·용무를 적어내고 노트북 컴퓨터를 담은 백팩은 안내동 사물함에 맡겼다. 스마트폰 카메라에는 촬영을 금지하는 보안 스티커가 앞뒤로 붙여졌다. 엄지손톱 크기만 한 진회색 스티커에는 흰색의 조그마한 글씨로 ‘봉인지 훼손금지’라고 적혀 있다.
조립장 방문에 앞서 사무실에서 만난 남형욱 전무(창원사업장장)는 “내년 5월 발사 예정인 발사체의 엔진은 이미 조립돼 고흥(나로우주센터)에 가 있고, 지금 조립되고 있는 엔진은 그 후속으로 발사될 로켓에 장착될 것들”이라고 설명했다. 누리호는 올해 10월 1차로 발사된 데 이어 내년 5월 2차, 12월 3차 발사를 앞두고 있다. 예정대로 차질없이 진행된다는 전제에 따른 일정이다. 남 전무는 “이 조립장에서 누리호 엔진을 조립한 뒤 고흥 나로우주센터로 보내 연소 시험을 거친 다음 다시 여기로 옮겨와 재정비하는 방식으로 업무가 처리된다”고 했다.
안내동, 사업장장 사무실, 조립장을 오갈 때는 차를 타야 할 정도로 터가 넓었다. 공간 크기나 사무실 및 이동로 배치의 반듯반듯함이 사각형 이미지의 계획도시 창원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립장 안으로 들어서자, 앞쪽으로 길게 뻗은 직사각형 공간의 왼쪽 절반 가량은 높이 2m가량 크기의 로봇 같은 물체 외엔 거의 비어 있었다. 오른쪽 절반 자리에는 2층 구조의 철제 ‘플랫폼’이 설치돼 있었다. 높이 3m 정도 되는 물체 3개가 이 구조물 2층 바닥을 중심으로 1층 하체, 2층 상체 격으로 나뉘어 우뚝 서 있었다. 조립장을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오른쪽에도 높이 3m가량의 물체 2개가 배치돼 있다.
조립장에서 만난 김종한 차장(창원사업장 추진기관생산본부 생산기술팀)은 “(3m가량 높이의 물체들을 가리키며) 누리호에 실릴 75t 엔진”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75t은 추력(반작용의 힘)을 뜻한다. 높이 2m짜리는 7t 엔진이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이 6개 물체가 짝을 이뤄 누리호 엔진을 이룬다. 3단 구조의 누리호 맨 아래쪽 1단에 75t 엔진 4개가 묶여(클러스터링) 배치되고, 그 위 2단에 75t 엔진 1개가, 맨 위 3단에 7t 엔진이 놓여 누리호를 단계별로 하늘로 띄워 올리는 힘을 발생시킨다. 예정대로라면 내년 12월 3차로 발사될 누리호를 하늘로 밀어 올릴 주인공들이다.
조립장 규모는 550평 정도 된다고 했다. 여기에는 셔터로 분리돼 있는 엔진분해실, ‘치공구’(治工具) 보관소도 포함돼 있다. 전체 작업장의 공기를 정화하고 온·습도를 조절하는 공조(공기조화) 시설의 부지를 합하면 800평 규모에 이른다. 지난 10월 온 나라를 들끓게 했던 누리호 발사 때의 흥분과 설렘, 파장에 견줘 그 심장의 산실은 상대적으로 아담한 크기라 여겨졌다.
엔진 조립장 분위기는 떠들썩하고 북적이기 마련인 여느 작업장과 많이 달랐다. 이날 오후 플랫폼 위 2층에서 3명의 작업자가 무언가 일에 열중하고 있을 뿐 전반적으로 정적인 분위기였다. 김 차장은 “수많은 업체에서 조달해온 부품들을 결합하는 작업을 진행해 왔고, 이제 마무리 단계”라고 했다.
발사체 엔진은 터보 펌프, 볼트, 너트 등 수없이 많은 크고 작은 구성품(부품·부분품)들로 이뤄져 있다. 엔진 1대에 들어가는 구성품 가짓수는 1200개 남짓에 이른다고 했다. 용접과 접착(브레이징) 방식으로 결합된 추진제 분사기(인젝터)도 그 일부다. 조립 작업이 한창일 때는 생산 인력 11명, 엔지니어 11명 등 22명가량이 모두 동원돼 조립 업무를 처리하게 된다고 김 차장은 전했다.
엔진 조립 공정은 크게 8가지로 나뉜다. 세부 조립·검사 과정을 포함하면 공정의 갈래는 458가지에 이른다. 엔진을 이루는 주요 구성품으론 연료를 태워 추력을 발생시키는 연소기, 연소기에 고압의 추진제(연료인 ‘케로신’과 액체산소의 조합)를 공급해주는 터보펌프를 우선 들 수 있다. 터보펌프에서 연소기로 추진제를 전달해주는 고압배관, 터보펌프의 구동가스를 만들어내는 가스 발생기, 유량제어 밸브, 개폐 밸브도 주요 구성품으로 꼽힌다. 한화 쪽은 엔진 전체의 조립 뿐 아니라 터보펌프, 밸브류 제작도 아울러 담당하고 있다.
엔진 조립에 걸리는 시간은 75t급 기준으로 3개월가량이라고 한다. 조립 완료 뒤 조립의 건전성·기밀성, 작동 시험 따위의 과정을 거쳐 품질 보증을 받은 다음 특수 제작된 전용 컨테이너에 담겨 고흥 발사체 조립장으로 옮겨진다. 고흥에서 엔진과 발사체 후방 동체를 결합하는 작업은 ‘체계 총조립’이라 하며, 이는 항공우주연구원 주도로 이뤄진다. 한화 창원사업장에서 이뤄지는 작업은 그 전 단계의 ‘엔진 조립’이다.
김종한 차장은 플랫폼 2층에서 작업 중인 작업자들을 가리키며 “조립된 엔진의 연소시험(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 진행)을 마친데 이어 밸브나 배관 연결 부위에 결함이 없는지를 살피고 점검하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헬륨가스를 주입한 뒤 새는 틈새가 있는지 살피는 점검 과정(헬륨 리크 디텍트)이며, 비유하자면 도시가스 검침원이 가스관의 연결 부위를 살피는 일과 같다고 했다.
한화 쪽은 “조립 과정은 12월 중 사실상 모두 끝나고, 세부 미세 재정비 과정을 거쳐 내년 2월쯤 항공우주연구원에 납품돼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체 동체와 결합하는 과정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고흥으로 이동할 땐 진동 방지 및 항온·항습 장치를 갖춘 특수 장비가 동원된다. 이렇게 되면 1년 가량에 걸친 조립 과정은 모두 마무리된다.
75t 추력의 ‘누리호’ 엔진. 조립 완료돼 현재 한화 창원사업장에서 대기 중이며 내년 12월 3차로 발사될 누리호에 장착될 예정이다.
고흥으로 옮겨진 엔진은 항공우주연구원 주도로 발사체 후방 동체와 연결된 뒤에도 기밀 및 작동 시험을 통한 품질 확인 과정을 다시 거친다. 누리호에 탑재된 엔진의 구동은 라이터 구실을 하는 ‘파이로 시동기’의 작동에서 시작된다. 이를 통해 터보 펌프가 움직이고, 터보 펌프는 추진제의 압력을 높여 연소기에 공급하고, 연소기에서는 추진제를 태워 고온·고압의 연소 가스를 발생시킨다. 연소 가스는 수축·확산 노즐을 통과하며 외부로 방출되고, 이 때 생기는 반작용으로 발사체는 추진력을 얻게 된다.
로켓 발사 뒤 1, 2, 3단에 배치된 엔진 6기는 순차적으로 본체에서 떨어져 나간다. 위성이 본궤도에 진입한 뒤라면 엔진은 남김없이 모두 사라지고 없다는 뜻이다. 엔진을 이루던 수많은 구성품들 중 일부는 우주 속 먼지로, 또 일부는 잔해물 상태로 바다에 떨어진다. 이렇게 온전히 소멸함으로써 제 목적을 이룬다. 수많은 구성품이 1년에 걸쳐 하나로 모여 심장으로 생성되는 최종 목적이 소멸이라니. 1천 가지 넘는 부분품들을 끌어모아 엔진으로 빚어내는 기술자들로선 로켓 발사 대성공이라는 소식을 전해 듣고도 보람이나 자부심만큼이나 커다란 허탈감을 동시에 느낄 것 같았다.
한화 쪽이 항공우주연구원과 한국형 발사체 엔진 총조립 계약을 맺은 건 2012년이었다. 뒤이어 2014년 7월 조립장을 완공해 지금에 이르렀다. 7~8년 운영하는 동안 항공우주연구원에 납품된 엔진은 75t급 34대, 7t급 12대 등 모두 46대에 이른다고 한다. 여기에는 내년 발사 예정인 로켓에 실릴 엔진도 포함돼 있다.
한화그룹은 발사체 기술을 “우주사업 진입을 위한 필수” 항목으로 삼고 있으며, “누리호는 다양한 미래 신사업을 적극적으로 모색해나갈 수 있는 시발점”이라고 꼽는다. 극한 기술의 결정체인 누리호가 “기계, 장치, 전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기술을 한 단계 격상시키는 계기를 제공해주고 있다”는 설명이다. 초경량·극저온 부품들을 개발하면서 확보한 제조 기술을 ‘수평전개’할 계획을 갖게 된 것은 여기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덧붙인다.
한화 쪽은 우주산업을 태양광과 함께 미래성장 동력으로 꼽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올해 1월 국내 인공위성 전문업체 쎄트렉아이 지분 30%를 인수하며 위성사업 진출을 알린 것은 이와 연결된 움직임이었다. 이어 3월 들어 그룹의 우주사업을 총괄하는 ‘스페이스 허브’라는 협의체를 출범시킨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를 중심으로 한 스페이스 허브는 발사체와 위성 등 제작 분야와 서비스 분야로 나뉘어 연구·투자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한화 쪽은 밝혔다. 스페이스 허브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과 공동으로 우주연구센터를 설립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창원/김영배 선임기자
kimyb@hani.co.kr, 사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