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준(63) 전 국무조정실장이 엔에이치(NH)농협금융지주 차기 회장으로 낙점됐다. 연말 금융권 최고경영자 교체기를 앞두고 ‘모피아(재무부와 마피아의 합성어)’들의 낙하산 인사가 본격화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농협금융지주는 12일 임원후보추천위원회(임추위)를 열어 손병환 회장의 뒤를 이을 차기 회장으로 이 전 실장을 단독 후보로 추천했다고 밝혔다. 지난달 14일 차기 농협금융지주 회장 선임 절차를 시작한 임추위는 이날 위원 만장일치로 이 전 실장을 최종 후보로 결정한 뒤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거쳐 차기 회장으로 확정하는 절차를 마쳤다. 손 회장 임기가 이달 31일 마무리되면 내년부터 새 회장의 2년 임기가 시작된다.
이 전 실장은 1983년 행정고시 26회로 공직에 들어선 경제 관료 출신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 기획재정부 2차관, 미래창조과학부 1차관으로 일한 뒤 국무조정실장을 역임했다. 윤석열 대통령 후보 시절 대선 출마 선언식에서 후보자와 나란히 앉은 그는 ‘대선 캠프 총책’으로서 정책 밑그림을 짜는 중책을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 당선 뒤 특별고문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농협 안팎에서는 이달 초부터 전직 관료 출신이 회장으로 올 것이라는 말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를 두고 농협금융지주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농협중앙회가 정부와 가까운 관료 출신을 선임하는 게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과거에도 임종룡(63) 전 금융위원장이 농협금융지주 회장으로 오면서 우리투자증권을 인수해 엔에이치(NH)투자증권을 출범시키는 등 내부에는 ‘힘있는 관료’ 출신에 대한 기대감이 있다는 것이다.
농협금융지주를 시작으로 금융지주사와 국책은행 수장들이 모피아 출신으로 ‘물갈이’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금융권에는 팽배하다. 신한금융지주는 앞서 행원 출신으로 내부에서 입지를 다져온 진옥동 신한은행장을 차기 회장으로 낙점했지만, 비엔케이(BNK)금융지주, 우리금융지주, 기업은행 등 수장 교체기를 앞둔 금융권 최고경영자 후보군으로 관료 출신이나 정치인 등이 두루 거론되고 있어서다.
기업은행장 후보로는 정은보(61) 전 금융감독원장이 유력하다는 말들이 많다. 정 전 원장은 행정고시 28회 출신으로 기재부 차관보,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을 거쳐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금융감독원장을 지냈다. 정 전 원장과 함께 기업은행장 후보로 거론되는 이찬우 전 금감원 수석부원장, 도규상 전 금융위 부위원장도 모두 기재부 출신이다.
김지완 회장이 자녀 특혜 의혹으로 임기 5개월 앞두고 물러난 비엔케이금융지주의 경우, 차기 회장으로 이팔성(78)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거론된다. 이 전 회장은 이명박 정부 시절 ‘금융 4대 천왕’으로까지 불렸던 이른바 ‘금융권 올드보이’다. 비엔케이금융지주 지배구조규정공시는 회장 선임에 나이 제한을 두지 않지 않아 나이 제한(만 70살)을 두는 다른 금융지주회사와 달리 이 회장 취임에 문제가 없다.
우리금융지주 차기 회장으로는 이명박 정부 때 기업은행장을 지낸 조준희(68) 전 와이티엔(YTN) 사장,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 등이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은 라임펀드사태로 지난달 금융위원회에서 문책경고를 받으면서 연임이 불투명해진 상태다. 금융업권 안팎에서는 1년6개월을 미뤄오던 징계 결정 시기를 둘러싸고 차기 회장 낙하산 인사를 위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기도 했다.
정완규 여신금융협회장(행시 34회), 유재훈 예금보험공사 사장(행시 26회), 나성린 신용정보협회장(전 국회의원) 등 이미 금융 공기업 대표 등에는 퇴직 관료와 정치인들이 임명되고 있다.
경제개혁연대는 성명을 내어 “금융회사가 투명하고 건전하게 운영되어야 하는데 낙하산 인사가 들어오면 정부 입김에 따라 좌지우지 될 수 있어 금융회사가 독립적으로 운영되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며 “금융당국이 차기 대표 선임에 개입하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윤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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